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눈으로, 눈이 비로 바뀌며, 짙뿌연 먹구름이 대지로 내려앉은 19일 저녁. 칙칙한 기계골목의 어둠은 빨리 찾아왔고 적막함마저 감돈다. 성형, 주물, 용접, 연마 등 금속류를 다루는 ‘생계형 영세자영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 어둠이 내려앉기가 무섭게 점포 문을 닫은 곳이 눈에 많이 띈다. 가게 문을 일찌감치 닫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화투를 매만지는 사람들….

2~3평의 좁은 점포에 선반, 밀링, 용접기 등을 각각 한 두 대씩 갖춰 놓고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체들만 2만여 곳에 이른다.

“요즘 통 일감이 없어요. 그러니 이렇게 손놓고 있잖아요.” 이들 영세자영업체들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가고 있었다. 오후 6시, 50대의 한 사장이 기계를 멈춘 채, 텅 빈 점포 안에서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다. “언제 경기가 좀 풀리려나.” 초점 잃은 눈빛에서는 삶의 고단함과 답답함이 묻어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라.” 불황이면 어김없이 귀가 따갑게 듣는 소리다. 서민들은 더 졸라맬 허리띠가 없을 때까지 바짝 조여 보지만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허리띠의 주요 부품인 ‘버클’을 만드는 영세자영업체 사장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허리띠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 회사는 성장일로를 달리지만, 허리띠를 만드는 영세자영업체의 주머니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영세하청업체 사장들, 우리도 노동자?

성수동 2가 제일은행 뒤편, 줄줄이 들어서 있는 허리띠 ‘버클’ 만드는 업체들. 하나의 버클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디자인, 성형, 주물, 용접, 연마, 도금 등 10여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예전에는 한 공장에서 전 공정을 처리했지만, 10여 년 전부터 업무별로 분화가 시작됐다. 소사장, 재하청이란 이름으로.

금강, 에스콰이어, 칠성, 무크 등 유명 브랜드사가 몰려있는 성동구. 이들 회사의 물품 주문을 받은 중간 브로커는 생산라인을 갖춘 20~30명 규모의 업체(10여곳)에 발주를 준다. 그러면 다시 10여명 규모의 업체(30여곳)가 재주문을 받고, 그것은 다시 1~2명이 일하는 업체(100여곳)로 일감이 나눠진다.

“단가인하, 어음결제 등 원청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영세하청업체 사장들은 일반 노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자신들의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3D 업종인 제조 중소기업에서조차 단가경쟁과 어려운 일들은 하청, 비정규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거죠.” 민주노동당 성동지역위원회 임영기 사무국장의 말이다.

저녁 시간, 임 사무국장과 영세자영업체 사장들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기자는 이들의 고민을 더 깊게 들을 수 있었다.

“허울 좋게 명함만 사장이지, 하는 일은 노동자 보다 못한 ‘개 잡일’ 아니요.”(이기현, 가명36)

“허리 못 펴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주5일 근무는 남의 나라 얘기죠.”(김현술, 36)

“처음엔 어음을 주길래 그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어음 관련 책 사보고 연구하기도 했당께요.”(서종헌, 38)

“옆에 놈이 갑자기 기준 단가 아래로 낮추면 날벼락 맞는 거죠. 하루 아침에 거래가 중단되고, 한달에 보름 일하기도 빠듯해요.”(서종민, 가명 38)

“명색이 사장이란 놈이 급여랍시고, 백만원 안짝으로 가져가요. 그걸로 어찌 생활이 되겄소.” 온전히 자기의 노동을 다 바치지만 월세, 재료비 등을 빼면 그들에게 떨어지는 돈은 1백여만원 안팎. ‘사장님’ 소리가 달갑지 않은 이유이다.

서종헌씨의 말에 임 사무국장이 말을 받았다. “신용불량 4~5백만명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잖아요. 내 처지에서도 아이가 만약 죽을병에 걸렸다면, (다른 식구들 살리기 위해) 걔가 죽는 걸 어찌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서종헌씨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아이 씨, 눈물나게 그런 얘기 하지 마.”

