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명료하게 말해서 내 주장은 핵심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강의실을 울렸다. 분필 한 자루 들더니 칠판에 한 자 한 자씩 내리 찍었다.
 
‘청·소·년·들·이·여·자·신·감·을·가·져·라!’
 
청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 있는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할 겁니다. 그럼 우리 문제는 누가 해결해야 되느냐?”
 
“….”
 
“누가 해결해야 된다고요?”
 
청중이 합창했다.
 
“우리요.”
 
“주위에서 그래요. ‘굳이 우리가 안 해도 남들이 해 줘. 우리가 설친다고 바뀌는 게 있니?’ 라고요. 이런 말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냐면요. 대한민국이 썩어간단 말이지. 그럼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도 없는 거야, 그죠?”
 
“북만 있으면 사물놀이가 됩니까? 꽹과리, 징, 장구도 있어야죠. 우리가 발 벗고 나서서 꽹과리, 징, 장구 역할을 해야 돼요. 그러려면 뭘 가져야 한다고요?”
 
“자신감.”
 
“뭐요?”
 
“자·신·감.”
 
“긴 호흡으로 갑시다. 단시간에 뭔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립시다. 끓는 냄비가 되지 맙시다. 청소년 여러분, 우리 모두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대한민국을 바꿔 놓읍시다. 같이 한번 외쳐 봐요. 대한민국을 바꾸자!”
 
“대한민국을 바꾸자!”
 
끓어오른 열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이 훌륭한 선동가는 올해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청소년 정치 첫걸음은 ‘자기 목소리 내기’ 
 
겪어 봐서 알고, 싸워 봐서 안다. 소리쳐도 메아리뿐이고, 애원해도 비웃음뿐이다. 애써 짜낸 목소리가 높은 벽에 튕겨 되돌아 올 때, 힘없는 사람들은 점점 극단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곡기를 끊고, 목을 매고, 뛰어 내리고, 몸에 불을 지르고…. 
 
학교 종교자유 문제가 사회 쟁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대광고등학교 강의석 군의 외로운 사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식하고, 일인시위 하고, 가출했기 때문이다. 오늘, 자기 권리 찾기에 목마른 한국 청소년들의 두 발은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이 서 있는 ‘그곳’을 딛고 있다. 
 
해서,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은 ‘정치’를 고민한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애타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이 ‘그들의 정치’를 갈구하는 만큼, 청소년들도 ‘자신들의 정치’를 희망한다.
 
‘한국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정치’, 그 해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7일,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준)가 주최한 <청소년을 위한 세상읽기> 제3강 ‘청소년과 진보정치’에서 ‘나의 주장 발표대회’를 연 것이다.  
 
50여 명이 참가한 이 자리에서 청소년들은 ‘5분 발언’을 통해 가슴 한 켠에 꾹꾹 눌러 둔 말들을 끄집어냈다.
 
그들은 “자신감을 갖자”고 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알자”고 했고, 알게 됐다면 “문제제기 하길 무서워하지 말자”고 했다. “불평만 하지 말고 행동하자”고 했고, “우리에게도 입이 있음을 보여 주자”고 했다. ‘공부하는 기계’가 아닌 “‘인간다운 학생’이 되자”고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정치는 곧 ‘이야기할 수 있음’ ‘목소리 낼 수 있음’이었다. 대신 생각해 주고, 대신 말해 줄 테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수없이 들어 왔던 청소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정치는 ‘자기 입으로 자기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정치란 차별을 없애는 것”이란 뚜렷한 정치관을 갖고 있는 ㄱ고등학교 정○○ 양은 청소년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그게 청소년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하나마나한 질문’에 뒤이은 ‘당연한 대답’이었다.
 
“학교에서 인권유린을 당하는 것도 청소년,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당사자도 청소년이에요. 청소년의 문제를 청소년이 외치지 않으면 누가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린 이름이 없어요. 그저 ‘학생’이고 ‘수험생’이에요. 문제의식이 있어도 학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요. 학생이 주인이라면서, 실제론 주인 이야긴 하나도 안 들어요. ‘참여정부’만 하지 말고, ‘참여교육’도 해야 되잖아요.”
 
배○○ 군은 부산에서 왔다. 2학년이 되는 올해 학생회장에 출마할 거라 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후원, 미군장갑차사고부산모임 활동, 다함께 회원 등 6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학교에서 별명이 ‘민노’다. 민주노동당 학생당원인 까닭이다. 
 
배군은 “우리도 머지않아 노동자가 되는데, 학교에선 노동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해 벙어리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효순·미선 사건으로 많은 학생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했을 때, 교육청에서 참가 금지 공문을 각급 학교로 내려 보냈어요. 우리가 분노한 이유, 우리가 거리로 나간 이유는 들어 보려 하지도 않고요.”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해서 학교에 늦잖아요. 그럼 왜 파업이 일어났는지 학교에서 이야기해 봐야죠. 근데 학교는 모른 척 하라고 해요. 사회문제에 고민하는 훈련을 해 봐야, 우리 문제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말예요.”
 
