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전·현직 노동자들의 휴대전화가 불법복제돼 ‘누군가’ 위치 추적을 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던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소 중지 결정을 내리자 삼성일반노조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16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성시웅 부장검사)는, 지난해 7월 산재유가족, 삼성전자와 삼성SDI 전·현직 노동자 등 12명이 ‘누군가’에 의해 휴대전화 불법복제를 통한 위치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이건희 회장 등 삼성 관계자 8명과 휴대폰을 복제한 ‘누군가’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 기소중지하고 이 회장 등에 대해서는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수사 결과 ‘누군가’가 고소인들의 휴대전화를 몰래 복제한 사실은 밝혀졌으나 전화를 불법복제한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누군가’를 기소 중지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누군가’를 밝히지 못해 ‘누군가’와 삼성 관계자들의 연관 여부를 밝힐 수도 없어, 삼성 관계자들에 대해 ‘누군가’가 밝혀질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는 참고인 중지 결정도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검찰은 7개월 동안이나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피해자인 고소인들이 이미 밝혀낸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했다”며 “검찰은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지도 않고, ‘기소중지’라는 법적인 면죄부를 주었을 뿐 아니라 수사기간 동안 오히려 삼성측이 진실을 은폐하고 말소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공범자 역할을 스스로 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고소 당시 피해자들은 유령과도 같은 ‘누군가’에 의해 자행된 불법적인 위치 추적에 대해  “삼성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전문가를 고용, 진행한 것”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바 있다.

피해자들은 이에 대한 근거로 △피해자 대부분이 삼성 내 노조 설립 추진과 관련된 전·현직 삼성 노동자들인 점 △동일한 핸드폰으로 진행된 점 △장기간, 반복적으로 퇴근시간 후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점 △불법복제 휴대폰 발신 시 기지국 대부분이 '수원시 영통구 신동'으로 삼성SDI 수원공장과 동일지역인 점 △삼성SDI 울산공장과 수원공장에서 동시에 이뤄진 점 등을 제시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 통신사로부터 고소인들의 고유번호 등 개인정보가 열람된 내용이 담긴 로그기록을 입수, 분석 작업을 벌여 22명의 통신사 고객센터 및 대리점 직원들이 개인정보를 열람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검찰은 휴대전화 고유번호는 이들이 통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훔쳐볼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허술했고, 이들에 대한 계좌추적도 진행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민변 등 20여개 정당·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삼성노동자감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사진>을 갖고 검찰의 수사 중단 결정을 비판했다.
 


공대위는 “불법복제 휴대전화를 통한 위치 추적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검찰의 기소 중지 결정으로 이번 사건이 미궁에 빠져 버린다면, 이는 정보인권과 노동기본권을 무참히 짓밟는 폭거”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도 이 날 논평에서 “멀쩡한 사람을 간첩 등 공안사범으로 제조해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검찰이, 정작 실제 벌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수사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며 “민간인보다 나을 것이 하나 없는 수사능력을 가진 검찰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재수사를 촉구했다.
 
당은 또 “대기업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대한민국 검찰의 모습에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힘 있는 자에게 굴종하고 힘 없는 자에게 강해지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검찰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국민의 불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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