물량을 찾아 영업하러 나서고,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휴일도 없이 야근하는 그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사장’인지 ‘노동자’인지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사장 반, 노동자 반이죠.” “노동자죠.” “잘 모르겠네.”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성수동 일대 영세자영업자들은 ‘사업주’와 ‘노동자’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로, 오히려 노동자들보다 못한 열악한 조건에 있죠.” 한 노무사의 말처럼, 그들은 ‘사업자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말 그대로 ‘영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4대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아 ‘미가입 재해’가 나기라도 하면 사장은 그날 부로 바로 망해야 하는 상황이다.


쓰린 속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용접’
 
안주 값보다 소주 값이 더 나왔던 술자리 다음날 오후, 사장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아갔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서도 그들은 일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90년 초에 용접기술을 배워 지난 2000년 ‘독립’한 김현술(36)씨.

2~3평 남짓한 작은 사업장에 생산수단이라고는 산소용접기와 산소가 거의 전부. “새벽같이 나와 일을 했는데, 야근까지 해야 납기일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네요.” 작업보조(시다) 하는 아주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김 씨는 만삭의 아내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용접기, 왼손에는 용접봉과 핀셋을 동시에 잡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버클을 만들어 나갔다. 나지막한 의자가 눈에 띤다. “의자가 높으면 허리가 편하기는 하지만, 속도가 빠르질 않아요.”

한쪽 구석에 작업테이블이 치워져 있다. 물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에 20킬로짜리 5포대 가져오면 5천개에요. 수량이 제일 많을 때죠. 개당 단가 150원에 이런 물량이 꽉 물리면 (벌이가) 괜찮은데, 그때그때 다른 게 문제죠.”

도급업체에서 일감을 받아오기 위해 아침에 오토바이 타고 물건 떼러 갔다가, 돌아와서 하루 종일 용접하고, 저녁에는 각종 세금과 장부를 계산하는 하루 일과. “예전에 1천개 정도 받았으면 지금은 200개 정도로 소량이 들어와요. 그런 물량을 서너 곳에서 따야 하죠.” 그나마 끊임없이 일할 수 있는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김 사장의 바램이다.

다른 곳은 보통 시다에게 70~80만원 주지만 김 사장은 그래도 120만원은 맞춰 준다고 한다. 월급도 줘야하고 월세, 자재구입 등 당장 현찰이 필요할 때가 많을 터. “보통 200~300만원짜리를 어음으로 줘요. 급하다고 하면 심지어 원청에서 바로 ‘어음깡’을 해 주기도 하죠. 그것도 3부이자 제하고요.” 곁에 있던 한 사람이 말을 거든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더라도 참아야 하는 게 이 세상 아니겠어요.”


일감은 줄고 ‘단가 낮추기’ ‘어음결제’ 시름

그나마 시다를 한 명이라도 두는 업체는 이 바닥에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시다 월급줄 형편도 못 되다 보니, 아내, 형제 등 가족들끼리 가내수공업 형태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눈코뜰새 없을 때는 일당 5~6만원을 주며 사람을 쓰기도 한다.

8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서종헌-서종민 두 형제를 찾아 갔다. 가방에 들어가는 악세사리 용접을 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않고, 나란히 앉아 일손을 부지런히 놀리는 서씨 형제. 어제의 소탈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요거이 빨리 해야 되는 거라. 미안해이.” 용접불똥에 흠칫흠칫 놀라며 고개를 젖혀 피하면서도, 어느새 손은 다음 ‘악세사리’로 향했다.

“손님 왔는데 커피 한잔도 안주냐”며 기자가 투덜대자, 그제야 벌떡 일어나 나가더니, 캔 커피를 사들고 온다. 왼손은 용접 열기에 장시간 노출돼 벌겋게 데인 흔적이 역력했다.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또 자리에 앉아 용접을 한다.

