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싼’을 생산하는 현대차 5공장 라인이 멈췄다.
87년 노동자 대투쟁부터 97년 노동법 개악투쟁은 물론 거의 매년 임단협때 현대차 노동자들은 수십 차례 공장 라인을 세우고 현대차와 정부에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해를 요구하며 싸웠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지난 18일 ‘투싼’ 라인을 멈춘 것은 그동안 파업 대열에 한 번도 전면에 나서본 적 없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었다.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현대차비정규직노조(위원장 안기호)는 이날 회사쪽의 무차별적인 대체인력 투입에 반발해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5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파업으로 라인은 곳곳에서 끊겼고, 결국 회사는 오후 3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작업중지를 명령했다. <매일노동뉴스>가 멈춰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았다. <편집자주>



지난 19일 오전 5공장 한 켠에서 ‘옥쇄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선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정문에서 5분여 이상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 5공장 앞.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 직무대행 조가영씨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뒤 관리자들 3~4명도 보였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라인 위로 조립되기를 기다리는 자동차 부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그 사이 작업을 진행 중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였다.

“5공장에만 비정규직이 1천여명이 있는데 이번에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150여명밖에 안돼요. ‘운이 좋게도’ 전부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는 도장부가 주도적으로 파업을 이끌어 18일 파업이 성공한 거죠. 라인 작업을 하는 곳은 한 공정만 펑크나도 전체 라인이 자동적으로 서거든요.”

농성장으로 이동하면서 그 간의 상황을 조씨가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의 뒤를 현대차 관리자들이 따라온다.

파업농성장 앞. 십여 명의 사수대가 농성장을 등지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강제해산에 대비해 망을 보고 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농성단의 도발행위(?)를 막기 위해 맞은편에서는 관리자들 20~30여명이 농성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중인 듯 보이는 파업대오들은 생각보다 여유있는 모습으로 곳곳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기자를 반갑게 맞는 도장부 아주머니들. 춥다면서 이불을 끌어준다. 그리고 신기한 듯 “왜 내려왔느냐”며 먼저 질문을 던진다.

눈치밥만 먹던 하청노동자, 공장을 멈추다

이번 파업의 ‘주동자’들인 도장부 여성노동자들은 이 곳에서 평균 4년에서 5년을 근무했다.

“현대차에 입사해서 한 번도 내 손으로 라인을 멈추게 한 적이 없었다. 정규직 노동자들 임단투 지켜보고, 그들의 싸움이 승리하면 자동으로 임금 몇 퍼센트 올라가는 것 고맙게 여기면서 다시 라인에 서고 그렇게 살아왔다.”

입사 9년차인 김아무개(53)씨는 이번 파업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처음 하는 파업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파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지금 받는 대우가 부당한지도 모르고 단지 하청노동자라는 이유 하나로 원청 관리자들이 주는 눈치 밥만 먹었다. 하지만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이제 정규직 전환만 남았는데, 현대차가 묵묵부답으로 있으니 우리가 파업을 해서라도 강제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해고됐다. 파견근로자도 2년이 지나면 정규직화 된다고 노동법에 보장돼 있다는데 이미 난 4년을 일했기 때문에 현대차 정규직인 셈이다. 그런데 현대차가 사용주가 아니라고 하니까 난 현대차로부터 해고당한 상태인 것이다.”

자동차업 특성상 20여명의 도장부 아주머니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농성대오는 20대 중반의 남성들이었다. 지난밤 혹시나 모를 강제해산 조치에 대비해 농성단을 지키느라 피곤해서인지 곳곳에서 부족한 잠을 청하고 있었다.

20대 남성들 사이, 유독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아저씨 한 분이 손짓을 한다. 올해 나이 54살, 경북 예천에서 농사만 짓고 살다가 생계가 어려워 2년 전 아내와 울산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2년 전 마지막으로 있던 땅 팔고 하청업체 사장에게 사정사정해서 입사할 수 있었다. 처음 4공장에서 일하다가 업체가 바뀌면서 재입사 형식으로 다시 5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는데 처음 시급 2,850원 하던 것이 업체가 바뀌면서 2,700원으로 더 낮아졌다. 난 현대차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는데 업체가 바뀌면서 임금이 조정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업체 사장에게 항변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자동차업 공정은 사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하기는 힘든 작업이다. 그래도 이씨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2년 동안 단 한번의 월차도 연차도 쓴 적이 없다. 물론 잔업, 특근은 모두 했다.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던 그가 이번 파업에 동참했다.

“다행히 아내가 월 60만원을 벌고 있어요. 당분간 힘들겠지만 이 싸움에서 이겨서 정규직 되면 나도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잖아요.”

"정규직 전환하면 직영 고용불안 초래?" 회사 유인물 논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이들의 한결 같은 요구는 언제 어디서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목소리와 상통한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아무개(29)씨가 재밌는 얘기를 해주겠다며 한마디 거든다.

“가시나들 꼬시려고 온라인 채팅방에서 대화하다 보면 상대편에서 직장 같은 걸 묻잖아요. 현대자동차라고 그러면 모두 좋은 곳에 다닌다며 부러워하는데 그 중 울산 가시나들은 꼭 한마디 덧붙여요. ‘정규직이에요. 비정규직에요’, 비정규직이라고 답하면 채팅 쫑나는 거죠.”

박씨의 말은 눈물나게 재밌는 말이었다. 현대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울산은 말그대로 공장안뿐 아니라 공장밖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 자체가 두 갈래로 나뉘지고 있다는 단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차피 비정규직 인생입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 모두 정규직이 되어서 돌아갈 겁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현대차는 또다시 교묘한 칼을 꺼냈다. 비정규직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 지 만 하루만인 19일 점심시간에 울산공장 식당을 중심으로 유인물을 배포한 것이다. 4만부 이상 배포된 것으로 알려진 이 유인물에는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현대차) 직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초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유인물은 "직원 여러분! 위장취업한 하청노동자들이 비정규직노조 깃발을 치켜세우며 우리 회사의 안정을 위협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들에게 우리 회사의 미래와 직영 여러분들의 고용이 안중에나 있겠습니까? 우리 회사를 어디로 내몰려고 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노동자들이 가장 민감해 할 수밖에 없는 고용문제를 건드리면서 원-하청 노동자들 간의 반목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런 논란에도 비정규직노조는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노조에 가입은 하지 않은 채 농성을 해 오던 8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이날 노조에 대거 가입했다. 또한 20일 오전 도장부 아주머니들을 중심으로 현대차의 대체인력을 직접 공장 밖으로 끌어내기도 하는 등 점차 파업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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