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은 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만 하고 화합하지 못한다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화합을 이야기하면서 획일화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차이가 있어도 화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폭력사태로 얼룩진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자중지란’, ‘내우외환’ 등 다양한 사자성어로 표현되고 있지만 ‘화이부동’이란 단어의 뜻만큼 절실하게 와닿는 말도 없을 듯 하다.

민주노총 한 지역본부장은 “(사회적 교섭방침 결정과 관련)절차적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정권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야만 한다는 말인가”라며 “토론을 더 한다고 처리될 수 있는 문제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정권과 자본은 타협할 수 없는 대상인데 무슨 교섭이 가능하겠냐”고 안건처리에 반발했다.

그렇다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에 대한 문제해결 방법은 오로지 ‘힘의 대결’뿐일까. 자본과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노동자는 하나’여야 한다는 구호와 주장도 있는데 노동자간에 발생한 의견대립조차 ‘힘의 대결’로 풀어야 하나.

한 연맹 위원장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살해되거나 구속된 역사를 거론하며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가 민주노조를 건설했으며 투표를 통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며 추가토론과 표결을 주장했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찬반토론 종결과 표결에 동의한 대의원은 399명 중 275명이었다. 하지만 표결에 동의한 275명은 모두 ‘사회적 교섭’에 찬성하는 대의원들이 아니라는 것은 대의원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표결을 거칠 수 없었으니 결론은 알 수 없다. 끝내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또 한 번의 정족수 미달로 유회됐다.

‘사회적 교섭’에 찬성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노동자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사회적 교섭 안건을 결론짓건, 폐기하건 간에 ‘차이’만 강조되는 이상 ‘화합’은 실종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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