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홍합 정말 좋다.”
“외상 돼요?”
“우린 절대 외상 안 돼. 대신 리필은 돼.”
 
포장마차 안이 수다로 왁자지껄합니다. ‘동지들’이 삶아 낸 홍합을 씹으며, ‘또 다른 동지들’은 힘겨웠던 하루를 위로 받습니다. 화악, 얼굴을 덮치는 뽀얀 김을 뒤집어쓰며, 꽁꽁 언 몸을 녹입니다. 동지들에게 한 뼘 포장마차는 차가운 겨울,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입니다. 냉기 어린 맘을 데워 주는 뜨끈한 국물입니다.  
 
버려진 노동자들은 더 강해집니다. 일을 ‘잃어도’, 일을 ‘포기하진’ 않습니다. ‘내쫓아도’ ‘내쫓기진’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야겠기에, 포장마차를 열었습니다. 하루 종일 투쟁가를 부르고, 밤을 새며 어묵 국물을 우려냅니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속에서, 흐린 백열전구 하나로 새벽을 맞습니다.
 
설 연휴가 며칠 남지 않은 지난 2일, 회사의 용역전환 조치에 항의하다 강제 해고된 한원CC 경기보조원들의 209일째 투쟁에 동행했습니다. 이들에게 설의 북적거림은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듯 했습니다.  
 
뒤바뀐 일상
 
칼바람이 아침을 썰어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셔터가 안 눌러지고, 볼펜은 잉크를 뿜어내지 못했습니다. 올 겨울 가장 춥다는 날들이 요 며칠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경기도 용인시 한원CC 정문 앞, 깊숙이 점퍼 모자를 눌러 쓴 여성노동자들이 집회로 하루를 열고 있었습니다. 작년 7월 9일 싸움을 시작한 이래, 어느덧 투쟁이 하루의 시작과 끝이 돼 버렸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손님이 뜸해진 요즘은 그나마 아침 집회 시간을 조금 늦춰 잡고 있는 편입니다. 여름엔 첫 손님이 들어오는 새벽 5시에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점심 때 다시 했고, 저녁 손님에 맞춰 또 했습니다. 
 
이날 정문집회엔 10여 명이 모였습니다. 한원CC 경기보조원은 모두 140여 명입니다. 이 중 용역전환 강요 서명을 거부하다 해고당한 노동자는 40여 명, 투쟁에 상시 결합하는 인원은 20여 명입니다.
 
나오고 싶어도 ‘아파서’ 못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용역직원에게 맞아서 30분 이상 못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7개월 전부터 아이 놀이방 보낼 20만 원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7개월 동안 가계는 파탄 났고, 3명은 구속됐다 풀려났으며, 거의 모든 조합원들이 한두 번씩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두 차례의 가처분 판정으로 투쟁 천막이 찢겨나갔고, 회사 내 집회는 금지 당했습니다.   
 
“악덕 한원자본 노조탄압 중단하고 성실교섭 이행하라!”
 
“경기보조원도 노동자다. 비정규직은 죽어야만 하나. 누구 하나 죽어 나가는 꼴을 봐야 대화를 하겠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렀고, 차가 쌩쌩 달렸습니다. 깃발이 세찬 바람에 나부꼈고, 인적은 뜸했습니다. 마구 달리는 차들 속으로 ‘무모한 손’은 선전지를 내밀었고, 지나가던 버스가 문을 열고 받아갔습니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저녁별 보고 퇴근했습니다. 비 맞으며 풀 뽑고, 미끄러져 나뒹굴며 눈 치웠습니다. 노동자들은 부당함을 참아가며 회사를 아꼈지만, 회사는 그들을 “우리와 무관하다”며 내쳤습니다. 임옥현씨가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볼을 맞아서 다쳐도 치료비 하나 없고, 보험도 안 돼요. 눈 치우러 왔다가 넘어져서 3주 입원치료 했는데, 회사에서 5만 원 받았어요. 그것도 ‘원래 안 주는 건데 특별히 주는 거’라면서.”
 
