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새로운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나 흔히 '혈류', '동맥'에 비유되곤 하는 돈의 흐름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시대변화의 흐름이 읽히기도 한다. 국내로 유입되는 돈(외국인투자)과 해외로 흘러나가는 돈(해외투자)을 투자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그 흐름을 한 번 읽어보기로 하자.

증가하는 해외직접투자

◇구조조정 일단락 신호=지난해 11월 중순, 해외순방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외투자에 관심이 많다. 대기업은 경쟁력과 자본력을 갖고 있고 일부 중소기업은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투자에 있어선 이런 기업들이 정부보다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세일즈 외교성 발언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97년 외환위기 직후 몇 년간은 듣기 힘든 말이었다. 돈의 흐름을 놓고 보면, 한국이 파산상태에서 돈을 유치하는데 급급하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쌓였으니 해외로 내보내기를 원한다는 신호이고, 지난했던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개인이 아닌 기업부문에서 돈이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다. 하나는 생산시설을 위한 설비 투자의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투자 성격이 강한 비제조업 투자이다. 전자의 경우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한 투자확대와 연계돼 있고 최근 산업공동화 현상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후자는 인수합병(M&A), 서비스업 및 부동산 투자, 지분확보를 통한 공동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이 분야는 아직 본격적으로 어떤 추세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됨에 따라 기업들의 차입 여건이 개선되고 있고, 이는 금융시장의 풍부한 유동성과 맞물려 인수합병 증가 등 투자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약달러 정책으로 원화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는 손실방지를 위해 해외투자를 적극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해 해외직접투자 통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표1>

<표1> 연도별 해외직접투자 동향(단위 : 억불)
연도199619971998199920002001200220032004
금액70.6 59.758.350.760.463.563.058.179.4


◇지난해 해외직접투자 급증=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는 3,904건, 79억4천만달러(신고기준)를 기록, 전년에 비해 건수와 금액면에서 각각 26.6%, 36.8% 모두 증가했다. 이는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지난 97년의 59억7천만달러에 비해 약 20억달러(33%)가 증가한 것으로 최근 8년간 최고 규모다.

이에 대해 재경부 국제경제과 박형수 사무관은 "중국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게다가 2003년 사스(SARS), 이라크전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으로 해외투자가 이연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업종별로는 지난해 제조업이 전체의 62.9%를 차지했고, 도소매업(14.9%), 서비스업(9.2%) 순을 보이고 있다. 국가별로는 중국에 대한 투자가 36억3천만달러로 가장 많았으며, 미국 14억2천만달러, EU 7억1천만달러, 베트남 3억5천만달러, 일본 3억3천만달러 순으로 집계됐다.

또 투자주체별로는 대기업투자가 42억5천만달러로 전체의 53.5%를 차지했으며 중소기업과 개인 투자가 각각 37.7%, 8.8%를 차지했다.<표2>

<표2> 기업규모별 해외직접투자 동향(단위 : 억불, %, 건)
구분대기업중소기업개인 등 기타
건수금액건수금액건수금액
‘03
(구성비)
100
(3.2)
28.2
(48.6)
1,849
(60.0)
25.4
(43.7)
1,134
(36.8)
4.5
(7.7)
‘04
(구성비)
177
(4.5)
42.5
(53.5)
1,732
(44.4)
29.9
(37.7)
1,995
(51.1)
7.0
(8.8)
※ 신고기준, ( )는 건수 및 금액별 비중임


◇해외투자의 핵심 '중국'=제조업이 전체투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는 설비투자 성격을 강하게 띈다. 이는 산업공동화 현상과 직결되고 그 핵심에는 중국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에 대한 투자는 지난 2002년 15.7%(금액 기준)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45.7%를 점유했다. 투자건수별로도 지난해 57.2%를 점유, 2002년 미국으로부터 1위 자리를 뺏은 뒤 부동의 최대 해외투자 대상국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특이한 점도 보인다. 서비스업과 부동산업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 지난해 서비스업 투자비중은 7억3천만달러(9.2%)를 기록, 전년 3억7천만달러(6.4%)에 비해 3%가량 증가했다. 부동산업 역시 2003년 1억4천만달러(2.5%)에서 지난해 2억8천만달러(3.5%)로 증가하는 추세다. 제조업 투자 역시 최근 설비투자 중심에서 지분투자로 성격이 변화하는 경향이 있으나 통계에서 구체적으로 잡히지는 않고 있다.<표3>
굿모닝신한증권 윤영환 연구위원은 "90년대 후반 미국에서 제조업의 금융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는 기업들이 변동성 증가를 관리하기 위해 유형자산 취득보다는 투자지분 취득을 선호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점차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박형수 사무관은 "은행별로 투자실적을 집계해 연간·분기별로 파악하고 있으나 아직 그런 부분까지 통계에 반영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표3> 미국·중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 동향(단위 : 억불, %)
구분‘01‘02‘03‘04
건수금액건수금액건수금액건수금액
미 국
(구성비)
518
(22.4)
18.4
(29.0)
478
(17.4)
14.2
(22.6)
589
(19.1)
7.6
(13.1)
835
(21.4)
14.2
(17.9)
중 국
(구성비)
1,127
(48.6)
10.0
(15.7)
1,550
(56.4)
20.8
(33.0)
1,839
(59.6)
27.5
(47.3)
2,233
(57.2)
36.3
(45.8)
총 액2,317 63.52,74963.03,08358.13,90479.4
※ 신고기준


