교토의정서가 16일 발효된 가운데 지율스님의 1백일 단식으로 홍역을 치른 ‘반환경주의자’들의 역공세가 심상치 않다.
 
일부 언론들은 “자연과 환경을 무조건 보호해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것은 물론, 환경보호론을 나치의 ‘우생학’에까지 비유하고 나섰다.
 
일개 ‘여승’의 단식파문에 ‘참담해진’ 반환경, 혹은 개발론자들에게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원군은 ‘쥐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은 지난해 12월, 최신작 ‘공포상태’<사진>를 출간했다. 크라이튼은 환경운동가들을 기후재앙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탐욕스런 ‘장사꾼’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환경운동을 핑계로 호의호식하는 환경운동가들은 기다리던 기후재앙이 일어나지 않자 인공해저폭발로 쓰나미를 일으키려 하는 등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쓰나미’까지 작품 소재로 활용했다. 
 
이 작품은 2년 전 출간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이어 미국 내에서 최고의 화제로 급부상하며 단박에 베스트셀러로 올랐다.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해 우리나라 보수언론들도 환호하고 나섰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12일, ‘천사님, 눈을 크게 뜨세요’란 시론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은 아름답다는 ‘신화’를 다시 볼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무엄하게도 16일 발효되는 교토의정서와 환경운동을 조롱한 이 베스트셀러는 4년 전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가 나왔을 때만큼 논란이 됐다. 기후과학자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분노하거나 소설 자체를 무시했지만, 하버드대 의대 출신으로 결코 과학에 무지하달 수 없는 크라이튼은 단호했다. “모든 참고문헌은 사실이다. 다양한 환경자료를 살핀 결과 지구온난화는 난센스라고 결론 냈다.”(BBC뉴스)
 
김 논설위원은 지율스님마저 교묘하게 꼬집는다.
 
그는 “지율 스님의 목숨 건 단식으로 천성산 터널공사가 사실상 중단된 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 없던 사람도 환경을 다시 보게 됐다”고 너스레를 떤 뒤,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저자인 롬보르의 말을 빌려 “경제 기술발달 덕분에 대기는 과거보다 좋아졌으며, 자원은 풍족해지고, 멸종되는 생물도 적자생존법칙에 따른 극소수”라고 지적한다.
 
그리곤 자못 비장하게 다음과 같이 성토한다.
 
호환(虎?)이 마마처럼 무서웠던 시절을 기억한다면, 자연은 아름답고 환경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신화’도 다시 볼 때가 됐다. 사람에겐 자연적 선천적인 게 좋다는 낭만적 믿음이 굳건해서 자연보호가 도덕적이며 옳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번 따져보자. 도롱뇽이, 습지가, 환경이 정말로 인간보다 귀중한가를.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죄책감을 대속(代贖)하듯 환경운동해온 ‘천사’의 눈에는 자연만 보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보이지도 않는지를.
 
그는 심지어 “환경은 한번 파괴하면 돌이킬 수 없으므로 특별 대우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딴지를 걸며 “결혼이고, 대통령 선출이고, 중앙청 파괴이고, 세상에 쉽게 무를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던가”라고 반문한다. 강력한 개발론자가 난데없이 허무주의자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그는 결론 부분에 이르러 대규모 국책사업 때 환경단체 의견을 반영하라는 환경정책 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한 것을 문제 삼으며 “이제 정책당국도, 전문가도, 그리고 민주주의도, 환경만이 선(善)이라는 독선 앞에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됐다”고 한탄한다. 
 
김 논설위원의 이같은 주장은 결국 지율스님의 단식농성으로 인한 천성산터널의 공사중단에 대한 ‘못마땅함’이다. 16일 발효되는 온실가스에 대한 강제적 기후협약인 교토의정서도 염두에 뒀다. 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을 차용한 것이다.
 
소설 ‘공포상태’를 다룬 것은 동아일보만이 아니다. 조선일보도 지난 5일, ‘환경주의자들의 위선을 벗기다’란 제목의 해외서평을 통해 이 작품을 국내 최초로 비중있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소설 속의 환경자원기금(NERF)은 영향력 있는 환경단체인 자연자원방어협의회(NRDC)를 모델로 한 것이고, 급진적 이념에 사로잡힌 위선적인 환경운동가 드레이크는 랠프 네이더인 것 같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는 “‘다 빈치 코드’가 존재하지 않는 역사를 픽션과 섞었다면 ‘공포 상태’는 과학을 픽션과 섞은 셈”이라고 추켜세운다. 이 소설의 반환경주의 관점이 과학을 토대에 뒀다는 것이다.
 
세계일보도 15일, 워싱턴타임즈 컬럼니스트 수전필즈가 ‘공포상태’를 소재로 쓴 컬럼 ‘환경보호론의 위험’을 게재했다. 수전필즈는 이 글에서 “마이클 크라이튼은 환경보호론을 선별적 번식을 통해 인간을 ‘개량’할 수 있다고 주장해 홀로코스트 등 인종참사의 직접원인이 된 나치의 우생학에 비유했다”고 소개하며 “오늘날 많은 환경 관련 연구가 마찬가지의 결함을 지니고 있고 의도적으로 짜맞추기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조종을 받으며, 정보에 어두운 대중들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보호와 홀로코스트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개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반환경론자들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버들 녹색연합 간사는 “교토의정서처럼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문제는 환경단체에서 주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유엔 산하기구의 주도 하에 이뤄지는 것인데도 환경단체의 음모 운운하는 것은 억지”라고 잘라 말했다.
 
이 간사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은 전세계 에너지전문가들의 공통된 상식인데도, 반환경론자들은 주로 통계에 근거한 수치 제시만을 통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간사는 또 소설 ‘공포상태’가 지적한 환경론자들의 ‘위기 과다포장’과 관련해 “환경단체들이 송전탑 반대운동을 펼칠 때면, 한전 등에선 의사나 과학자들을 동원해 송전탑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정작 국회에선 휴대전화 전자파방지법을 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반박하며 “교토의정서 발효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과연 환경단체 때문에 이뤄졌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외국의 가상소설까지 들먹이며 ‘인간을 위한’ 개발론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어차피 쓰나미나, 1백년만의 이상고온은 별다른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해 확인해봤냐고 다그치는 어느 언론인이나, 물조차 먹지 말아야 한다고 분기탱천하는 이들에게 환경과 자연은 그저 거추장스런 족쇄일 뿐이다.
 
더욱이 소설 ‘공포상태’에서 탐욕적 환경주의자들이 악용하는 사례인 ‘쓰나미’가 소설 출간 직후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 이들이 아무런 ‘공포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은 경악스런 일이다. (아마도 쓰나미 재앙으로 인해 가장 충격을 받은 이들 중 한 명은 마이클 크라이튼일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이번 쓰나미가 환경주의자들이 일으킨 인공해저폭발로 발생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지율스님 단식의 실체를 파헤쳐 만천하에 고발하고 싶은 것일까.
 
그들이 소설 ‘공포상태’의 ‘모태’로 여기는 책,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저자 롬보르는 “농약을 먹어도 1%밖에 암에 안 걸린다” “해수면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석유자원은 무한대이며, 대기오염은 날로 좋아지고 있다”는 따위의 궤변을 내뱉어 웃음거리가 된 바 있다.
 
도롱뇽도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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