플래카드가 찢어질 듯 펄럭였고, ‘경기보조원의 노래’가 바람을 탔습니다.
 
“해 돋는 산맥을 따라 계곡의 물줄기 따라 하얀 공 포물선 따라, 그래 따라지 인생을 산다. … 새벽별 보고 출근을 하고 저녁별 보고 퇴근을 하며, 그림자를 친구삼아 어둠 같은 이 길을 간다. 둥글둥글 흰 공을 따라 세상도 굴러가는데….” 
 
노비문서
 
<자치규약>
 
제1조 (목적)
본 규약은 경기도우미 한원CC 자치회(이하 “자치회”라 칭함)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명문화함으로써, 합리적이고 명확한 자치회의 운영을 그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용어의 정의)
6. 벌당 : 도우미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규약을 위반하였을 경우 적용하는 당번을 말함.

 
제6조 (벌당)
1. 1일 당번
⑤ 코스 내에서 껌을 씹는 행위
⑩ 코스 내 의자나 안내표지판 등에 걸터앉는 경우
⑪ 소매를 걷어 붙일 경우
⑫ 흡연실 이외의 장소에서 흡연하는 경우
⑬ 당번 귀가시 숙소 정리가 안 되었을 경우
3. 3일 당번
② 서비스 관련 등으로 고객으로부터 항의 발생시 (상황의 경중에 따라 퇴회 조치함)
5. 7일 당번
② 고객의 골프채를 분실한 경우

 
제7조 (자동 퇴회)
2. 시위 행위를 할 경우
4. 고객의 항의나 투서가 들어올 경우
8. 코스 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는 경우

 
제9조 (기타)
5. 도우미는 본 자치규약을 준수하여야 하며 이를 경시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 퇴회 조치를 한다.

 
어느 날 경기보조원들은 ‘자치규약’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인간’인지라 차마 서명할 수 없었던 40여 명은 그날로 일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노예였습니다.
 
외로움은 ‘연대’로 떨어내고
 
“오늘따라 왜 이리 반찬이 많아?”
 
정문투쟁을 마친 후 노조사무실 바닥에 점심상이 차려졌습니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펴놓자, 모두가 ‘진수성찬’이라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어묵, 멸치조림, 고추장아찌 정도가 보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평소 김치 일색이던 때에 비하면 ‘산해진미’가 틀림없다고 합니다. 사진기자를 향해 한 마디 주문도 곁들입니다.
 
“없어 보여야 되니까, 김치만 찍으세요.” 
 

 
점심을 먹으며 임미옥 부위원장과 김부영 사무국장은 연신 구미 금강화섬 노조측과 전화를 주고받습니다. 회사의 일방적 폐업에 맞서 4차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는 금강화섬 노동자들의 국회 앞 집회에 결합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장기투쟁 사업장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으로 서로에게 힘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약 한 시간 후 10여 명의 한원 노동자들은 국회 앞 금강화섬 남성노동자들 사이사이에 뒤섞여 구호를 외쳤습니다. 집회 신고가 돼 있지 않았던 터라 짧은 집회를 마치고 그들은 흩어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3시간 뒤, 서울 서초동 한원CC 본사 앞에서 그들은 다시 모였습니다.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버스 3대와 방송차 1대를 몰고 들이닥쳤습니다. 회사도 긴장했습니다. 안 보이던 전경까지 동원됐습니다. 10여 명, 외로웠던 한원 노동자들은 신이 났습니다.
 
“함성 소리도 평소와 다르고, 기분 너무 좋아요.”
 
금강화섬 노조가 상경투쟁을 하는 격주 수요일마다 한원CC 여성노동자들은 계속 기분 좋을 듯합니다.
 

