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국가권력의 음모가 도사린 용어다. 국가라는 하나의 정치체(polity)가 규율하는 하나의 가치관을 주입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통합은 하나로 모든 것을 '포섭'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가차없는 추방이 기다릴 뿐이다. '공공의 적'은 이렇게 탄생하며, 이렇게 축출된다. 이는 이미 장 자크 루소가 옹호한 바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미국 중심으로 세계질서는 급격히 재편됐다. 지구제국(global empire)이 바야흐로 출현하고 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무엇을 내세워야 할까?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제국'에서 다중(太衆. the multitude)을 맞세웠다. 하나로 함몰하는 제국에 대항하는 주체로서 'multi'가 선택됐다. 이 '멀티'라는 개념은 '유일함'(the one and only)를 거부한다는 다중의 포석을 깔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탈근대 이론에 대한 활발한 강연과 집필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정환(47) 씨는 21세기 세계질서를 '제국기계'라는 말로 개념화한다. 제국기계를 구축케 하는 구체적 증상으로는 지구적 수용소와 보편적 전쟁질서와 휴식없는 '치안기계'를 거론한다.
   
네그리의 삶과 사상을 '아우또노미아'로 분석한 책을 내기도 한 조씨는 근간 '제국기계 비판'(갈무리)에서는 제국기계의 3대 구성인자인 인간, 자연, 기계류를 재배치함으로써 '제국기계'를 궁극적으로는 자율성이 보장되고 다양성이 판을 치는 '공통기계'로 대체하고자 한다.
   
하나와 통합이 지배하는 '지구제국'을 '지구촌'(global village)로 전환케 하기(조정환은 '전복'이라는 말을 쓴다) 위한 원동력으로는 역시 다중을 내세운다.
   
조정환에 따르면 20세기 이전에 그 주된 타파대상은 제국주의였다. 이 제국주의라는 괴물을 붕괴하기 위해 종래 마르크시즘은 민중과 진보라는 두 깃발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러한 반제국주의 운동이 또 다른 절대권력을 만들어냈던 것은 아닐까? 예컨대 80년대 한국사회를 물들인 민중은 또 다른 폭거가 아니었을까? 절대권력에 맞선다고 하면서, 그러한 와중에 민중은 또 다른 절대권력화한 것이 아닐까?

종래 제국주의와 다른 제국이라는 타파대상을 상정하면서 네그리와 하트에게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발견하고자 하는 조씨가 민중이라는 다소 진부하면서도, 그에 대한 어떠한 반항도 허용하지 않는 민중이라는 말을 버리고서 굳이 다중을 내세우는 까닭이 이런 문제의식에 있을 것이다. 536쪽. 2만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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