지난밤 이들 형제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단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그런데 형님도 몰라보고 옆집에서 단가를 후려 쳐 어느새 일감이 없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

‘단가 낮추기’와 함께 심각한 것은 ‘어음결제’ 문제. “1천만원 단위냐”고 물었다가 돌아오는 답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보통 200~300만원짜리요. 가령 300만원 어음이면 3부 이자를 적용해서 9만원을 떼요. 6개월 어음이면 54만원이 그 자리에서 떼이는 거죠.”

전경련이 지난해 11월 수도권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2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기업에 대한 불만 사항’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중소기업 경영자들(56%)이 ‘지나친 납품단가 인하요구’라고 대답,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 중소기업은 ‘재하청’을 통해 ‘납품단가’를 더 내리고, ‘어음결제’ 등으로 부족한 이윤을 챙기려 든다. 결국 죽어나는 것은 최말단의 영세업체들이었다.

단가인하와 어음결제가 부당하다면 항의라도 해서 고쳐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생뚱맞다는 표정이었다. “휴우~. 아니 목숨과 생계가 걸린 문젠데, 어따(어떻게) 그리 얘기 하겄소. 으메.” 술집에서 푸념과 하소연을 할 뿐 대놓고 얘기하지도 못한다.

“이 씨발 저리 꺼져.” 깡패들이 삥(자릿세) 뜯으러 오면 대놓고 얘기라도 할 태세지만, 원하청 관계는 그보다 더 무서운 관계였다.

주변의 또다른 영세업체를 찾았다. 일명 빠우(연마)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젊은 사장 윤훈상(33)씨. 공장(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에서 공장으로 옮겨 다니다, 넉 달 전에 다시 독립(하청)했다.

“요즘, 거의 뭐 밥만 먹고 살죠. 물건 받는 게 중요한데 물량은 갈수록 줄고, 단가도 좋은 게 없어요.” 3~4년여 전부터 많은 제조업체들이 저임금을 찾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대규모 물량 처리는 중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수량이 적거나 납기일이 급한 것만 국내에서 처리된다는 얘기다.

“일감만 계속 있으면 월급쟁이들과 ‘더블’로 차이 나죠.” 그러나 윤 사장은 휴일근무, 퇴직금, 4대보험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 자세히 계산해보지도 않았어요. 우선은 자리를 잡아야 되니까요.”


사업장 보다 더 큰 ‘집진기’ 무상으로 쓰라고?

그나마 낮은 단가라도 물량이 꾸준하면 좋으련만, 갈수록 물량은 떨어지고 납품 단가 싸움은 치열하다. 결제도 어음이다 보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하청은 죽어라고 일해서, 원청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몸 대주는 구조’인 것이다.
 
영세자영업체들이 밀집된 성동지역. 이 지역에서 다년간 중소영세사업주와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민주노동당 성동지역위원회 최창준 위원장. “영세사업주와 노동자들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알아서 ‘업종전환’을 요구받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있죠. 산업·노동정책을 마련할 때 노동자들과 함께, 영세사업주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논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예요.”

“가령 ‘영세업체 단지’를 만들어 임대료를 낮추고 좋은 환경을 보장해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서울시는 느닷없이 성동구에 ‘바이오 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터뜨려요. 이 지역 2만여 사업장의 사업주와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도 없이 말이죠.”

당사자인 영세자영업자들의 참여 없이 결정된 ‘탁상행정’은 또 있었다. 지난해 성동구청은 분진 등 공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영세사업장에 ‘집진기’를 무상으로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단 한 곳의 업체도 집진기를 받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2~3평의 사업장에 그 보다 큰 집진기를 공급하겠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 아니겠는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나은 결과였다.

지난해 성동구의회에서는 창고에서 썩고 있는 ‘집진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을 수는 없는 일.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영세사업주들과 한마디 상의라도 했더라면 ‘세금낭비’는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

‘고용 조정’ ‘하청에 비용전가’ 등으로 얻은 몇몇 대기업들의 수백, 수천억원의 이익. 그것이 중소영세하청업체를 쥐어짜서 이룬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수동 일대 영세자영업자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 언제 ‘절망의 빈터’로 변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박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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