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들에게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 같다.
 
이제 전체 ‘민주노조운동진영’까지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신들린 듯 거칠 것이 없다. 사설과 컬럼을 통해 ‘조지는’ 것은 물론, 노동운동 내부의 '비판자'들을 총동원해 ‘노-노갈등 양상’의 극대화도 꾀하고 있다. 예의 ‘왜곡’과 ‘침소봉대’도 빠지지 않는다.
 
이번 사태에 가장 높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언론은 단연 ‘친재계신문’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2월 3일자 사설을 통해 ‘민노총 존재이유를 고민할 때다’라며 민주노총을 존폐의 기로로 몰고간다. 중앙은 “민주노총은 자중지란으로 내부 붕괴를 우려해야 할 벼랑 끝에 몰렸다. 위원장의 사퇴로 봉합될 상처가 아니”라며 다음과 같은 ‘극언’을 퍼부었다.
 
민주노총의 실패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고대하는 경제살리기는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한 집단의 횡포에 온 나라가 전전긍긍하는 서글픈 현실이다. 민주노총은 몰염치한 이익집단이자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전락하는 위기를 자초했다. 밖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진해체까지 포함해 내부적인 자성이 우선돼야 한다.
 
아직 ‘사퇴’ 여부도 불분명한 민주노총 위원장을 겨냥해 “사퇴로 봉합될 상처가 아니다”라며 한술 더 뜨더니, ‘자진해체’까지 고민하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온 나라가 전전긍긍’ ‘몰염치한 이익집단이자 사회발전의 걸림돌’ 등 갖은 표현을 동원해가며 민주노총을 패륜집단화하는 반면, 무엇이 이번 사태의 ‘쟁점’이었는지에 대해선 단 한마디 언급도 없다.
 
일개 언론사로서는 1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최고 수위의 주의, 주장이다. 단단히 ‘신들렸다’고밖엔 보이지 않는다.   
 

눈여겨 볼 지점은 ‘본질’과 상관없이 이번 사태를 ‘배부른 자들의 투정’으로 단순화시킨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3일자 사설 ‘폭력으로 얼룩진 단상 위의 민노총’을 보자.
 
민노총 조합원은 대부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밖에 되지 않는다. 소득 분포로는 최상위 노동계층에 속한다. 민노총이 조직원의 구성대로 대기업 노동자의 이익만 돌보는 동안 그 바깥에 있는 중소하청업체 근로자들과 비정규직은 그 비용을 부담하느라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구성분포를 보면, 민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은 과대 포장돼도 보통으로 과대 포장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의 ‘핵심적 쟁점’은 결국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엄호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였다. 현 집행부는 비정규노동자 등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라는 제도권 틀 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이른바 강경파들은 사회적 합의에 기대는 순간, 무력화되기 십상이므로 단호한 대정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전술적 차이는 엄존했으되,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민주노총이 엄호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지난해 정부의 ‘비정규법안 개악안’엔 일언반구도 않다가 민주노총을 공격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들고나온다. 이들에게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은 있다가도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일 뿐이다. 신들린 탓이다.
 
이들 언론은 특히 노동운동 내부의 비판자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3일자 ‘시론’에 지난해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바 있는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의 박삼현 수석부위원장을 등장시켰다. 그는 자못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현중노조는 1월 중순 창사 이래 처음으로 경영현황설명회를 회사에 요청, 전 대의원과 집행간부 등 250여명이 회사 중역과 각 사업본부장 등 50여명으로부터 경영사정을 소상히 듣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설명회에서 파악한 ‘우리 직장의 실상’은 얼마 전 현대중공업에 일감을 준 엑슨모빌사에 노조가 감사의 편지를 보내는 용기를 내게 했다. 과거처럼 ‘선명성’에만 매달리는 전투노조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한국노총 중앙교육원의 김성태 원장 역시 2월 3일자 중앙일보 ‘시론’을 통해 ‘민노총, 희망의 불씨를 끄지 말라’며 꾸짖고 나섰다.
 

사실관계가 왜곡된 경우도 적지 않다. 조선일보는 2일, ‘민노총 집행부 총사퇴키로 대의원대회 난투극…노사정위 복귀 무산’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집행부가 총사퇴키로 했다”고 잘라 말했다. 기사내용을 보자.

이 위원장은 대의원들에게 “오늘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말했으며 대회가 끝난 후 민노총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해 집행부 책임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과 다르다. 당시 이수호 위원장의 실제 발언 내용은 이렇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기아차 문제 등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대회를 대의원들의 뜻에 맡기되, 무산된다면 위원장에 대한 불신으로밖에 볼 수 없다. 회의가 계속 이렇게 진행된다면 나로선 위원장을 계속할 의지를 가지기 힘들다. 만약 그것이 전체 조합원의 뜻이라면 사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위원장의 발언은 사퇴까지 염두에 둔 ‘배수진’을 친 것이지, ‘사퇴 선언’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조선일보 기자의 귀에는 그것이 ‘사퇴 선언’으로 들린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사이드에 이 기사를 배치하면서 ‘민노총 집행부 총사퇴키로’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한국일보도 사실관계를 왜곡했다. 한국일보는 3일자 3면 톱기사로 ‘최대위기 맞은 민노총’이란 기사를 실으면서 민주노총의 계파를 도표를 그려 소개했다. 이 신문은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를 전노투(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가 주도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조직에 대해 ‘중앙파와 현장파의 핵심조직으로 구성’됐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노투는 ‘노동자의 힘’을 비롯 일부 현장조직들이 주도하고 있을 뿐,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중심으로 했던 중앙파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중앙파의 경우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정설이다. 이 신문이 이처럼 ‘전노투’에 대해 ‘확대해석’을 시도한 것과 관련, 민주노총 관계자는 “전노투를 대단히 힘 있는 조직으로 키움으로써 내부 갈등을 부풀리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뜬금없이 공무원노조의 ‘제3노총 설립 움직임’을 보도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3일 ‘노동계 분열 가시화’라는 기사에서 노사정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민주노총이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 가입보다는 독자적으로 노총을 설립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내부에선 이같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측에 이같은 사실을 확인해본 결과 “중앙일보가 소설을 쓰고 있다”며 펄쩍 뛰었다. 공무원노조측엔 한마디 문의도 없이 노사정위측의 말을 빌어 일방적으로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는, 물론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태를 기화로 삼아 ‘자진해체’ 운운은 물론, ‘노노갈등’을 부추기고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는 보수언론들의 태도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그들의 보도야말로 국민적 갈등과 불안, 그리고 사회통합의 발목잡기임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보수언론들의 존재이유’도 고민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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