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이후 사내하청의 무차별적인 증가를 막기 위해 16.9%로 비율을 정하도록 합의한 것은 (현대차노조의) 잘못된 관행이었다. 현대차노조는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진정서를 제출한 당사자임과 동시에, 그동안 불법파견 문제를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합의를 해준 사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깊이 반성한다.”(17일 윤성근, 정갑득, 이상욱 등 현대자동차노조 전·현직 위원장들의 기자회견 중)

겨울은 밤이 길다. 아침 7시가 넘은 시각에도 어둑어둑하다. 야간조로 근무한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실제로 이 시간이 막 퇴근을 마친 ‘초저녁’이다. 밤새 벨트를 타며 맞추고 조이고 끼우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고 현대차 노동자들은 근처 음식점으로 삼삼오오 몰려든다.

‘황토방 고깃집’. 4공장 앞에 있는, 마치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이름의 고깃집에도 무리지어 사람들이 들어선다. 오전에 출근하고 오후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노동자들이라면 이처럼 이른 아침 시간,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그러나 12시간 꼬박 야간작업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이 이른 시간에 동료들과 한잔 술을 걸치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기자가 이 고깃집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를 조금 넘긴 때다. 의장부에 근무한다는 현대차 노동자 4~5명이 아침을 먹고 있는 자리에 자연스레 합석했다. 벌써 얼굴이 불콰해졌다.

“몇 잔 했심다. 우리는 벌써 40분전부터 와 있었거든요. 야간조가 고생하니까네 보통은 주간조들이 20~30분 정도 일찍 교대해 줍니다. 오늘은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려고 좀 늦게까지 마시자고 의기투합 중이었습니다.”
 
기자를 맞으며 박 아무개씨가 말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원칙과 현실은 다릅디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노동부로부터 ‘전 사내협력업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정규직이 해야 할 일에 저임금에다 해고하기 쉬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1만여명이나 투입해 직접 관리해왔다는 것이 드러난, 즉 ‘몽땅’ 불법으로 사용해왔다는 것이 만천하에 폭로된 이 엄청난 사건.
 
그러나 현대차는 그동안의 범법행위를 반성하고 어떻게 잘못을 시정해 나갈지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지난 12일 현대차가 제출한 불법파견 개선계획서는 기존에 아산공장 불법파견 적발 때와 마찬가지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이나 직접고용 같은 개선개획이 전혀 없는, ‘완전도급 전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기자가 울산에 도착한 것도 12일 저녁이다. 현대차가 불법파견 개선계획서를 제출한 이날에 맞춰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공장 정문 앞에서 울산지역 노조들과 함께 집회를 가졌다. 집회를 하는 동안에도 공장 정문 앞에서는 비정규직노조 안기호 위원장의 부인 유현경씨와 수감 중인 서쌍용 사무국장의 부인 현미향씨가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불법파견’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들을 수밖에 없는 시끌시끌한 출퇴근길.

불법파견으로 일해 왔던 하청노동자들이 “난 원래 정규직이어야 했다”며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지금, 전현직 위원장들이야 그렇다 치고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이자 현자노조의 일반 조합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자는 이것이 알고 싶어 이른 아침부터 ‘황토방 고깃집’에 왔다.

입사 14년차라는 권순기씨는 취기를 빌린다는 것을 일부러 강조라도 하듯 큰 소리로 말한다.

“난 ‘원칙주의’잡니다. 아니다, ‘근본주의’가 맞나? 비정규직은 당연히 없어져야지요. 저 사람들 주장대로 불법파견으로 썼으면 정규직으로 바꿔줘야지요. 아닙니까?”

물론 법대로 한다면, 혹은 노동자들의 요구대로 한다면 정답이다. 그러나 너무나 원칙적인 대답에 말문이 막혀 당황스런 웃음을 짓는 찰라, 박 아무개씨가 기자를 도와준다.

“야, 그런 말 들으려고 서울서 여기까지 왔겠어? 전화로 한 두 마디 들으면 되지.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진짜 속마음을 들으려고 한 것 아니겠냐?”

고맙다. 이 쪽 분은 아무래도 콘베이어 벨트를 타다 퇴근한 것이 아니라 기사를 쓰다가 온 듯하다. 권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근본은 그렇습니만, 현실은 또 다르죠. 그렇지만 적어도 공장 안에서는 예전처럼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들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1~2년 전에는 우리 반만 해도 회식하는 자리에 직영(정규직)들만 싹 빠져 나가서 하고 그랬습니다. 하청들은 같이 간다는 소리도 못하고, 갈 생각도 안하고 그랬어요. 이제는 하청들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달라지니까 그 친구들도 같이 어울리고 농담하고 그럽니다. 편의시설 이용 등 복지혜택도 많이 차이가 줄었습니다.”