세상을 긴장시키는 ‘트러블 메이커들’
 
현실이 비루한 건, 알아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아서다. 청소년들 ‘정치화’의 첫걸음이 ‘자기 목소리 내기’란 걸 알지만, ‘자기 목소리 내기’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가 학교인 까닭이다. 청소년들의 입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정치공간인 학교에 대한 ‘고발’이 집중적으로 흘러나온 것도 그래서다. 청소년 정치에 관한 한 학교는 학생들을 옴쭉 달싹 못하게 만드는 감옥과도 같아서다.
 
지난 1년 동안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ㅈ고등학교 이○○ 양은 “지금 학교는 위로부터 바뀌길 기대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학교를 바꾸려면 아래로부터, 학생들의 목소리와 힘을 모아 아래로부터 바꿔내야”하지만, 이 양이 절망스러워 하는 건 “그 일을 해야 할 학생회의 제대로 된 활동 자체가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저를 포함한 학생회 임원들을 보면 ‘너네 뭐 하냐?’고 그래요. 우리가 학생들 의견 모아 학교에 전달하면 학생부장 선생님이 다 잘라 버려도, 학교의 지시는 우리를 통해 학생들에게 그대로 시행되거든요. 학생회가 학교에서 인정도 못 받고, 학생들에게 지지도 못 받는 거예요.”    
 
정양은 “우리 학교 학생회는 ‘학생회’란 명칭도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기독교계 미션스쿨인 학교 학생회 이름은 ‘성경 읽기반’이다.
 
“작년 9월에 축제 포스터를 기획해서 가져갔어요. 근데 포스터에 학교 교색인 보라색이 안 들어갔고, 예수님 얼굴이나 십자가 문양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 당했어요. 예전엔 어떻게 만들었나 10년 전 포스터를 봤더니, 예수님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고 천사가 막 날아다녀요. 우린 기가 막혀서 기존 안대로 인쇄를 강행했어요. 그랬더니 학교 분위기가 험악해져요. 결국 포스터 글씨를 보라색으로 하고, 여학생 모델이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거는 걸로 결론났어요.”
 
강의석 군의 경우나 이양의 학교처럼, 학교 종교자유 문제는 이미 청소년들에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문제가 아니었다. ㅅ고등학교 최○○ 양도 “어느 날 보니 우리 학교가 미션스쿨이 돼 있더라”며 비종교계 학교가 하루 아침에 기독교 학교로 돌변한 사연을 들려 줬다.     
 
“우리 학교는 내년부터 미션스쿨이 돼요. 처음엔 재단이 바뀌었나 보다 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 학교 재단 이사장이 학교 재단을 어떤 교회에 기부해 버렸대요. 학생들과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요. 조만간 예배도 보고 종교 교육도 받아야 될지 몰라요.”
 
많은 친구들을 앞에 두고 연단에 서서 울분을 토했던 청소년들은 개인 인터뷰와 관련해서는 이름과 학교 명칭을 익명으로 처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정도의 이야기조차 쉽게 할 수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을 내걸고 하고 싶은 이야기 맘껏 할 수 없는 상황이 한국 청소년들이 처한 현주소다.
 
“제가 사회문제와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니까, 날 걱정하는 전교조 선생님조차 그냥 조용히 공부하다 대학 가라고 충고하시더라고요. 그게 그 선생님이 절 걱정해 주시는 방식이었어요. 제가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아시니까요. 학생회장 1년 하면서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대인기피증까지 걸렸어요.”
 
이날, 이○○ 양은 부모님에게 독서실 간다고 하고 강의에 참석했다.
 
이양에게 조언한 전교조 교사의 우려는 단순한 노파심이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권리의식 높은 청소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 보지만, 결과는 심한 상처로 되돌아오는 게 다반사기 때문이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는 최○○ 군은 “학생부 잘 나오려면 선생님들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내 학생부에는 ‘과격한 언어 사용을 해서 충돌이 있었음’이라 적혀 있고, 선생님한테 항의한 일이 문제가 돼서 전학가야 했던 일도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모든 약자들이 그렇듯,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온 목소리마저 억압당할 때 청소년들은 점점 더 극단적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자기 목소리 뚜렷한 청소년들을 이야기에 좀더 서둘러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외치다 찍혀 버린 학교의 ‘트러블 메이커들’은 세상을 긴장시키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세상은 이들이 불편하다. 하지만 분명 그들이 만들어내는 긴장으로 학교와 사회는 변화돼 왔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최군’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지금 자기 이야기를 못하면서 어떻게 나중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대학 가서 하겠다지만, 대학 간다고 과연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못하면 나중에도 못해요. 나중엔 포기해야 할 게 훨씬 많아져요. 포기할 게 적은 지금, 우리, 용기 있게 목소리 내자고요.”
 


사진 =  박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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