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실질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2002년을 기준으로 할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4위에 그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기구에서 펴낸 ‘2002년 구매력평가지수(PPP) 환율로 환산한 국내총생산 비교’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구매력 기준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이 회원국 평균치의 72%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2002년 기준으로 현재 30개 회원국의 실질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 평균치를 100으로 놓고, 회원국과 12개 비회원국 등 모두 42개국을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스페인, 이스라엘, 뉴질랜드, 키프로스, 그리스,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몰타, 체코, 헝가리 등과 함께 중하위소득 그룹(평균치의 51~99%)으로 분류됐다. 고소득 그룹(120 이상)은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미국, 아일랜드, 스위스 등 5개국이었고,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캐나다, 아이슬란드, 영국, 벨기에, 스웨덴, 프랑스, 일본 등 14개국이 중상위소득 그룹(100~120)에 속했다. 저소득 그룹(50 이하)으로 분류된 나라는 슬로바키아, 터키, 폴란드, 멕시코 등 12개국이었다.

OECD 보고서에서 실질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구매력평가지수(PPP) 환율은 달러당 778원이었지만, 통상적인 환율은 1,251원이었다. 무려 460원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런 차이는 이른바 ‘환율’을 측정하는 기준이 다른 데서 나온다.

이론적으로, 다른 나라 화폐에 대한 한 나라의 화폐의 가치는 두 가지 상이한 방식으로 계산될 수 있다. 그것이 통상적인 환율과 PPP 환율이다. PPP는 세계은행이 체계적으로 개발한 측정방식인데, 이를테면 ‘A라는 나라에서 신발 한 켤레를 사는 데 얼마의 화폐가 필요한가, 그리고 B라는 나라에서 똑같은 신발 한 켤레를 사는 데 얼마의 화폐가 필요한가’를 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두 가지 환율 측정방식 가운데 무엇이 더 정확한 것일까. 개인적으론, PPP가 훨씬 더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PPP 방식은 인플레이션 측정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측정할 때처럼 “일정한 재화와의 서비스의 묶음”을 정의하고, 이 재화와 서비스 묶음에 대한 세계 각국의 가격들을 수집해 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PPP 환율은 국가별로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94년 세계은행이 펴낸 ‘세계개발보고서’를 보면, 인도 루피와 미국 달러 사이의 통상적인 환율을 적용했을 때 92년 인도의 1인당 국민총생산이 310달러였다. 하지만, PPP를 적용하면 인도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1,210달러였다. 환율로 측정한 것의 네 배였던 것이다. 반면, 미국,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같은 OECD 국가들은 통상적인 환율과 PPP 환율이 거의 비슷했다.

PPP 환율은 개발도상국 국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개발도상국 국가들의 통화는 국제통화기금의 주장처럼 ‘고평가’ 돼 있는 게 아니라 ‘저평가’ 돼 있다는 것이다. 세계체제론자들의 연구를 보면, 통상적인 환율과 PPP 환율의 불일치는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가장 작다. 가난한 나라들의 통상적인 환율은 PPP 환율과 견줘 매우 ‘저평가’ 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부자 나라의 경우 통상적인 환율이 조금 ‘고평가’ 돼 있거나 두 비율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결국, 각 나라 화폐의 상대적 가치는 세계체제 안에서 각 나라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권력과 부가 배분돼 있는 세계적인 구조와 각 화폐들의 상대적 가치는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저소득 국가들의 화폐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면, 이는 부가가치가 그만큼 화폐 가치가 고평가돼 있는 국가들로 이전됨을 의미할 수 있다. 환율 시스템을 통한 착취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통상적인 환율이 지배하는 지금의 환율 시스템은 저소득 국가에 체계적으로 반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PPP 환율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통상적인 환율을 적용했을 때보다 크게 하락한다.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는 두 비율의 격차를 훨씬 더 벌려 놨다. 실질구매력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는데, 통상적인 환율을 적용했을 때 1인당 국민소득은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불평등한 화폐의 가치 결정체계 속에 더 깊숙이 편입됐다는 뜻이자, 통상적인 환율 시스템이 실질구매력을 높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상적인 환율과 PPP 환율의 엄청난 격차의 의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지난 2003년 10월부터 실어온 조준상 언론노조 정책국장의 <경제따라잡기>는 17일을 마지막회로 연재를 마칩니다.<편집자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