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하역 노동자의 상용화 문제와 더불어 하역노동자들에 대한 항운노조의 노무공급독점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실 오래 전부터 간헐적이지만 다양하게 제기돼 왔다. 특히 기아자동차 채용비리와 부산항운노조 조합원 선발비리 수사가 확대되면서 항운노조의 클로즈드숍(closed-shop)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조합원이어야만 취업할 수 있다는 점(클로즈드숍)’을 일부 악용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챙긴 것이 문제이지 구조적인 문제로 호도되어서는 곤란하다.

비리 문제와 클로즈드숍 혼동 말라

전국적으로 항운노조는 각 조직별로 ‘인사위원회’라는 별도의 민주적 의결구조를 통해 인력 선발에 공정성과 객관성을 중시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부분적으로 ‘노사공동수급조정위원회’를 통해 인원충원을 해나가며 노무공급의 투명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항운노조가 “얼마나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제도를 악용해 사리를 채우지 못하도록 제도적, 실천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가”에 있다.

클로즈드숍(closed-shop) 제도는 노동자가 고용기회를 획득·유지하기 위해 노조가입을 강제하는 것으로 노동조합의 지위를 강화해 조합원의 고용을 안정시키는 유효한 수단이다. 항운노조의 현재 채용관행이 바로 클로즈드숍 제도이며 이러한 관행은 노사정의 필요에 의해서 자생적으로 발전돼왔다.

정부는 노조에게 클로즈드숍제를 인정, 강력한 리더십의 발현을 통한 자율관리를 보장함으로써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해왔다.

하역회사는 클로즈드숍을 통해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항만하역노동의 파동성·계절성 때문에 전 하역노동자를 상시로 고용하기 어려운 하역업체로서는 노무자의 확보가 기업운영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하역업체는 노동자를 노조가 관리·통제하도록 함으로써 노무관리의 효율화를 기하는 전략으로써 클로즈드숍제를 노조에게 허용할 필요가 있었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조합의 영향력의 증대와 교섭력 강화를 위해 클로즈드숍제의 실시를 요구했다.

이와 같이 노사정의 상호 필요에 의해 형성된 클로즈드숍 방식과 현행 항만노무공급제도는 항만노동의 이원적인 노무공급구도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항만하역의 유연성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역노동생산성을 최상으로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이는 클로즈드숍 방식의 현행 항만노무공급제도가 주변부 인력의 수량적 유연화 전략과 기본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한 형태

물론 클로즈드숍제는 ‘독점적’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역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시키는데 있어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은 최근 우리 노동시장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고려할 때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이후 근로자파견사업이 합법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고용이 급속히 확대돼 왔다. 비정규직의 확산에 따라 초래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정규직에 대한 근로조건이 크게 저하되고 정규직과의 심한 보수격차의 발생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는 비정규직에 대한 각종 보호제도의 확대와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중요하다.

이른바 ‘노동의 후퇴’가 불가피한 새로운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자유노동자인 하역노동자를 조직화해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항운노조의 기능과 노무공급 독점관행은 소중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 하역업 부문의 항운노조 클로즈드숍제의 노사관계 체계는 하역업과 하역노동 자체의 특수성과 역사성이라는 기저에서 진화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산물이다. 따라서 하역노동제도를 단순히 일반적이고 평면적인 시각으로 평가하고 재단할 경우 관행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저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클로즈드숍 방식의 현행 항만하역노동의 관행은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항만하역노동자의 고용과 근로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발전된 고용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자본가들은 현재의 관행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만약 현재의 관행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면 지난 1898년부터 현재까지 유지해온 항만하역노동의 관행은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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