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서웠어요. 당시엔 우리 여성노동자들 뿐이었거든요. 시커먼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해댔어요. 정말 너무 무서웠고… 순간 여성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어요.”

“애를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섰어요. 이런 공포심을 느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부모한테 가장 큰 위협은 애들을 다치게 하겠다는 건데… 엄마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노리고 정말 소름끼치는 말을 하더라구요. 지금도 그날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깡패에요. 정말 깡패였어요. 여성의 신체를 비하해서 욕설을 해대는데… 그때의 모멸감은 정말 표현할 수가 없어요. 온 몸이 마구 떨렸거든요.”


지난해 7월23일 새벽 4시께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20여명의 여성조합원들은 회사가 고용한 50여명의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과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 무렵, 건장한 체격의 양복을 입은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상황에 한원컨트리클럽 경기보조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6개월간 그들에게 가해진 회사쪽의 폭력은 가히 상상을 넘는 수준이었다.<표 참조>

<한원C.C 폭력일지>
2003. 6. 4    조합원에게 폭언 및 폭행
2004. 1.31    조합원 8명 감금 폭행
2004. 3. 1    노조사무실 난입 조합원 폭행
2004. 5.28    노조위원장 폭행
2004. 6. 4    조합원에게 폭언 및 폭행
2004. 7.10    포크레인 동원, 조합 활동 방해
2004. 7.17    무단 촬영에 항의하는 노조 여성국장 폭행
2004. 7.23    새벽 4시께 용역직원 투입, 여성조합원 2명 실신 및 10여명 병원 이송
2004. 7.31    노조플랜카드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조합원 폭행
2004. 8.15    공문전달하러 간 사무국장 및 여성조합원 폭행
2004. 8.21    골프장 행진 중 용인경찰서 조합원 52명 강제연행
2004. 9.13    여성조합원 2명 트럭에 매단채 100m 가량 질주
2004.10. 3    현수막 철거에 항의하는 조합원에게 공업용 칼 휘둘어 상해 입힘.
2005. 1. 5    대기발령중인 조합원 폭행, 병원이송
자료제공 : 서비스연맹 한원C.C 노조

'벌당', '빽대기'…그리고 '해고'

골프장 경기보조원, 출근시간도 퇴근 시간도 없는 그들이었다. 1년 365일 일출시간과 일몰시간이 그들의 출근시간이고 퇴근시간이었다. 오전 5시면 동이 트는 여름시즌엔 한 시간전인 새벽 4시께부터 나와 대기실에서 골퍼들을 기다리고, 한번 라운딩을 나가면 5시간에서 6시간 걸리는 경기 내내 가파른 골프장을 오르내리며 골퍼들의 경기를 도와야 했다. 골프공을 닦고 4명의 골퍼들에게 골프채를 건네주고 앞 팀과 경기진행이 어긋나지 않도록 시간도 챙겨야 하고 골퍼들의 농담도 받아줘야 하는 고된 일상이다.

그렇게 라운딩이 끝나면 골퍼들은 회사에 ‘한원도우미 평가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혹시나 ‘서비스 미달’의 평가를 받게 되면 ‘벌당’을 받게 되는데, 벌당을 받게 되면 라운드에 나갈 수 없게 된다. 한번의 라운딩을 나갈 때 8만원의 캐디피(봉사료)를 받는 그들에게 ‘벌당’은 곧 캐디피를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며, 벌당을 받지 않기 위해 그들은 골퍼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

벌당이 없더라도 경기보조원들은 일주일에 3번 경기를 치르며 깎인 잔디를 메우는 ‘디보트’를 해야만 한다. 한 겨울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눈을 치우는 일도 어김없이 그들의 몫이다.

20년을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으로 보냈다는 김옥렬(40)씨는 지난해 4월 느리게 경기진행을 했다는 이유로 ‘벌당’을 받았다. 김씨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온종일 빽대기를 해야만 했다. 당시 김씨는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노조 조끼를 입고 빽대기를 했는데, 회사는 이를 이유로 지금까지 김씨에게 일을 주지 않고 있다. 사실상 해고인 셈이다.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지난 10일 싸리눈이 내린 매서운 겨울날, 한원C.C 경기보조원들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회사 정문 앞에서 ‘용역철회’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86일째 집회를 시작했다. 6개월간의 싸움 동안 40여명에 이르던 조합원 중 절반 이상은 이제 회사가 아닌 생계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조에서는 고육지책으로 매일 저녁 포장마차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조합원들의 생계를 돕고 있다.

임미옥 노조 부위원장은 “전세 빼고, 적금 깨면서 힘들게 버텼지만 사실상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지난 6개월간 싸웠던 시간들이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 회사 정문 앞 집회를 시작하기 전 노동열사들에게 그는 이렇게 소원한다.

“의지가 꺾이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 동지들이 힘들지 않게 해주십시오.”

손님들의 폭언과 폭력에 항의했다고 벌당을 주는 것을 참고 참으며 몇 십년을 경기보조원으로 살아왔다.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노조에 가입하고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자, 회사는 전국 골프장 가운데 최초로 경기보조원을 용역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이에 불응했던 40여명의 경기보조원들은 더 이상 골프장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됐다.


법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회사쪽을 만나 설득도 해보고, 항의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온갖 욕설과 폭력뿐이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한번씩은 병원에 다녀와야 했을 정도로 회사는 수 십 차례 폭력을 가했다. 그럼에도 용인경찰서는 그 많은 사건들에 대해 모두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반면 회사쪽이 노조에 업무방해 혐의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은 회사 내 천막 및 현수막을 철거할 것을 명령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200만원을 벌금을 청구하겠다고 통보했다.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었어요. 잘못된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해 한번이라도 제대로 말하고 싶어서 노조에 가입하고,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는데 돌아온 건 폭력뿐이었습니다.”

2005년 새해에도 회사는 교섭을 요청하는 노조의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대기발령 상태인 조합원에게 폭력으로 응수했다.

이제 7개월째 접어든 싸움. 조합원들은 회사의 무자비한 폭력에 이렇게 답한다.

“인간답게, 여성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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