 
연대집회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틀 뒤엔 용인수지 이마트 노조 집회에 결합하고, 그 다음날엔 용인·오산 지역 사회단체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 촛불시위를 합니다. 요즘, 한원 노동자들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연대집회를 다녀오던 차 안에서 누군가 말합니다.
 
“속 쓰려.”
“어제 술 마셨지?”
“아니 배고파서.”
“….”
 
그들은 허기 채울 돈이 없었습니다.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가장 힘든 문제는 역시 경제적 압박입니다. 김옥열씨가 요즘 조합원들 생활형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줍니다.
 
“우리 수입이라는 게 일 나가서 일당벌이 하는 건데, 이게 7개월째 끊긴 거예요. 처음 두세 달은 적금 부은 거, 보험 들어 놓은 거 깨서 살았는데, 그것도 바닥났어요. 월세도 3, 4개월씩 밀려 있고.”
 
임옥현씨가 더 ‘실감나게’ 말해 줍니다.
 
“초인종 소리가 나면 수도요금 받으러 왔을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임미옥 부위원장은 ‘우스개 소리’라며 말했지만, 웃기지 않았습니다.
 
“남편한테 1만 원 타서 일주일 써요.”
 
채현수씨는 아예 ‘1만 원으로 2주 나기’ 비법을 전수해 줍니다.
 
“일단 쌀은 시골 농사짓는 부모님한테 부쳐달라고 해요. 인근 노조 도움도 받고요. 김치는 조합원들이 한꺼번에 담아서 나눠 먹으면 돼요. 반찬은 할인마트 폐장할 때 가면 그날 떨이를 1, 2천원에 살 수 있어요.”
 
카드는 정지됐고, 빚은 늘어갑니다. 조합원들 집과 통장엔 가압류가 걸렸습니다. 회사가 조합원들 재산을 일일이 조사해서 ‘조치’한 결과입니다. 자기 집이 있는 조합원에겐 5천만 원씩, 집이 없는 경우엔 몇 백 원 남은 통장까지 가압류했습니다. 사내 시위에 대해선 한 건에 1인당 200만 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까지 합니다.
 

 
‘가장’인 조합원이 꽤 됩니다. 다른 수입이 전혀 없는 이들의 생활고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수준입니다. 임옥현씨는 남편과 이혼한 5년 전, 두 아이를 혼자 책임지며 한원CC 경기보조원 일을 시작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최근 그는 아이들 아빠에게 최저생계비 정도를 받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해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차가운 날씨처럼 마음도 추워요. 서러운 생각밖에 없어요. 내가 집까지 압류당할 만큼 잘못했나 생각하면… 집까지 뺏기면 애들은 어떻게 하나… 답답해요.”
 
최근엔 중학교 2학년인 큰딸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도 냈다고 합니다. 진정서에 딸은 이렇게 썼습니다.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엄마도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녜요. 애들하고 세끼 먹고 사는 거예요. 그저 김치하고 따뜻한 밥 먹고 사는 거라고요.” 
 
임옥현씨처럼 한원CC 해고노동자들 중 많은 수가 엄마들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때문에 아프고 아픈 엄마들입니다. 별거 중인 채현수씨도 그랬습니다.
 
“애들 반찬이 없어서, 간장에 밥 비벼 먹인 적도 있어요. 얼마나 비참한 줄 아세요. 큰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데 학원 못 보낸 지도 오래됐어요. 올 겨울엔 눈썰매장 한 번 못 보내 줬어요. 회사 과장이란 사람이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거지로 만들어주겠다고 협박했는데, 그대로 되고 있는 셈이에요.”
 
두 달 동안 구속됐다 풀려난 임미옥 부위원장은 아이에게 구속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어디 요양 갔다 왔다고만 했어요. 교도소에 있을 땐 아이가 보고 싶어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임옥현씨가 나직한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차라리 절규였습니다.
 
“좋아서 노동운동 한 게 아니라, 살려고 했다고요.”
 