원-하청 노동자 간의 관계가 좋아지고, 현장에서 복지혜택 등의 차별이 거의 없어졌다는 사실은 일단 긍정적이다. 과거 캐리어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안전화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직영 노동자들이 쓰다가 버린 것을 썼다는 ‘전설’도 있지 않은가. 단지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직영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을 하면서도 직영들이 쓰던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악할 일이다.

이렇게 좀 나아지기까지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알게 모르게’ 노력을 많이 했단다. 정규직들은 작업반 회식비로 월 1만5천 원 정도를 공제한다. 물론 하청은 그런 제도가 없다. 그래서 자기들만 돈을 낸 자리라도 하청들을 일부러 부르고 함께 어울리게 하려고 애썼다. 또 과거 간간이 성과급이 배분되는 날이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하청들이 옆에 있건 없건 간에 서로 들떠서 받은 돈을 비교해 보곤 했지만, 지금은 알아서 눈치껏 자리를 피해 명세서를 살핀다.

“하청들이 우리보다 월급 적게 받고 고생하는 것 누가 모르겠습니까. 활동가도 아니고 노조 집행부도 아니고 평범한 조합원인 우리들도 이 나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현자노조 조합원이라면 비정규직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당연히 지지하고 함께 싸워 줘야 한다고 대부분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현장에서 인간적으로, 개인적으로 잘 해주는 것과 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조직적으로 싸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고용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합니다. 왜냐면, 현대차 노동자들은 98년 정리해고 사태 때 그 살벌한 칼바람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악몽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98년 5월은 생각하기도 싫은, 말 그대로 ‘악몽’이다. 그해 여름 277명 정리해고, 1900여명 18개월 무급휴직, 8000여명 명예퇴직이라는 무서운 ‘피바람’이 몰아쳤다. 그 후 정리해고자, 무급휴직자 등 대부분이 약 1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러나 현대차 노동자들은 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아픔을 지워지지 않는 흉한 상처처럼 드러내기도 싫어하고 당시의 고통이 재발할까 두려워 하고 있다.

“1만5천 명이나 되는 불법파견 사내하청들이 정규직이 되면 우리(정규직) 일자리가 불안해 진다고 회사에서 한 번도 말한 적 없어요. 그런데도 스스로 불안해 하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해외공장 생산까지 하고 있고, 달라 가치도 떨어져서 가뜩이나 불안한데 하청들까지 정규직이 되면 우리가 또 위험해 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근본주의자’라던 권씨는 이렇게 불안한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98년의 악몽은 자꾸만 그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옳다고 믿는 노동자적 신념과 자신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그들에게 비정규직은 또 한번 혼란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았다. 그런 갈등의 표현인지 노조 게시판에는 얼마 전부터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 전환에 대해 조합원 찬반투표를 붙이자’는 주장이 계속 올라오고 있기도 하다.


2000년 현대차노조는 ‘완전고용보장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상호 협조사항에 "공장 전체의 비정규직 투입비율은 16.9% (97년 8월 비율) 이내 관리를 원칙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이는 정규직 고용 유지를 위해 사내하청노동자의 사용을 노조가 허용해 준 것으로, 당시 노조는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의 고용안전판’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박 아무개씨는 이 합의가 보여주듯 하청노동자들을 구조조정의 방패막이로 여기는 정규직의 심리 또한 아직까지는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겁니다. 이미 현자노조는 98년에 정리해고를 수용했고 2000년에 사내하청 도입을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시에 노조가 정리해고를 끝까지 반대하고 나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래도 조합원들은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끝까지 갔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는 패배의식에 의한 상처가 덜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은 그렇게 순응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게다가 속된 말로 ‘빡센’ 투쟁을 하기에는 아이들도 더 컸고, 돈 들어갈 일도 많아졌고, 나이도 더 먹어 버렸습니다. 현대자동차가 현대중공업 꼴 나는 것도 이대로 가다가는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비정규직노조, 8천 하청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나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싸워서 이겨야’ 할 일이 적어지고 ‘다치지 않고 내 것을 지키기’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부 정책에 따라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2배로 뛴 토요일 특근수당을 포기할 수 없어 더욱 꼬박꼬박 만근을 하고 있는 현실. 근골격계 질환 등 산업재해 퇴치를 아무리 노조가 강조해도, 1년에 쉬는 날을 손에 꼽으며 일을 하다 과로로 죽은 노동자가 지난해 2명이나 발생한 현실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도 정리해고의 칼바람 속에서 터득한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대차에 입사한 지 어느 덧 15년이 지났다는 천 아무개씨. 이 늦고도 이른 아침의 술자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그는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의 ‘역동성’을 상대적으로 믿는 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현자노조 조합원들의 특징은 ‘제대로 할 수 있는’ 싸움이다 싶으면 투쟁을 한다는 겁니다. 다만, 진짜 집행부가 이 투쟁을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눈치를 보게 돼 있죠. 모두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노조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평조합원이라고 해도 판단력은 웬만한 노조 간부급입니다. 집행부나 활동가들의 태도만 보면 ‘이 건은 세게 좀 붙겠구나’ ‘이렇게 시늉만 하다가 말겠구나’ 하는 눈치는 갖게 된다는 거죠. 비정규직 문제도 노조 집행부나 활동가들이 책임지고 끌고 가는 투쟁이라고 생각되면 알아서 집회도 가주고 합니다. 결국 ‘쪽수’ 싸움 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나요? 반면에 아무도 책임지지 못할 흐지부지한 싸움이다 싶으면 절대 안끼죠. 그게 평조합원들의 공통된 심리일 겁니다. 그렇지?”

