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동강 난 한반도의 나머지 조각, 아직 남한에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았고 현직 국회의원이 '간첩'이다, 아니다는 공방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냄비가 자본주의의 첨단인 롯데백화점에서 불티나듯 팔리는 어색한 공존의 땅. 지척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는 지금 굉장히 특별한 지역, 특별한 구역으로 가게 됩니다.”

2005년 1월1일 새벽 5시30분. 아침이 깨기도 전, 금강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관광조장(관광가이드)이 설핏 잠든 기자를 깨운다. 동해의 하얀 파도가 철책선 너머로 보이긴 하지만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세상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막 새해가 밝은 오전 8시 동해선 남쪽출입사무소(CIQ)를 출발한 금강산 버스는 남방한계선인 금강통문에 도착, 민통선-비무장지대-군사분계선을 지났다. 그리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북방한계선, 남한을 떠나 30여분 만에 북한에 다다랐다. 잠시 버스가 멈추자 북한군 두 명이 버스에 올라 맨 뒷좌석까지 살피고 관광조장에게 인원을 확인한 뒤 하차한다.


북쪽으로 연결된 동해선 도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북한 군인이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을 막기 위해 빨간 깃발을 들고 서 있다. 그 뒤로 고성군 온정리 주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 아이를 무등 태운 아버지의 모습과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들, 새해 첫날 북한 주민들은 여유롭다.

고성항(장전항)에 위치한 북쪽출입사무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평소 4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는데, 지난 밤 내린 눈으로 20여분이나 지체됐다.

이 곳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게 해준 것은 굳은 표정의 - 이것도 기자의 선입견일런지 - 북한 군인들이기도 했지만 버스로 이동 중 발견한 선전구호들,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 ‘자력갱생, 강성대국’,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등의 붉은 서체의 글씨였다.

관광조장의 안내에 따라 다음 이동한 곳은 금강산에 있는 폭포 중 가장 크다는 구룡폭포.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인 그 곳을 가기 위해선 2시간 가량 산행을 해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현대아산직원이 몇 가지 당부를 한다.

“이 곳에서 사진은 맘대로 찍으셔도 됩니다. 단, 북한주민을 사진에 담아서는 안 되며 정치, 사회 등 민감한 질문도 안됩니다. 그 외에 담소는 충분히 나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침을 뱉거나 나뭇가지를 꺾는 등의 행위를 할 경우 북한 현장안내원에게 벌금을 지불해야 하니 유념해 주십시오.”

설악산을 닮은 금강산은 초입부터 기암절벽의 절경에 한발 한발 내딛기조차 힘들었다. 발을 뗄 때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순간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놓은 듯한 담과 소, 산줄기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기자의 필력은 너무나 부족했다.

산행 중 북쪽 현장안내원들이 금강문, 옥류동, 연주담, 비봉폭포, 관폭정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준다. 또 곳곳에는 김일성, 김정일 '장군'이 방문한 것을 알리는 교시도 빠지지 않았다.

"새해 축하드립니다"

산행을 하는 관광객들에게 일일이 '새해 축하드립니다'라며 인사를 건네는 북측 현장안내원들에게 남한의 관광객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화답한다. 스무살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 현장안내원에게 올해 새해소망을 물었다. 주저 없이 그는 “통일”이라고 답한다. 남쪽 동포의 물음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심각한 경제위기를 반영한 남한의 또래들이 ‘일자리 창출’이나 '청년실업 해소'가 가장 큰 소망인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 외 소망은 없느냐는 질문에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1시께 점심을 먹기 위해 북한 음식점인 ‘모란각’에 들렸다. 빨간색 유니폼을 차려입은 10여명의 '접대원'들이 남쪽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남쪽 관광객들 대부분은 그들의 말투 ‘~네다’를 신기한 듯 좇아한다. 한 관광객이 북쪽보다 남쪽이 훨씬 낫다고 농을 던지자, 대뜸 “그럼 한라산에 가시지 왜 금강산에 오셨습네까”라며 접대부 중 한 명이 웃으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올해는 남북이 분단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미 한 번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그 시간들. 남과 북은 지금 현재 여전히 갈라서 있고, 또 그만큼 달랐다. 짧은 북한 관광길, 북한을 만나기보다는 북한의 자연을 만났지만, 금강산이 설악산을 닮았듯 남북은 여전히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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