“엄만 맨 날 푹 자요”
 
그래서 이들은 생계비에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작년 11월경부터 포장마차를 시작했습니다.
 
애써 모은 투쟁기금 120만원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6명씩 조를 짰습니다. 하루 투쟁 일정이 끝나면 3명은 천막을 지키고, 3명은 장사를 나갔습니다. 그러다 2차 가처분이 떨어지고 농성천막이 철거되면서부터는 생활비가 더 급한, ‘가장’인 조합원들이 하루 두 명씩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주일에 두 번씩 순번이 돌아옵니다. 하루 수익금 중 10%를 투쟁기금으로 떼고, 나머지를 두 사람이 나눠 갖습니다. 그렇게 번 하루 수입은 2만5천 원에서 3만 원입니다.     
 
오늘 장사 나가는 사람은 문순자씨와 채현수씨입니다. 채현수씨가 재정사업을 나가는 바람에, 돌아올 때까지 이은옥씨가 장사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장을 보러 중앙시장으로 갔습니다. 순두부, 홍합, 어묵. 메뉴가 단출해 장보기도 간단합니다. 홍합 6천 원 어치, 무 2개, 대파 1단, 다진 고기 1천 원 어치가 다입니다. 
 
두 사람을 본 상인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어떡해, 빨리 해결돼야지.”
“잘 돼 가는 거예요?”
 
투쟁조끼를 입고 시장을 하도 돌아다녀서 알 사람은 다 안다고 합니다. 한원CC 문제는 이미 용인·오산 모두의 일이었습니다.
 
전날 장사한 조합원 집에서 조리도구를 받아 문순자씨 집으로 갔습니다. 가처분 전에는 회사에서 장사 준비를 했는데, 회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 음식준비를 집에서 직접 해야 합니다. 그날 장사 나가는 사람 집을 옮겨 다니며 조리도구는 오산 시내를 날마다 이사 다니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준비 시간이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까닭입니다. 김치를 볶아 순두부 양념을 만들고, 무, 고추, 파, 멸치를 큰 통에 넣고 끓여 어묵 국물을 냅니다.
 

 
문순자씨가 한원에서 일한 지는 4년 가량 됩니다. 그 역시 한 집안의 가장으로, 포장마차로 버는 돈이 현 수입의 전부입니다. 일주일에 장사 두 번 나가니까 일주일 수입은 많으면 6만원, 한 달 수입은 24만 원 선입니다. 한 달에 35만 원 하는 월세가 6개월째 밀렸고, 얼마 전엔 도시가스 공급중단 통보도 받았습니다. 부족한 돈은 친정 어머니에게 조금 받아쓰고 있습니다.  
 
홍합을 물로 씻고, 하나하나 깨끗하게 뒤처리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장사하기가 점점 힘들어요. 젊은 사람들이 장사한다고 하니까 술 먹은 남자들 행패도 심하고요. ‘여긴 꽃밭’이라고도 하고, ‘남은 거 다 얼마야. 언니야. 다 사 줄 테니까 가서 놀자’ 그러기도 하고요.”
 
어묵 꼬치를 만듭니다. “엄마 예쁘게 꽂아”, 엄마를 응원하며 수경이도 어묵을 꿰고 나섰습니다.
 
“옥경(11살)이 하고 수경(9살)이 없었으면 못 견뎠을 거예요. 아이들 때문에 힘을 내지만, 용역전환 서명하고 일 해 벌릴까 흔들리는 것도 애들 때문이에요. 아이들한테 아무것도 못 해 주는 게 제일 힘드니까.” 
 

 
옥경이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지금 뭐 하시는 줄 알아?
“네, 장사하시려고요.”
 
-엄마 장사 끝내고 오실 때까지 뭐해?
“기다려요.”
 
-뭐 하고?
“텔레비전 봐요.”
 
-졸리잖아, 자야지.
“그래도 기다려요.”
 
-엄마 오면 안마 해 드려?
“아뇨. 엄만 맨 날 푹 자요.”
 