◇'제조업의 금융화' 단초=지난해 굵직굵직한 해외투자를 살펴보면, 하이닉스가 미국과 중국에 5억달러를 투자했고 LG전자와 오리온전기도 영국과 미국에 각각 2억5천만달러, 1억6천만달러를 투자했다. 기아자동차도 슬로바키아와 독일에 1억4천만불을 투자했으며, 삼성전자와 다음커뮤니케이션도 일본과 미국에 각각 1억3천만달러, 1억1천만달러를 투자했다.

투자성격을 살펴보면 LG전자의 경우 과거 투자분에 대한 손실보전을 위해 추가 투자됐고, 기아자동차는 해외 공장 건설을 통해 지역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했다. 별로 특이할 게 없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일본 토시바사와 공동투자 형태로 도소매업에 진출한 것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미국 라이코스사를 인수합병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이는 과거 전통적이었던 제조업 투자가 아니다. 외환위기를 맞아 팔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팔았던 한국 기업들이 이제 해외 기업의 지분확보나 M&A에 적극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윤영환 연구위원은 "혹독한 구조조정이 살아남은 기업들에게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풍부한 재무여력을 선물로 남겼고 이는 곧 확장의 시대를 의미한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외국인투자도 성격 바뀐다

◇외국인 국내투자 다시 급증세=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 1월 작성한 '2004년 외국인직접투자 동향 및 특징'에 따르면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 2000년 이후 꾸준히 하락하다 2003년 65억달러를 바닥으로 지난해에는 128억달러를 기록, 98% 급증했다. 산업별로는 제조업이 62억달러, 서비스업이 61억달러를 기록해 균형을 이뤘다. 최근 3년간 제조업 비중이 25%대에 머무른 것과 비교하면 제조업 증가가 크게 두드러진다.

지역별로는 미국 47억달러, 일본 22억달러, 중국 11억달러, EU 30억달러로 중국과 일본 두 나라가 EU 전체보다 더 많은 투자를 기록했다. 투자규모별로는 1억달러 이상의 대형투자가 74억달러를 차지해 전체의 86%에 달했고 1천만달러 이상 1억달러 미만의 중대형 투자는 36억달러, 1천만달러 미만의 중소형 투자는 14억달러를 기록했다. 투자형태별로는 신규투자가 48%를 차지, 증액투자 43%를 앞질렀다.

보고서에서는 "종합적으로 2004년의 투자유치는 제조업의 증가, 일본과 중국의 약진, 대형 신규 그린필드형 투자의 증대 등이 주요한 특징으로 부각된다"고 설명했다.

◇착취형에서 '윈윈'으로?=최근의 외국인투자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물밀듯이 흘러 들어왔던 외국인투자가 M&A 중심의 착취형 투자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 들어오는 돈은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 것.

우선 디스플레이와 자동차 등 '산업 클러스터 강화형'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제조업 업종별 투자를 살펴보면 전기전자 부문이 29억달러로 47%를 차지, 크게 증가했다. 이는 최근 3년간 연평균 5억7천만달러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대약진 수준에 가깝다. 특히 일본의 경우 아사히글라스의 공장증설과 소니와 삼성전자의 합작투자 등 14억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제 외국기업들도 과거 주종의 투자관계에서 벗어나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부문에 공동투자하거나 대등한 관계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LCD를 비롯한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로, 여기에 산업클러스터 강화형 투자가 활발한 점은 매우 주목할만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영환 연구위원은 "클러스터 투자 등 합작투자는 국내와 해외부문이 윈윈할 수 있는 구조"라며 "한국시장이 이미 핵심이고 외국이 그에 편승함으로 인해 향후 추가 설비투자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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