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사립초등학교 띄우기’가 민망하다.
 
동아일보는 지난 1월 28일 금요일, 주말에디션 ‘WEEKEND’ 커버스토리로 ‘떠오르는 네트워크 사립초등학교’<사진>를 실었다. 이 기사는 1965년을 전후해 세워진 국내 사립초등학교들의 ‘개교 40주년’을 맞아 서울 지역 사립초등학교 출신들의 현재 위상을 점검하는 내용이다.
 
“변치말자, 우리들의 우정을.” 1면엔 1976년에 졸업한 경기 ‘국민’학교 6학년 난초반 급우들의 졸업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빛바랜 흑백사진을 전면에 내세운 이 기사, 혹 사립초등학교를 매개로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 이야기라도 전하려는 것일까.   
 

 
흔히 학력을 이야기할 때 명문 중·고교 또는 명문대 출신을 내세우지만 사립초등학교 출신들은 출신 초등학교에 대한 긍지가 남다르다. ‘내가 배워야 할 기본을 사립초등학교에서 배웠다’는 생각이 있다. 스쿨버스, 점심 급식, 최신식 학교시설, 특별활동, 예절 교육 등의 이유도 있지만 수준높은 ‘이너 서클’이라는 점도 자부심에 내재해 있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수상하다. 출신 초등학교에 대한 긍지, 수준 높은 이너 서클 등 수식어부터 남다르다. 이윽고 사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경기국민학교 11회 졸업생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경기초등학교 11회(1976년 졸업)인 치과의사 이효선 씨(42)는 “대학 동창만 해도 이해 관계에 따라 만나게 되는데 초등학교 모임은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기주희 씨,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의사 이찬화 씨, 국립민속박물관 박선주 학예연구사 등 11회 동창 30∼40명과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멋진 이야기다. 대학 동창만 해도 이해관계에 따라 만나게 되는데, ‘초딩’ 친구들은 그렇지 않단다. 그것도 사립초등학교라 더한 모양이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잘 나가는’ 초딩 친구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경복 4회) 등 경복 출신들이 모인 ‘경복회’도 재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 학교 출신들은 와인, 골프 등 취미 생활을 중심으로 자주 모인다. 이와는 별도로 최근 경복초등학교 19회(1984년 졸업)가 졸업 후 20여년 만에 처음 연 대규모 동창 모임에는 같은 학년 전체 300명 중 30명이 모였다. 특목고인 대원외고 출신 30대 중반 21명이 결성한 소규모 사교 모임 ‘BJ 21’도 사실상 사립초등학교 동창들이 주축을 이룬다. 변호사, 컨설턴트, 사업가 등이 된 이들은 아내, 동생, 처남, 사촌 등 가족 대부분도 사립학교를 다녔다. 이 모임 멤버인 유트렌드 코리아 이정훈 실장은 “비슷한 환경에서 교육 받고 자란 동질성 때문에 사립학교 출신끼리 더욱 친밀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기사는 ‘파워맨들의 인맥지도’ 서술로 흐른다. 삼성그룹 이재용 상무,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전재만 씨 등 정재계의 파워2세들 역시 ‘당연히’ 사립초등학교 출신임을 강조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자 SK㈜ 최태원 회장의 부인인 나비아트센터 노소영 관장(경기 9회)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KBS 아나운서인 윤인구 씨(경기 20회) 등 대통령 혈육들만 열거하기에도 모자란다.
 
그런데 이들은 ‘특권층’답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도 고민하는 모양이다.    
 
윤 씨는 지난해 초 출신교인 경기초등학교와 경복고 동창 11명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같은 학년이었던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 조선호텔 정유경 상무 등과 20년 이상 막역한 친구다. 경복고 동창인 현대백화점 정지선 부회장과도 가깝다. “좋은 환경에서 받았던 혜택을 어떻게 사회에 돌려줄 수 있을까”하는 것이 모임의 고민이라고 윤 씨는 말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기사는 이들의 ‘사회적 책무’와 관련해 어떠한 사실도 설명하지 못하고 내내 특권계층의 ‘초딩 인맥’ 예찬으로 일관한다. 경복 출신의 한 전직 기자가 어떤 기자들의 요청에도 응하지 않던 모 재벌그룹 후계자와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성사시킨 일마저 초딩 인맥 ‘성공기’의 사례로 소개된다.
 