자리를 함께 했던 ‘오래된 조합원’ 4명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눈치는 빨라졌지” 하며 쓴 웃음 속에 잔을 든다.
 

지금껏 별말없이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눈에 띠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다른 4명의 ‘평조합원’보다는 확연히 젊어 보이는 신윤선씨다. 이제 갓 서른이 된 그는 지난해 수시모집으로 입사한 겨우 1년 차. 다른 선배들이 “홀가분한 총각의 입장에서 네 생각은 어떻냐”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총각’을 특히 강조하며.
 
“저는 잘 모르잖아요. 노조가 뭔지도 확실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비정규직노조라고 아침저녁으로 집회하는 것 보면 사실 실망스러워요. 그래도 현자노조 임단협 출정식 때는 노조가 힘도 있어 보이고 뭔가 될 것 같이 든든한데, 비정규직노조는 모여 봤자 ‘꼴랑’ 100명을 넘기기가 힘든 것 같고. 울산에만 하청들이 8000명이 된다는데 저렇게 몇 명 모여서 하는 사람들이 과연 하청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같이 일하는 하청들도 그런 말 많이 해요. 비정규직노조 가입해서 집회 참석을 할까 고민해 보지만, 힘도 없을 것 같고 가입해 봤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니까 못 나서겠다는 거죠.”

설립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조직화에 성공하지 못한 비정규직노조에 뼈아픈 지적을 ‘1년차 조합원’이 날렸다. 정규직노조는 우리가 소속된 노조가 아니고, 비정규직노조는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불안함이, 수년 동안 불법파견으로 사용돼 왔다는 것을 알게 됐음에도 하청노동자들을 침묵하게 한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기나긴’ 아침 식사를 끝내고 공장 안 노조 사무실에 갔다. 오후 2시부터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와 관련한 제 현장조직 의장단 간담회가 열리고 있었다. 10여 명의 노동운동가들은 불법파견 문제에 현자 정규직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앞서 ‘평조합원’들이 걱정을 토로한 고용불안 문제도, 박유기 현장학습모임 대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비정규직이 먼저 해고되려면, 콘베이어 속도를 낮추고 여유 인원을 발생시켜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정규직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대차가 30만대 생산을 20만대로 축소할 리가 없다. 98년 정리해고 때도 회사는 끝까지 콘베이어 속도를 낮추지 않았고, 소위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사업을 축소하거나, 정규직을 자르고 비정규직으로 대체시켰다.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들이 하는 공정으로 갈 리도 없고 비정규직들도 더 이상 힘없이 쫓겨날 나약한 존재도 아니다.”

현자노조 집행부는 ‘공조직으로서 역할’을 강조했다.

김태곤 현자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시기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임단협 전에 최대한 불법파견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2월 비정규법안 개악저지 투쟁에 총력을 재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아직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는지도 모른다.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98년의 상처는 경제불황, 달러화 약세, 해외공장 설립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이 시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현장조직이나 노조에서 만든 유인물과 성명서에는 “연대하자, 연대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어느 정도의 확신을 나에게 줄 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들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활동가들의 강한 의지가 그들의 선택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지켜주는 ‘방패막이’던 하청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2005년 1월에 만난 현대차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이라는 비아냥을 일축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80년대 후반부터 이 나라 노조운동을 이끌었던 현자노조 활동가들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들이 진정 서야 할 자리가 어디냐고.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면, 그렇게 방치한다면 4만 정규직 노동자들과 1만5천 사내하청 현대차 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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