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당 연찬회에서 여의도연구소가 제출한 ‘2007년 당혁신방안 보고서’와 얼마전까지 여의도연구소장직을 맡고 있었던 박세일 정책위의장의 ‘21세기 혁신적 중도보수주의 노선’ 문건을 둘러싸고 격론을 벌였다.
 
당혁신방안 보고서는 우선 한나라당이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위기의 핵심적 내용은 여섯가지이다.
 
첫째, 당지지층조차 당을 가장 귀족적이고 수구적인 정당으로 인식하는 등 부정적 이미지가 심각하다는 것. 둘째, 국민의 56.9%가 진보개혁성향 정권을 선호하는 등 당과 보수가 한국 사회의 소수세력이라는 것. 셋째, 그간의 호남-비호남 구도에서 영남-비영남으로 구도로 전환되었다는 것. 넷째, 승패의 관건인 20, 30대가 당을 싫어한다는 것. 다섯째, 인터넷에 의한 정치환경 변화에 당의 대응능력이 부족해 사이버에서는 거의 전멸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여섯째, 당이 위기에 둔감한 체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보고서가 담고 있는 현실인식과 제안은 그리 새롭다고 할 수 없다. 몇 가지 세부적인 사항을 빼놓고는 97년 대선 패배 후에도 그렇고, 2002년 대선 이후 줄곧 당내에서 반복 제기되었던 것들이다.
 
박세일 정책위 의장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선진화 프로젝트’는 말할 것도 없고, 21세기 혁신적 중도보수주의 노선이라는 것도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무슨 ‘주의’ ‘노선’이라고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한나라당이 집권여당이었던 김영삼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구사되었던 각종 지배담론의 복사판 혹은 색다른 포장에 불과하다.
 

 
자유민주주의, 시장주의, 공동체주의, 세계화 등에 대한 강조를 볼 때 그러하다. 구체적인 예로 박세일 정책위 의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복지수석으로 있을 때 ‘생산적 복지론’을 차용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생산적 복지론에는 그가 21세기 혁신적 중도보수의 핵심구성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는 시장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이미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는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정책을 거쳐 현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 혁신적 중도 보수주의 노선이라는 것은 그 내용 구성에서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론’(이는 이후 ‘국제화론’ ‘세계화론’ ‘국가경쟁력 강화론’ 등으로 이어졌음)에서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론’,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중심국가론’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지배담론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서 이 보고서와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한나라당에서조차 이 보고서와 주장이 전혀 새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운데, 당내 특정세력(특히 박근혜 현 대표체제)의 ‘입지굳히기용’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지도 않은 것을 근사한 것인 양 포장해가지고 나온 것이 무언가 수상쩍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국 논란의 귀결은 집권을 위한 실천적 방안의 구체화가 아니라,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박근혜 대표의 책임 문제와 당권-대권의 분리라는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보다 근본적으로, 한나라당이 상이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보수적 개혁세력’과 ‘영남수구세력’ 간의 ‘동거정당’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한나라당은 제출된 보고서와 주장되고 있는 이념-정책적 노선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당내 세력 간 대립을 나타낼 수 밖에 없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모든 당내 실천행위를 당권장악을 둘러싼 갈등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말이다. 
 
물론 이는 권력관계를 본질로 하는 정치의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의문점이 생겨난다. 당쇄신과 혁신적 중도보수주의 노선을 주창하는 이들은 왜 하필 한나라당이 선진화 세력의 중심에 서야 하며, 이미 다른 정치세력에 의해서 실시되어 왔고 실시되고 있는 혁신적 중도보수의 노선이 왜 하필 한나라당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나아가 왜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한다고 고집하는지 말이다. 당내 세력들이 서로 융합되고 조화되지 못한 채, 두 번씩이나 정권탈환에 실패한 그 정당에서 말이다. 이미 집권하고 있고, 표현만 다르지 혁신적 중도보수주의와 똑같은 이념과 정책을 갖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손잡는 것이 보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손쉽게 조국의 선진화(이미 정부여당은 선진화라는 용어도 함께 쓰고 있다)를 이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왜?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이 ‘구진보세력’이라고 일컫는 집단보다 영남수구세력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이들은 스스로 호명하는 것과 같이 ‘철없는 386운동권’ 출신보다는 그래도 더 풍부한 집권경험을 갖고 있는 영남수구세력들이 더 낫다고 보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것이 억측이든 아니든 간에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정작 자신의 눈에 박힌 들보를 보지 못한다는 성서의 말처럼 이들은, 이미 혁신적 중도보수의 길로 경도되어 나름대로의 집권경험도 가지면서 기성정치화된 386운동권 출신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거나 혹은 그들 편에 서지 못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사회적으로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있지 못하다. 만약, 정말, 만약 이들이 진정으로 정치-사회적으로 다수가 되고, 혁신적 중도보수주의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쇄신을 외칠 곳은 영남수구세력이 포진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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