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지 11개월이 지났다. (중략) 우리 17명은 이지러진 달을 우러러보며 출발했다. 행군은 고통스러웠고 계곡 여기저기에 지나는 흔적을 많이 남겼다. 새벽 2시에 휴식을 취했다. 더는 전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다. 야간에 행군할 때면 치노는 정말 성가시기 짝이 없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일기의 주인공은 다음날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돼 밀림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르헨티나 출생의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 체 게바라의 서른 아홉, 불꽃같은 삶의 마지막 기록인 '체의 마지막 일기'(안중식 옮김. 지식여행)가 번역돼 나왔다.
   
쿠바혁명 이후 쿠바 국립은행 총재, 공업부 장관 등을 지내며 '쿠바의 두뇌'로 활동하다 1965년 10월 카스트로와 결별하고 볼리비아 산악지대로 들어가 게릴라 부대를 조직, 혁명운동을 이끌었다.
   
이 한 권의 일기장은 1966년 11월7일부터 1967년 10월7일까지 남미의 밀림속에서 굶주림과 질병, 끊임없는 행진과 매복, 동료의 죽음 등을 담담하게 기록한 처절한 삶의 발자취다.
   
책에는 모든 권위와 명예, 물질적 부를 버리고 압제자의 핍박에 고통받는 민중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혁명가의 숭고한 정신이 살아있다.
   
책은 승리한 자의 영광에 빛나는 성공담도, 몽상가의 허풍도 아닌, 언제나 생과 사,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에 서서 내일을 알지 못한 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전사의 솔직 담백한 고백을 담고 있다. 험한 지형과 혹독한 기후속에서 벌레와 질병, 배고픔과 갈증을 견뎌야 했고, 대원들의 내분과 배반, 농민의 무관심과 적의, 정부군과 경찰의 추적속에 고립된 게릴라의 일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책에는 울컥하고 흥분해서 부하들을 함부로 다루기도 하고 초초함과 의심,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 등 나약하고 고민할 줄 아는 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게릴라의 모습도 드러나 있다. 320쪽. 9천800원.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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