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간부가 취직장사를 했다고 해서 온통 난리 법석이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사건이다. 기아자동차노조는 책임을 통감하며 집행부 총사퇴를 선언하고 모든 언론은 매일 경쟁적으로 노조의 부패와 비리를 들추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 강성노조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 그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운동 전체를 가름하는 잣대로 키울 태세다. 과거에는 자본쪽이 문제를 만들어 노조를 몰아붙이는 ‘기획성’, ‘연출성’이 강했지만 이번은 노조 간부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이 받을 충격파와 노동운동이 입을 타격은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구조적 문제의 핵심을 빗나간 관점들

지금까지 밝혀진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5~10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는 스포티지 생산라인을 증설하면서 네차례에 걸쳐 1,079명의 생산계약직 직원을 뽑았다. 이 과정에서 노조 광주공장 지부장이 채용 알선 대가로 7, 8명한테서 모두 1억8천여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부적격자 475명이 채용됐음을 밝혀내고 이외에 회사 또는 노조간부가 더 개입했는지를 추적한다는 것이고, “법률에 의하지 않고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제8조(중간착취의 배제) 등의 위반 혐의로 노조 지부장을 구속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한 사업장 노조 대표가 채용비리에 참가해 사욕을 채웠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기아자동차노조는 즉각 회의를 열어 총사퇴를 결의했고 상급노조인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은 '통열한 자성'과 '유감'을 표명하고 진상조사단을 꾸려 총체적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다짐했다. 당연한 조치다.

보다 정확한 진상은 검찰조사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자체 조사결과를 봐야 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민주노총은 스스로 다짐한 것처럼 “문제삼을 부분은 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나가고 노조를 징계할 사항이 있으면 징계”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사실만으로 보면 지나치게 노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저버릴수가 없다. '도덕성'을 노동운동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논의의 핵심은 한참이나 빗나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채용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문제의 광주공장은 신규 채용때 응모조건으로 30살 미만에 고졸 이하 학력만을 내세웠다. 선발시험은 없고 채용조건도 일정하게 정립돼 있지 않다. 입사지원서에 과거에는 추천인을 쓰도록 했지만 최근에는 지원자를 사내추천·사외추천·기타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볼 때 엄격한 채용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행적으로 연고채용에 의존해 사람을 뽑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고채용은 손쉽게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정실이 작용할 소지가 많고 따라서 부정과 비리가 언제든지 개입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회사 간부를 통한 연고채용은 노무관리에 편리하고 그것을 통해 노동자와 노조를 통제할 수 있다는 회사쪽으로서는 매력적인 채용방식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직 노동자의 구직경로가 연고채용의 일종인 친구·친지소개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바로 기업의 채용제도 그 자체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직원채용의 권한은 사용자가 갖고 있고, 따라서 노조간부가 주도해 채용비리를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수언론들은 강성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회사를 위협한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전체적인 인사비리의 고리에 노조를 끼워 넣어 공범자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 결과라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총체적인 회사의 인사비리에 노동조합 간부가 부분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봐야 한다.

세째로 비리를 막기 위한 노동조합 스스로의 노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연고채용에서 나타나는 인사청탁 관행이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보고 회사에 인사청탁 배격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함과 아울러 단체협약에 규정하기까지 하였다.

넷째로 사회 전체에 인사청탁의 비리가 빈번하게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사업장 노조간부의 비리를 침소봉대해 노조운동의 정당성 자체를 매도하려는 불순한 음모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이번 비리가 강성노조의 이기주의에서 나타난 결과라든가, 노사간에 맺어진 고용안정 협약까지도 강성노조의 협박에 의한 경영침해라는 논리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오비이락이라는 말처럼 항운노조에서도 채용금품을 받은 협의로 노조간부가 구속되면서 클로즈드숍(closed-shop)제도가 일방적으로 왜곡보도되고 있다. 조합원이어야만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노조간부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클로즈드숍은 노동자가 고용기회를 획득, 유지하기 위해 노조가입을 강제하는 것으로 노조의 지위를 강하게 해 조합원의 고용을 안정시키는 유효한 수단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노조가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노조간부가 제도를 악용해 사리를 채우지 못하도록 제도적, 실천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 밖에 회사 안의 종업원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노사관계에 개입할 수 없는 기업별노조 체계나 소수 간부들에 의해 노조운영이 독점돼 가는 경향도 이번 사건을 파악하는 데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또 하나의 계기돼야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일방적 매도는 엄연한 경계의 대상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보수언론과 사회에 만연한 시장주의 경제논리가 노동운동의 입지를 계속 위협해오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은 앞으로의 운동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의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빠른 시간 안에 진상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노동운동은 이번 문제가 손쉽게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바탕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표출된 것은 아닌지 차제에 정밀하게 검증해 볼 일이다.

현장조직력이 취약해져 활력을 상실하고 도덕적 해이가 늘어나면서 각급 조직이 동맥경화에 걸려 자본의 공격에 쉽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노동조합이 권력화해 노동운동의 원리인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을 망각한채 일부 소수 종파주의자들의 패권놀음에 휘둘린 나머지 운동의 당당함과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고 그것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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