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미국의 한 평범한 가정을 보자. 대학을 졸업한 연봉 3만불의 남편, 지하철역에서 산 신문 한 장과 커피를 들고 출근한다. 부인은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집안일을 대충 정리하고 자신의 일을 위해 집을 나선다.
 
남편 수입의 반에도 못 미친다. 이 가계의 1년 수입은 4만5천불. 이중의 절반이상이 세금과 집값인 모기지(mortgage) 상환으로 나간다. 소위 ‘모기지’를 갚기 위해 거의 젊은 시절을 허덕인다. 남편 혼자 친구들과 저녁에 만나 선뜻 1백불어치의 술을 마시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한다.
 
부인이 낮에 일을 하기 때문에 남편도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안일의 상당 부분을 떠맡아야 한다. 남자들에게 미국은 '천국처럼 보이는 지옥'이고, 우리나라는 '지옥처럼 보이는 천국'이라고 한다. 문제는 미국은 여성이 일하지 않으면 도저히 가계를 꾸려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에 보육시설이 잘 돼 있는 것도 아니다. 동네에서 베이비시터를 찾아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기혼여성들은 직업란에 가정주부라고 쓴다. 일자리를 갖기 싫어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단정 하에 취업 자체를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실제로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

가부장주의와 노사분쟁의 악순환

200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8.9%로 서구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절대적 수치뿐 아니라,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의 차이는 거의 세계최고수준이라 하겠다.

얼마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에서 2만불로 이행하는 기간 중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증가율은 평균 9%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인당국민소득 1만불에 도달한 뒤 10년간의 여성의 경제활동참가 증가율은 평균 1.1%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노동쟁의는 외국에 비해 상당히 극심한 편이고 임금수준도 물가를 고려할 때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어떻게 보면 마냥 근로자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엄청난 집값, 터무니없는 사교육비, 직장을 못 구한 자식들 뒷바라지… 부담이 크다. 거기에다가 대부분의 가정이 가장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다 보니 계속해서 임금인상만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기업은 기업대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보니 결국 노사분쟁으로 이어지는 구도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를 확대해서 가장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정부가 규제를 통해서, 기업의 부담을 늘려서 여성고용을 장려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여성고용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대전제만을 내세워서 기업에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한다면 막상 인력수요자인 기업에서는 여성고용을 꺼리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용형태 다양화화로 기회 확대해야

여성고용을 늘리자면 규제보다 여성인력활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 육아문제 해결을 위한 인프라구축, 기업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부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노동시장에 속해 있지 않은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의 마련이며, 이러한 일자리의 마련에 있어서 굳이 정규직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기혼여성들의 경우, 입직과 이직이 비교적 자유롭고, 시간활용이 용이한 비정규직을 상대적으로 선호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성 파트타이머 중 자발적 파트타이머의 비율이 70% 이상이라고 한다) 고용형태를 다양화하여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육체적인 능력의 중요성이 점차 낮아지는 지식기반경제화에 따라 경제활동에 있어 여성의 역할은 점차 커져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 확대가 가구의 소득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여성의 경제참여를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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