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노동운동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스스로 잘 살았다고 자위해도 좋은 때가 왔다. 보수적 가치에 물들어 진보주의에 괜한 적의를 품었던 사람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딱 좋은 시절이 왔다. “거 봐라, 내가 뭐랬냐고… 그네들은 아니라니까….”

반면 사회운동에 뛰어든 뒤 삶의 고통과 마음의 좌절을 힘겹게 이겨온 사람들은 우울함을 호소한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말없는 지지와 애정을 보내 온 사람들이 후회 섞인 푸념을 털어놓는다. “어떻게 된 거야? 왜들 이러는 거야?”

설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너는 뭣 때문에 그 고생을 하느냐는 부모와 가족들의 원망이 들려온다. 가벼운 선물 보따리가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심정일 것이다.

통과의례이거나 한때 어려움일 것이라며 위로해 보지만, 답답한 가슴은 쉬이 뚫리지 않는다. 감정에 치우칠 때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머리 속의 숙제는 풀리지 않는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이게 혼자만의 상상은 아닐 것이다.

물론 역사와 전례가 말해준다. 백색 테러도 있고 적색 테러도 있었다. 노동운동은 ‘하얀 손’의 사변이 아니라 ‘몸’의 웅변으로 지탱돼 왔다. 지미 호파도 있었지만 론 캐리도 있었고, 김두한 김영태도 있었지만, 김말룡과 김경숙도 있었다. 심지어 우익 노조지도자들조차 의리와 배짱만큼은 높이 사줄만한 구석이 있었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상원 청문회에서 전미트럭운수노조(팀스터)의 위원장 지미 호파를 부패한 노동귀족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동안, 호파는 시가를 입에 문 채 이렇게 응수한다.

“손에 기름 때라곤 묻힌 적 없이 평생을 부모 덕에 호위호식해온 도련님이 ‘노동’을 알기나 해?”

그러나 검은 세력과 절연하고 부패추방을 선언한 민주팀스터(TDU)가 없었다면 그의 호기는 더러운 변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동일방직과 원풍모방,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당당한 일어섬이 없었다면 유신시대의 노동운동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고, 청계피복노조의 재건운동과 구로동맹파업이 없었다면 87년 이전 노동운동은 명맥을 잇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적 교섭은 그야말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약과 권고를 말하는 이상, 3자주의에 기초한 대화만큼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 한국 정부에 대한 OECD-ELSAC(경제협력개발기구 고용노동사회위원회)의 조사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노사정 협의 자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진짜 문제는 ‘대화’가 아니라 무엇을 ‘합의’하느냐에 있지 않을까?

잇따른 선거 파행과 대의원대회 유회, 그리고 폭력 사태는 더 이상 재연되지 않아야 한다. 절박한 심정에서 막다른 선택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라면 심정적 동조자는 얻되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져야 할 것이다.

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단호해야 한다. 노조 대의원과 집행부가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공개적이고 투명하다면 객관적인 채용 기준을 설정해 활용될 수도 있고, 나아가 교육훈련 과정에는 더 깊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

뒷거래가 아닌 당당한 협상이 필요한 때다. 난투극이 아닌 정당한 투쟁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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