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은 지난해 12월31일자로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전국 경찰청에서 일하는 고용직 공무원 중 89명만을 남기고 강제 직권면직을 단행했다. 고용직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에 의한 공무원으로서 ‘단순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찰청의 고용직 공무원은 일반직·특정직·기능직 공무원과 달리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으며, 직제상 최하위직으로 일선 경찰서에서 문서수발과 행정사무뿐만 아니라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해왔음에도 신분적으로는 연금혜택, 정년 및 근로조건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이러한 고용직 공무원은 현재 중앙행정기관에서는 경찰청에만 존재하고 있다.

이번의 직권면직은 2003년 12월18일 ‘경찰청소속기관등직제’를 개정하면서 고용직 공무원의 정원을 89명으로 한정함과 동시에 이를 시행하면서 인해 감축돼야 할 고용직 공무원의 정원 584명에 대해 2004년 12월 31일까지로 그 시한을 정함으로써 직권면직이 이미 예정이 되어있는 터였다.
 
이에 경찰청은 자진퇴사를 하지 않으면 직권면직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갖은 회유와 압박으로 1년여 동안 대다수가 자진퇴사하고 지난해 말일자로 85명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직권면직 처리한 것이다. 경찰청은 ‘직제·정원의 개폐 또는 예산의 감소 등에 의해 폐지 또는 과원이 된 때’에 직권면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찰청 예산이 해마다 증가해온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는 결국 행정자치부에서 직제(행정기관의 조직과 정원)의 조정으로 인하여 정원을 대폭 줄여놓았기 때문에 이 정원기준을 맞추기 위해 고용직을 감원한 것이다. 사유불문하고 정부의 고용직 감축이라는 정책기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번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88년의 체신노사협의회에서 고용직 공무원의 처우개선을 위하여 기능직화에 대해 합의함에 따라 이에 힘입어 그 다음해인 89년 국무회의에서 공무원 임용령을 개정하여 전 행정기관으로 확대·시행하면서 당시 약 9만여명의 고용직 공무원을 기능직 공무원(이전에 없었던 10급을 신설)으로 전환했었다.
 
경찰청에서도 물론 이때 방범대원 등 남성위주 고용직 공무원의 일부는 기능직으로 전환되었으나 대다수 고용직 공무원은 기능직으로 전환되지 못했으며, 직제개정에 따라 감축한 고용직 공무원의 정원에 대해서는 기능직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할 때까지 별도 정원으로 관리되거나 혹은 현원 정원과 일치될 때까지 퇴직 등 자연감원의 방법으로 별도 정원으로 관리되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직권면직 처리된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들은 이 시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채용된 이들이다.

그러나 98년 IMF 이후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경영혁신 지침이 본격적으로 시달되면서 정부조직개편과 인력감축정책을 단행하였고 이러한 정부 정책을 수행한 기획예산처의 예산삭감과 행정자치부의 정원관리 방침으로 인해 최대의 희생양은 하위직 공무원인 고용직 공무원과 이들이 전환된 기능직 10급이었다. 이는 98년부터 2001년까지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일반직이 15.9% 감축된 것에 비해 기능직은 30.2%, 고용직은 무려 60.6% 감축된 사실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일정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사전에 하향 조정된 정원에 도달하기 위해 갖은 퇴사압력을 행사했으며 자진퇴사하지 않은 경우는 강제퇴출로 직권면직 처리를 하였다. 경찰청 소속 고용직 공무원이 97년 3,423명에서부터 현재 89명이 남기까지 그동안 직권면직의 서릿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짐작케한다. 한편 경찰청은 2000년 이후부터는 총정원의 변동없이 감원하는 고용직·기능직 공무원의 수만큼 경찰 현원을 증원해왔다.

그러면 과연 이들 고용직들이 행하는 업무가 사라지거나 더 이상 필요성이 없어진 것인가? 아니다. 이들 정규직인 고용직이 담당하던 업무는 고용직을 감원하는 대신에 일용직을 채용하여 이들이 해오던 업무를 담당케 하고, 기존의 직권면직 대상이 되었던 고용직 중 미혼을 중심으로 다시 일용직으로 재고용하여 그 전과 동일한 업무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경찰청에서 정규직을 감원하고 비정규직 비율을 증가시키는 것이며 정규직 업무가 비정규직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더구나 가장 약자인 여성들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해서 말이다.

지난해 5월 정부는 1차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정규직업무가 비정규직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금번의 경찰청 소속 고용직 공무원의 직권면직 사태를 보면 이러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이 얼마나 허구로 가득 차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고용직 공무원의 직제를 폐지하고자 한다면 이들 고용직 공무원에 대해 무분별한 감축 정책 대신에 고용직의 기능직화를 통해 '상시업무에 대한 상시고용의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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