장사 끝낸 엄마가 돌아오면 새벽 3시가 넘습니다. 물먹은 스펀지 같은 엄마는, 옥경이 안마도 못 받고 ‘푹’ 잘 수밖에 없습니다. 
 
“일이 그리워 죽겠어요”  
 
저녁 7시가 지날 즈음 장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재정사업 갔던 채현수씨도 돌아왔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싸 들고, 네온사인 번쩍이는 오산시 운암동으로 이동했습니다.
 
단속을 피해 8시를 넘겨 장사를 나갑니다. 시청 직원들 단속에 몇 번 시달려 보고 익힌 요령입니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나서서 중재해 준 덕분에 조금 숨통이 트이기도 했습니다. 
 

 
포장마차를 치고, 홍합을 삶고, 어묵 국물을 데울 때쯤 민주노총 경기본부 배성태 사무처장이 ‘포장마차 연대’차 방문했습니다. 안성이 집인 배 처장은 포장마차를 시작했을 때부터 거의 매일 찾아와 전깃불도 달아 주고, 매상도 올려 줍니다. 
 
“퇴근하려면 여길 지나가야 하는데, 안 들르면 동지들에게 면목 없잖아요.”
 
경기본부는 올해 한원CC를 포함한 지역 장기투쟁 사업장 지원을 특화사업으로 정하고, 16일에 있을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한 상태라고 합니다.   
 
8시 25분경, 좁은 포장마차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졌습니다. 금강화섬 연대투쟁과 서울 본사 집회를 다녀 온 조합원들 중 몇몇이 포장마차를 밀치고 들어왔습니다. 금강화섬 노동자들의 연대로 힘을 많이 얻은 듯했습니다.
 
홍합 알갱이를 씹고, 어묵 국물을 마시며 언 몸을 녹입니다. 순두부에 밥 비벼 먹으며 왁자지껄 합니다. 솥뚜껑을 열자 포장마차 안으로 퍼지는 김이 안개 같습니다. 그 ‘안개 김’ 사이로 ‘까르르’ 웃음이 흐릅니다. ‘편안한’ 사람들과 보내는, 짧지만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입니다.
 
    
조합원들이 돌아가자 포장마차는 조금 썰렁해졌습니다. 술 한잔 한 손님들이 집에 가기 직전 들르는 코스라, 포장마차는 밤 10시가 넘어야 손님들이 조금씩 든다고 합니다. 장사 초기엔 지역 노조들이 와서 매상도 많이 올려주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유일한 장사비법은 ‘끝장장사’입니다. 무조건 그날 준비한 음식 다 팔릴 때까지 합니다.
 
조금 한가한 시간, 채현수씨가 말했습니다. “일이 그리워 죽겠다”고 말입니다.  
 
“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복직해도 코스도 잊어 먹었을까 봐 걱정이에요. 난 이 일을 아주 좋아했거든요. 눈 치우라고 해서 눈 치우고 풀 뽑으라고 해서 풀 뽑았어요. 그러면서도 눈밭에 앉아 김치 한 조각에 막걸리 한 잔이면 다 괜찮았어요.”
 
그런 그를 회사는 내 버렸습니다. 버림받은 이들은 이번 설 고향집에도 못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포장마차를 둘러싼 기온은 점점 내려갑니다. 주위를 밝히고 있던 네온사인들도 하나씩 꺼집니다. 추운 날씨를 못 이기긴 손님들이 들어섰다, 다시 빠져 나갑니다. 제법 북적북적 합니다. 밖과는 달리 포장마차 안은 온기로 제법 아늑합니다. 세상이 얼려 버린 노동자들의 가슴을 작은 포장마차 한 뼘이 녹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긴 하루입니다.
 
얼마 안 있어 두 엄마는 ‘푹’ 자게 될 겁니다. 아이들 안마도 못 받고 말입니다.
 

 
사진=박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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