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유난히 춥고 어두웠던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햇살을 보니 소감이 적지 않다. 지금은 추워도 아직은 어두워도, 곧 밝고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설레는 맘이 저절로 살아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이런 것이라고 그냥 아무렇게나 생각해본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는 그 어느 해보다 힘든 한 해였다. 새로운 노동운동 지도부와 함께 희망이 솟았던 연초를 제외하면 말이다. 서울지하철 파업, LG정유노조 파업, 그리고 공무원노조 파업과 비정규노동자 관련법 개악 반대 총파업으로 이어진 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였으나 힘겨웠다. 금강화섬, 코오롱 등 여타 벼랑 끝의 투쟁은 더 말할 수 없는 고난이었다. 결국 수많은 노동자들이 징계되고 해고되고 감옥에 가고 또 죽었다.
 
험난한 고행에도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올 한 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비정규노동자 관련법 개악, 노사관계 로드맵,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실직과 생활의 파탄이다. 더불어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온갖 조롱과 기만, 협박이 예정되어 있다.
 
'노동귀족의 배부른 자기 잇속 챙기기', '그들만의 노동운동', '대기업노조의 집단이기주의', '국민을 볼모로 한 철밥그릇 운동', '불법 폭력투쟁' 따위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한층 강화될 것이 뻔한 일이다.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다시 고난의 가시밭길로 나서야 하는가?

그런데 지친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도처에 널려있는 달콤한 유혹이다. 쉬운 길이 있는데 왜 고난을 자초하는가 하는 꼬드김인 것이다. 공무원노조에게 그 길은 정부의 특별법안을 수용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또 지하철, 철도, 발전노동자에게 그 길은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눈 한 번 질끈 감는 일이다. 시민-국민들에게 칭찬받고 잘하면 내 밥그릇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노조처럼 정부로부터 노사화합대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처럼 감옥 대신 국회로 진출할 기회까지 잡으면 더 좋은 일이고.

1300만 노동자, 그리고 민주노총에게 이 새롭고 넓은 길은 무엇보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길이다. 한 번 크게 거래해서 ‘왕자병’도 치료하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도 받는 노동운동을 하는 길일 것이다. ‘머리박아야 깨지기만 하는’ 총파업투쟁은 이제 신물이 난다. 책임 있는 자리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크게 한판 승부를 내자는 것이다. 경제사회협의회든 노정사위원회이든 뭐든 좋다. 이름이 중요한가? 결국 조직 내외로부터 요구받고 있고, 대통령을 필두로 해서 이른바 ‘모든 국민’이 바라고 있는 이 밝고 넓은 길을 외면하는 민주노조운동은 전망이 없다.

그리하여 올 초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다시 한 번 노사정위원회 참가 문제가 도마에 오를 예정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좋은 경구처럼 지난 일은 잊어버리자는 유혹도 들려온다. 해고당한 400명의 공무원 노동자와 그 가족, 징계 받는 3천여명의 공무원, 감옥으로 간 타워크레인 농성노동자와 죽은 비정규 노동자들, 짓밟힌 LG정유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 모두 다 과거지사이다.

이제 전문가의 조언처럼 대체로 타당한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안을 속히 처리하고 선진 노사관계로 나아갈 로드맵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꼭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손해야 되겠는가? 더 나아가 책임 있는 시민단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존의 벼랑에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사회복지제도도 더 확충하고 시민적 의제에도 참여해서 시민운동과의 연대도 돈독히 하자. 노동자연대에 도움이 되고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도 회피할 수 있다면 양보교섭인들 마다할까?

올해는 민주노총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사방에 널려있는 넓고 밝고 따뜻한 길을 놔두고 좁고 어둡고 추운 길로, 그 외길로 걸어온 10년, 20년이었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의 그 무거운 짐, '민주' 두 글자를 내려놓자고 한다. 도처에서 위기 앞에서는 그 길밖에 없다고 아우성이다.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타고 졸고 있다”면서 차를 갈아타라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기지 말고 대타협의 고속철을 타고 ‘하이로드’로 고속 주행하라는 유혹도 끈질기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말이다. 예수가 광야에서 세 가지 유혹을 거부했듯이, 그래서 고난의 좁고 가파른 언덕을 하염없이 올랐듯이, 그리고 이 땅에서 전태일이 그 좁고 뜨거운 한 길로 내달렸듯이 우리가 가야할 길은 따로 있는 법이다.

새해 아침, 새 햇살 앞에서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은 한바탕 넋두리가 다시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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