그런가 하면 “그러나 사립 출신들 사이에는 서로에게 절대로 ‘부담 주지 말자’ ‘신세지지 말자’는 의식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구차하게 초등학교 인맥을 업무에 이용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방어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이제 기사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흘러간다.
 
사립학교 출신들은 좋은 환경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 그러기에 흠 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예의바르고 조심스러운 몸가짐을 가졌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말이다. 그레이프 커뮤니케이션즈 이상훈 부국장(경기 11회)은 “초등학교 때 스쿨버스 대신 자가용을 타고 통학하는 친구들은 일부러 교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왔다”고 회상한다. 교사들도 미술 시간에 거의 다 만들어진 비싼 공작 재료를 사 온 학생은 나무랐다. ‘잘난 척 하지 말라’, ‘튀지 말라’는 의식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 공유됐다.
 
‘불편한’ 스쿨버스 대신 자가용을 이용한 학생들의 당연한 예의가 미담으로, 미술시간에 다 만들어진 재료를 들고온 ‘뻔뻔함’을 나무라는 일조차 굉장한 교육철학으로 여겨진다. 하기사, 저 특권층의 자제를 나무랐다니 대단한 사건이긴 하다. 결국 사립 초등학교의 특별함은 교사들의 ‘교육열의’에까지 이어진다.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이찬화 씨(경기 11회)는 과거 사립학교의 인성 교육과 교사들의 열의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방학 때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면 정성스럽게 답장을 보내 주셨죠. 무조건 윗사람 말에 순종하고 얌전할 것을 요구하던 시대였지만 선생님들은 우리가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말하도록 가르쳤어요.”
 
별안간에 과거 공립학교의 교사들은 방학 때 학생들의 편지를 받고도 답장 한번 써주지 않거나, 무조건 윗사람 말에 순종할 것을 요구한 비교육적 교사들로 전락하고 만다. ‘콩나물시루’로 상징되는 공립학교 생활 속에서도 ‘사제지간의 정’은 존재했음을 모르고 있는 걸까.
 
이쯤되면 이 글은 사립 네트워크가 뜨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라, 사립이기 때문에 뜬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처럼 ‘위태롭게’ 사립초등 찬양을 일삼던 기사는 ‘갑자기’ 아래와 같은 위화감 가득한 결론을 내리고 만다.
 
요즘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에 비해 크게 우위를 갖지 못하면서 많은 학부모는 자녀를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로 유학 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과거 사립학교의 교육은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결국 사립학교의 교육이 훌륭했다는 예찬이고, 과거의 영예를 되찾기 위해 분발하자는 응원이다. 하단에 배치된 박스기사에는 서울시내 여러 사립학교들만의 특기교육, 외국어교육, 인성교육들을 학교별로 상세히 소개해놓았다. 아예 그 옆엔 서울시내 사립초등학교 40여 곳의 주소, 경쟁율 등까지 도표로 작성했다.
 

 
전국의 초등학교 숫자는 5천5백여개이고, 이 중 사립학교의 숫자는 76개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전체 초등학교의 숫자가 5백50여개인데 비해 사립학교 숫자는 40개로 비율이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공교육 ‘강화’로 인해 시설과 교육여건 면에서 사립과 공립간의 차이가 좁혀지면서 사립학교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실제로 전교조 초등위원회의 관계자는 “‘지원자 미달’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립학교도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왜 이 기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되돌릴 수 없는, 혹은 되돌리지 말아야 할 사립학교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것일까. 사립학교들이 화려했던 옛날을 되찾지 못하면 ‘있는 계층의’ ‘조기유학붐’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라도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 기사를 읽은 우리들의 마음자리가 씁쓸하다.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에서 ‘준비물’ 챙길 경제적 여유도 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아야 했던 우리들의 과거는 문득 초라해지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공립학교에 들어가는 돈에 비해 수십배 이상 차이가 나는 사립학교의 학비을 생각하면, 행여나 우리 아이가 이 기사를 읽을까 두렵기만 하다. 
 
더욱이 돈 깨나, 힘 깨나 쓴다는 이들에게 ‘멤버십’으로 발행되는 ‘럭셔리 매체’가 아니라, 국내에서 발행부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중일간지’에서 이같은 기획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는 점이 무엇보다 괴이한 일이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신문사 직원들 상당수가 사립초등학교 출신이거나, 혹은 이 기사를 읽고 내내 불편한 기자의 마음자리가 어쩔 수 없는 ‘공립학교 근성’으로 배배 꼬여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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