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 적용 및 졸업기준 완화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의 기능과 역할 등을 놓고 16일 하루 동안 전경련과 공정위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전경련은 16일 <공정위의 기능, 사건처리절차의 국제비교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내고 공정위를 ‘경쟁력집중 억제기능 수행 기관’이라 공격하는 동시에, 같은 날 오전 부설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포럼에서는 “기업집단 혼내주는 기관”이라 혹평하는 등 유례없는 초강경 공세를 펼쳤다. 공정위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주로 건의나 요청 수준이었던 지금까지의 대 공정위 발언과 달리 체계적인 보고서와 토론회를 통한 전경련의 이날 공격은 공정위의 조직체계와 개편방향까지 건드리고 있어, 대기업을 주요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공정위의 심기를 한층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향후 두 기관 사이의 긴장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의 비판 키워드는 공정위의 ‘경쟁력 억제’다. 그간 재계가 각종 규제완화 및 세율인하를 요구하며 가장 빈번히 내세웠던 논리이자, 정치권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주창하고 있는 논리가 ‘기업 경쟁력 강화’란 점에서, ‘공정위=경쟁력 억제기관’이란 주장은 전경련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날선 창이라 할 수 있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경쟁촉진이라는 본래 목적 이외에도 출총제 등을 통해 경쟁력집중 억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경쟁력집중 억제정책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시장에 다른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결국 경쟁촉진이라는 공정위의 본래 목적에 어긋난다”며 “경쟁력집중 억제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한 부정적인 인센티브까지 제공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여건과 정책환경이 완전히 바뀐 지금, 경제력집중 억제기능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규제에 불과”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잠식시키고 있다”며 전경련은 “상품시장의 경쟁촉진만을 관장하고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는 해당 전문 규제기관에 일임”하고 있는 미·영·독·EU와 “2002년 경쟁력집중 억제정책을 폐지한” 일본을 빗대 한국 공정위를 비판했다.
 
전경련은 또한 “산업정책적 고려로 경쟁촉진이라는 공정위의 본래 기능에 역행하고 있고, 공정거래법의 적용제외로 경쟁제한적 규제을 양산하고 있다”며 공정위 기능의 전면 재고를 역설했다.
 
공정위의 사건처리 절차도 도마에 올렸다. 전경련은 “대통령이 (공정)위원을 임명하는 가운데, 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어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로부터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고, 심결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심결기구의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 또한 미흡하다”며 공정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 “위원간에 상하직급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위원 상호간에 동등한 위치에서 안건심의와 의견개진이 저해될 수 있고, 심결 등 핵심사안을 위원장이 단독으로 결정하고 있어 합의제 기관의 설립취지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경쟁당국이 사후적으로 경쟁제한성을 평가하여 위법성을 결정하는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당사자는 예측할 수도 없고 광범위한 형사제재의 위험에 무한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비판해, 공정위 존재이유에 대한 총체적인 불심감을 표현했다.
 
전경련은 이 같은 문제제기와 관련해 재계의 ‘입맛’에 맞는 개선방안까지 내 놨다.
 
공정위 역할을 순수 경쟁정책 기구로서 재편하기 위해 전경련은 “공정거래법의 ‘경제력집중규제’ 기능을 폐지하고 경쟁정책 기능을 좀더 강화시켜 순수한 의미에서의 경쟁촉진으로 공정거래정책 패러다임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시장규율 효과를 왜곡시키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으며 글로벌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공정거래법의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정책은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규제와 시장규율에 위임하고 경쟁 촉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에 규정되어 있는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의 구체적 수단은 지분제한, 출자제한, 의결권 제한, 부채비율 유지, 채무보증 등 대부분 소유지배구조와 금융건전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를 좀더 전문적으로 관장하는 타부처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전경련은 이외에도 독립성과 전문성 제고를 위해 행정부 영향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했다. 위원장 및 위원 임명 과정에서 국회 동의나 추천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합의제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위원 상호간 상하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조정하고, 과징금 부과기준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정립, 과징금 부과절차의 개선 및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형벌조항의 정비 등 제재조항에 대한 대폭적인 정비의 필요성을 밝혔다.
 
전경련 보고서가 갖는 의미의 무게만큼, 공정위의 대응도 발 빠르게 이뤄졌다. 같은 날 오후 공정위는 전경련 보고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며, 보고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을 폐지하라는 전경련 주장에 대해 공정위는 “대기업 시책은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공정위 본연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데다 선진국들도 이를 다루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공정위는 사건처리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엔 “공정위는 합의제 기관으로 사건처리에 있어 위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99년 금융 및 자본시장 관련 규제업무를 다른 기관에 넘기라고 권고했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도, OECD와 금국제통화기금(IMF)이 각각 지난해 6월과 연말께 공정위 경쟁정책 강화를 권고하고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지지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경련은 보고서 형식의 ‘서면전’에서 뿐 아니라, 토론회를 통한 ‘대면전’에서도 공정위를 거세게 압박했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을 초청, ‘2005년 공정거래정책 방향’이란 제목으로 진행된 포럼에서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한경연 참석자들은 공정위의 역할과 출총제 등을 놓고 강 위원장을 몰아붙였다.
 
이인권 박사는 “학자입장에서 볼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기구인데, 국민들 사이에서 기업집단을 혼내주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공정위에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공격했고, 좌승희 원장은 “정부의 재벌정책이 왜 ‘영향이 없다, 적다’는 식으로 방어적이 됐냐”며 “정치적 자유의 평등은 있어도 경제적 자유의 평등은 있을 수 없는 만큼 동등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강 위원장의 응수도 만만찮았다. 강 위원장은 “공정위가 재벌을 혼내주는 일만 하는 것 처럼 착각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 선진경제로 발전해 순환출자가 해소되면 이 문제는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 박사의 공격을 반박했고, 좌 위원장의 지적에 대해서도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동시에 남의 자유도 중요하다. 이는 결과의 평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말하는 것으로 철학적 문제는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로 받았다.
 
출총제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 강 위원장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출총제 후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이번 개정으로 출총제 적용을 받는 대기업집단이 10개로 줄어들 것이고, 기업들이 내외부 견제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면서 내년에는 5개 정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 평가하고,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끝나는 2007년이 되면 출총제가 적용되는 대기업집단이 거의 없어져 자연스럽게 폐지될 것”이라 밝혔다.
 
조성봉 박사는 그러나 “출총제를 궁극적으로 폐지한다는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과거에 출총제나 계좌추적권이 폐지됐다 재도입되고 부채비율 졸업기준도 다시 폐지되는 등 공정위 정책이 일관성에서 다소 흔들리고 있다”며 “현 졸업기준도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걱정된다”며 의문을 표시했다. 
 
강 위원장은 이와 관련 “경제상황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상황에 맞게 개선하려는 것을 정책 일관성이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면서 “출총제 졸업기준이 나중에 또 바뀌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답변했다.
 
강 위원장은 또한 계좌추적권 부활과 관련해서도 “부당내부거래에만 활용되는 것으로 그동안의 조사에서 80% 이상이 계열 금융사를 끼고 이뤄지기 때문에 계좌추적권 없이는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부당내부거래가 없어진다면 3년 뒤부터는 없앨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한 재계의 공격은 갈수록 노골화될 것이란 점에서, 전에 없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전경련과 공정위 힘겨루기의 향후 향배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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