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보상법 신청 마감일이 가까워 질수록 관련단체 및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민주노총, 유가협 등 37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국민연대) 차원에서는 지난 16일까지 몇차례 걸쳐 공동신청을 했으며, 마감일인 20일까지는 개별신청을 독려했다.

전체 희생자 규모에 대해서는 재야에서는 17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반면, 정부는 10% 수준인 1만7천여명이 해당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수준에서 이번 1차 신청에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4∼5천명 수준이 전망되고 있어, 보다 많은 선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노동(조합)운동 관련 피해자 준비 척척

노동(조합)운동과 관련해서는 민주노총이 국민연대에 참여하며 적극 움직임을 가졌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지난달 18일 20명의 노동열사 신청을 기점으로 모두 3차례 공동신청이 이뤄졌다. 대상은 전태일(70년, 근로기준법 준수 촉구 분신), 김경숙(79년, YH농성시 사망), 박영진(86년, 임금투쟁 중 분신), 김시자(96년, 노조직선제 투쟁시 분신), 최명아(98년, 노조활동 중 과로로 사망) 등 20명이다.

같은날 2차로 청계피복, 원풍모방, 반도상사, YH, 현대자동차, 한국통신 등 7·80년대 구속·수배·해고자를 중심으로 200명이 공동신청을 했다. 여기에서는 70년대 민주노동운동동지회가 주도적으로 옛 동지들을 찾아 공동 신청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11일에는 3차로 70∼90년대를 모두 아우르는 사망·구속노동자 300여명에 대해 명예회복 신청을 했다. △70년대 노동운동 관련 동일방직 등 20명 △구로연대투쟁(85년) 관련자 40명 △부산고무공장 구사대 폭력(87∼90년) 관련 20명 △전노협사수 투쟁(90년) 관련 18명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90년) 관련 현중·현차 각 20명 △박창수 열사 장례투쟁(95년) 관련 40명 △부산지하철 파업(98년) 관련 40명 △한국합섬 투쟁(96년) 관련 24명 등으로, 3차에 걸친 현재까지의 공동신청은 총 520여명이다.

여기에 민주노총은 20일까지 개별신청을 적극 알린다는 방침으로, 1차 신청에는 총 700∼800명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YS정권때까지 구속·사망자 중심으로 했고, 90년대 김대중 정권 하에서의 사례 및 해고자의 경우도 부분적으로 포함될 예정이다.

한국노총 역시 80년 신군부에 의해 벌어진 1, 2차 강제정화 작업으로 해직·구속됐던 한국노총 산하 노조간부 191명에 대한 명예회복에 나서고 있다. 현재 한국노총은 각 산별연맹별로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20일 신청이 마감되면 기자회견 등을 열어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 나설 방침이다.

*국가보안법 관련 피해자, 16일 공동신청 끝내

이번 민주화운동보상법 신청자 중에서 빼놓을 없는 사람들이 바로 국가보안법 관련 희생자들이다. 또한 앞으로 보상심의 과정 중 가장 논란의 소지가 큰 분야도 바로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에 있을 것으로 관련자들은 보고 있다.

국가보안법 희생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것은 8월말부터, 정식 모임을 가진 것은 지난달 20일이다. 다른 피해자들에 비해서는 많이 늦은 편. 그만큼 그동안의 상처와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국가보안법 사건 관련자들은 사노맹, 제헌의회(CA), 민추위, 혁노맹, 인천연합, 남민전, 진보민청 등 굵직한 조직사건들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단체들의 당사자들이다. 이 중에서 사노맹, 혁노맹 등은 노동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노동자 출신 중에도 노조탄압을 위해 국가보안법으로 조직사건에 연루했던 경우도 다수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국보법 피해자들은 지난 16일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갖고 명예회복 공동신청을 했다. 관계 자에 따르면 백태웅, 박노해씨 등 사노맹 관계자 모두 55명, 제헌의회, 민추위, 혁노맹 등은 각 10여명씩, 그밖에 남민전, 서노련, 인민노련 등의 관련자, 지방 정치사건 관련 50∼60건이 신청, 20일까지는 모두 400여명이 신청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 국보법 피해자들은 전체 민주화운동 피해자 중 국보법 피해자의 비율을 87년 이전 30%, 전두환 정권 말기인 87년 이후부터 급격히 늘어 70∼80%에 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정부가 전체 예상하고 있는 피해자 1만7천여명 중 국보법 피해자는 10%정도라고 언급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어떻게든 국보법 피해자들을 제외할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국보법 관련자들을 대부분 이 법 외에도 방화, 폭력, 학원법 등 갖가지 법으로 얽어매 있어, 민주화운동에서 배제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애초 이 법이 마련될 때부터 논란이 됐던 것이지만, '자유민주적 질서'의 범위 안이라는 사상적 합의(?)를 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에 기반한 다수 국보법 피해자들이 보상심의 과정에서 자칫 이념 논쟁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국보법 피해 관련자들은 "만일 일각의 수구세력의 논리대로 민주화운동에서 국가보안법 사건 관련자들이 배제된다는 이는 민주화운동을 축소·폄하하는 것"이라며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돼야 하며, 관련자들에게 진정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강력히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단일사건 최대규모 전교조, 80년대 해직언론인 문공부 개입

민주화운동보상법의 대상자가 되는 사람중 전교조 관련자와 해직언론인은 다른 사건에 비해 그나마 성격이 분명한 편에 속한다.

민주화운동보상법에서 '항거'를 국가권력의 통치에 항거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해직교사는 신분상 국가가 직접적 사용자라고 할 수 있고, 대상자가 되는 해직언론인의 경우 80년 언론인 해직에 옛 문화공보부가 개입했다는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단일사건 최대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교조는 사안별로 전교조 결성·활동·사학민주화·시국사건·미복직 해직교사와, 시국사건 임용제외교사, 시국사건 교원미임용자로 나뉘어져 있다.

