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성노동자 8명이 노말헥산에 집단중독 돼 하반신 마비증세로 고통 받고 있다. 이들은 ‘완벽한’ 안전보건 사각지대에 놓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부는 노말헥산을 취급하는 사업장 367곳에 대해 집중점검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대책이랄 수 있을까? 보다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편집자주> 


지난 12일 경기도 화성시 소재 LCD, DVD 부품 제조업체 공장에서 근무하던 태국 여성노동자 5명이 세척제로 쓰이는 유기용제에 중독돼 하반신이 마비되는 ‘다발성 신경장애’에 걸린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유기용제 집단중독, 10년 전 비슷한 경험

우리는 10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95년 경남 양산의 LG전자부품(주) 공장에서 부품 세척 작업을 했던 여성노동자들이 2-브로모프로판(2-bromopropane)에 중독돼 생리불순, 난소부전증과 같은 집단적인 생식독성을 나타냈었고, 그 당시까지 독성이 알려지지 않았던 2-브로모프로판에 대한 인체 생식독성 사례를 세계 최초로 알리게 됐던 불명예스러운 경험이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10년 후에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국내 노동자가 아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서 물질 이름만 바뀐 채 집단적인 유기용제 중독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조치가 없는 것일까? 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됐고, 노동자들의 건강보호를 위해 유해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해서는 1년에 2회씩 작업환경측정을 시행하고 측정결과 유해물질 취급공정 근무자에 대해서는 1년에 1회씩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95년 2-브로모프로판 중독 사례가 발생한 이후 노동자들의 알권리 확보를 위해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작성·비치 등에 관한 기준’을 노동부고시(1996)로 발표해 시행해오고 있다. 

작업환경측정 제도적 틀은 있으나 ‘유명무실’

문제는 제도적 틀은 있으나, 그 내실은 부족한데 있다. 일부 사업장의 경우 작업환경측정 결과 노출기준을 초과하면 작업환경 개선명령, 측정주기 단축, 과태료 등의 행정처분이 내려질 것을 우려해 측정결과가 기준치를 넘지 않도록 측정기관에 요구하거나, 일부 영세한 측정기관의 경우 덤핑으로 계약을 수주해 부실한 측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 관리 감독하는 지방노동사무소의 경우 사업장의 측정결과 보고서에 표시된 노출기준 초과 건수 여부만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업환경 측정과 건강검진 사업에 실질적인 수혜자인 노동자 스스로가 사업의 진행상황과 결과를 제출할 때 지켜져야 할 원칙을 요구하고 내실 있는 측정, 검진이행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의 조직적인 개입은 힘 있는 노조가 조직돼 있는 대규모 사업장에서나 가능하다.

2004년도 노동부에서 펴낸 노동백서의 통계결과를 보면 최근 3년간 재해자 및 사망자는 증가 추세에 있고,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자가 전체 재해자의 69.1%를 점유했으며, 전년 대비 전체 재해자 증가 1만3,013명의 55.7%인 7,252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규모 사업장 대부분은 대기업에서 기피하는 유해·위험작업을 도급 받기 때문에 작업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영세한 재정규모로 인해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안전 사각지대, 집단중독 예견된 일

또한 작업자의 작업기피로 인해 인력난까지 가중되고 있어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따라서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는 안전보건제도의 법적 보호와 관리가 가장 필요함에도, 현실적으로는 가장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화성시 소재 전자부품 사업장에서 발생한 노말헥산 집단 중독 사례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고용구조 속에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대안으로 노동부에서는 노말헥산 사용 사업장 367곳에 대한 집중 점검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문제의 원인을 잘 못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노말헥산을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구조 속에 영세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는 노말헥산이 아닌 다른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더라도 또 다른 집단 중독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점 점검의 초점은 노말헥산 취급 사업장이 아닌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고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영세규모 사업장이 돼야 한다. 또한 단기간의 중점 점검으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하기 보다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안전보건제도의 허점과 부실한 관리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고자 하는 진지한 고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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