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새해가 밝았다. 모두가 진저리친 한 해를 넘긴데 대해 홀가분한 표정들이고 '닭의 해'에 거는 기대도 많은 듯하다. 닭은 다산(太産)·풍요·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닭의 울음은 한밤의 어둠과 적막을 깨고 밝음과 활기에 찬 새벽, 아침을 불러오고 그래서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이기게 하는 희망의 소리가 들어 있다고 한다. 십이간지 모두가 덕담으로 가득하지만 닭띠의 그것은 우울하기 그지 없었던 작금의 상황에 견주어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지난 해의 어두움을 떨치고 올해는 새 빛으로 다가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는 광복 이후 다시 60갑자를 시작하는 해, 무엇인가 변화와 도약의 기대가 한껏 높아질만한 해이기도 하다.

비관적 예측을 빗나가게 하기 위한 조건들

세밑 지는 해에 지난 날의 어두움을 모두 실어 보내고 동해에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활기에 충만한 세상을 소망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밝지가 않다. 무엇보다 지난해 끝머리 어설픈 정치적 결말이 우울증을 더해준다. 살을 에는 한겨울 칼바람 속 1,400명의 목숨을 건 절규에도 국가보안법 철폐나 과거사진상규명, 사학개혁 등은 좌절되고 말았고 추악한 이라크 파병 연장안은 통과되었다. 수구냉전세력 한나라당의 오만함과 욕심에 종이호랑이 열린우리당의 무기력이 겹친 결과지만 이를 빌미로 기득권세력의 발호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을 생각하면 역겨움만 더할 뿐이다. 나라살림 역시 우울하게 한다.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침체로 4년 넘은 불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일자리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사회양극화의 참상이 경제규모 10대국의 밑바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여기다 북한 핵을 둘러싼 분위기도 심난하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안한 안개속이다.

노사관계도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통해 경기침체의 위기를 모면하려 할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위협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 정체는 물론, 고용불안이 증대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커지면서 노사관계는 더욱 날카롭고 복잡하게 될 것이다. 여기다 노사정 사이에 갈등을 부추길 제도 정책과 관련된 미결의 과제들이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양면성을 지니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노사관계는 환경의 변화와 그 주체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환경 요소의 하나는 곳곳에 눌어붙어 있는 비민주적 요소들을 청산하는 일이다. 국가보안법 철폐, 과거사진상규명법 제정, 재벌개혁, 언론 개혁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모두가 반공 냉전주의에서부터 권위주의 개발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배권력과 독점자본이 결탁하여 만든 산물로써 노동운동 발전을 저해하고 노사관계 변화를 가로막은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의 의회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제도와 정책 개선을 둘러싼 마찰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에 대한 구속과 대량 징계를 해제 또는 완화하는 것도 노사관계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 보호와 노동기본권 보장

노사관계 악화 전망의 중요한 근거가 경제문제라면 기업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차피 경제활성화의 주역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국가”이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기회있을 때마다 주창하는 정부 아래에서 정부와 노동조합 때문에 기업하기 힘들다는 주장은 어떤 설득력도 지닐 수가 없다. 전체의 2%도 안되는 지분을 갖고 수조 원의 재벌기업 수 십개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경영구조 개혁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로는 기업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의 질은 외면하고 오로지 비용에만 매달리는 노동유연화 추구와 잔뜩 날을 세워 노동을 왜곡 공격하는데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노동을 끌어안고 호소하는 모습으로 바꾸는 것도 노동의 신뢰를 이끌어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 노동조합의 양보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납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스스로 제시하고 노동조합을 기업 발전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대한다면 노사관계의 지형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노사관계는 ‘자치’가 기본원칙이지만 그것이 정부 역할의 축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한 정부 정책의 초점은 시장경제의 실패로부터 나타나는 시장경제의 소외자, 곧 사회적 약자 보호에 있다.

이미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사회적 안전망을 파괴하는 것에 주목하여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목표로 내건바 있다. 그러나 그 경과는 미진한 것이었고 삶의 한계선상으로 밀리는 소외자는 확대일로다. 그 중심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전체 노동자의 56%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설 땅이 없고 노사관계 안정은 기약하기 어렵다. 정부는 그 해법의 하나로 일자리 만들기에 온 힘을 쏟는 모양이지만 양만을 중시하는 일자리 만들기가 고용불안을 확대하거나 사회 양극화를 부채질해 궁극적으로는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또 하나의 요건은 노동기본권 보장이다. 이것은 자본이나 정부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노동의 유연화와 맞바꿀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인권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역대 정권의 한결같은 약속이었고 국제사회의 일관된 요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기본권 보장은 다른 사안에 앞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은 선진사회 진입의 상징이기도 하다.

폭넓은 연대, 사회정의 실현이 노동운동의 책무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에 거는 기대는 너무도 크다. 노동운동이야 말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주의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고 자칫 그 바탕마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이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시급히 전체 노동자 대중의 관점으로 전환해 나가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미 노동운동은 지난해 노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고 비록 부분적인 성과이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회공공성 확대 및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와 실천적 합의 도출, 산별교섭의 진전과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재점화, 양대노총의 연대 확장, 현장토론 복구 노력 등등이 그것이다.

앞으로 노동운동의 활성화 여부는 스스로를 혁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얼마나 확대 재생산해내는가에 달려 있다. 바로 조합원의 좁은 이해를 넘고 기업내 교섭의 틀을 뛰어 넘어 사회적 교섭의 장으로 확장시켜 사회개혁투쟁을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노동운동을 지금까지와 같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처지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의연하며 정의로운 투쟁의 주체로 다시 자리매김하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사관계의 변화와 개혁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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