이미 복직된 교사들도 신규임용이나 특별채용 형태로 복직되었기 때문에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0년 동안의 해직기간에 대한 교육경력 불인정, 임금, 연금 불이익 등을 받고 있다. 이들은 명예회복과 원상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사학민주화 관련 해직교사들은 민주화운동보상법에서 사용자에 항거한 경우 제외된다는 내용에 의해 이 법의 적용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는 우리나라는 사립학교도 국공립학교와 거의 차이 없는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어, 사학민주화 관련자도 당연히 대상자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교조는 자체적으로 이 법의 적용대상자가 1,5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집계하고, 집단적으로 신청을 한 상태이다. 전교조는 1,200여명이 이미 신청을 마쳤다.

그러나 전교조는 최근 단협이행 촉구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명예회복 신청을 한 김은형 수석부위원장과 조희주 서울지부 지부장이 구속돼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져 있다. 한 교사는 "명예회복 신청을 하려 했으나, 이런 정부에 명예회복을 신청할 수 없어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언론노련측은 단위노조에 대상자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아직 대상자에 대한 집계가 돼있지 않다.

대략 80년도 신군부에 의한 해직자 900여명과 75년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서 해직된 언론인 150여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별적으로 신청하고 있는 해직언론인도 있으나, 언론노련은 내년 신청기간에 접수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한편 해직 언론인 보상과 관련해서는 해직 언론인에 대해 퇴직금의 60%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해직언론인배상등에관한특별조치법안'이 지난 94년 제출됐으나 15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자동폐기된 바 있다.

*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는 노동자 의문사

여야가 치고 받고 하면서 국회가 공전될 때 무던히도 속태우던 이들이 또 있었다. 바로 과거 정권에서 '실족, 자살' 등으로 처리됐던 소위 '의문사' 당한 이들의 유가족들이었다.

민주화보상법이 통과될 당시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이하 이 법)이 통과되었으나 국회공전으로 이 법에 규정된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이하 위원회) 지난 17일에야 현판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법은 '의문사'를 69년 삼선개헌 이후 민주화운동과 관련, 사망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 때문에 사망했다고 의심할만한 사유가 있는 죽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와 시민사회단체의 끈질긴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이 법에 따라 위원회는 올 해 말까지 의문사 진상규명 신청을 받고 30일 이내에 의문사의 가능성을 판단, 조사 여부를 결정한다.

이 법에 의하면 조사는 △군, 경을 제외한 기관관련 사건 △경찰관련 사건 △군관련 사건 △위원장이 특별히 명하는 사건으로 분류, 4개 조사과에서 조사하는데 사건당 6개월간의 조사 기한이 주어지며, 필요한 경우 1회에 한에 3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조사결과 범죄행위가 인정되면 관련자를 검찰총장이나 군 참모총장에게 고발 또는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할 수 있으며 조사결과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민주화운동보상법에 의해 명예회복과 보상신청을 할 수 있다.

민간단체인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의문사진상규명조사단은 현재 조사단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만 44건을 의문사로 보고 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군에 입대한 뒤 숨진 대학생 22명, 경찰이나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다 숨진 인사 17명 등이 포함되며, 그 중 노동자는 9명이 위 국민연대 의문사진상규명진상조사단에 접수돼 있다.

91년 대공장노조연대회의 대표자 회의중 경찰에 연행돼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5월4일 의문의 상처를 입고 입원했다가 같은 달 6일 병원마당에서 숨진채 발견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고 박창수씨(당시 34세), 대우중공업 노조민주화 투쟁을 하다 87년 6월 실종된 뒤 88년 3월2일 유골로 발견된 정경식씨(당시 29세), 88년 11월 민주노조 재건을 위해 활동하던 중 사고 당일 웃으며 출근했는데 저녁에 영안실에 안치된 구미 금성사 배중손씨, 86년 6월11일 인천 도화가스에 근무하던 중 서울 서부서 형사들에 의해 연행된 후 행방불명됐다가 6월19일 전남 여천군 대미산 동굴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신호수씨(당시 24세) 등 9명. 대개 실종 뒤 주검으로 발견된 노동자 의문사 는 '자살'로 처리되었으나 대개의 경우 수사결과가 노동자들(대개 회사측)과 싸우다 죽은 것으로 종결되고, 그 경우도 수사결과는 가해자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인 사람은 없는데 죽은 사람만 있는 격'이다. 죽음도 외형만으로는 공권력이 아닌 자본에 의해 혹은 개인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의문사 진상규명, "왜곡된 역사 바로 세우기"

그러나 이점에 대해 국민연대 의문사진상규명조사단 김학철 단장은 단호히 말한다.

"의문사는 단순히 한사람의 죽음을 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 의문사의 경우도 사건 당시의 노무관리방식, 자본과 공권력(수사기관)의 유착으로 증거를 은폐하고 파기해 왔습니다. 진상규명은 의문사가 일어난 당시 사회적, 정치적 배경까지 밝혀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은 모두 법 개정운동과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의문사진상규명법만 보더라도 공권력이 개입된 의문사고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대부문 현장이 남겨져 있지 않고, 증거는 은폐된 상황이다. 국민연대에 접수된 것만 현재 44건인데, 이를 6∼9개월안에 조사를 마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이 없는 것도 이 법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관련자들은 입을 모은다. 민주화운동보상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화운동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이며, 의문사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보듯이 국민적 관심이 법의 한계나 공권력의 은폐의혹을 극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