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1일 오전 8시, 지난해 7월 경의선 연결공사가 시작된 민통선 최북단 도라산역 공사 현상 뒤로 시뻘건 해가 솟았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통일운동가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평등한 사회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비롯한 노동악법 철폐, 남북통일을 기원했다.

1,200여명의 남쪽 노동자들이 2005년 새해를 통일과 비정규직 철폐의 원년으로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31일부터 1일까지 조합원과 가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1,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새해맞이 철도기행’ 행사를 했다.

1일 새벽 4시 용산역을 출발하는 열차를 이용, 도라산역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7시부터 ‘통일염원 비나리’를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기도 전에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은 각자의 소망을 담은 소원지를 도라산역 행사장 주변 새끼줄에 묶었다.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 동쪽을 뒤로 하고 참가자들은 평등한 사회, 국보법 철폐, 노동악법 철폐,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고용안정 보장을, 비나이다, 비나이다, 반드시 통일 만들기, 우리 엄마 호강시켜 드리고, 부자되게 해 주세요. 국가보안법 철폐시키고 모두들 근심걱정 덜기를 비나이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낭독한 축문을 적은 종이가 불태워진 데 이어 수천여개의 소원지가 묶인 새끼줄은 불태워지기 시작했다.

남북단일기가 경의선 연결지점 바로 앞에 올려지자 시뻘건 해가 동쪽에서 솟아 올랐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참가자들은 두손 모아 기도하면서, 눈부신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각자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통일을 염원하는 단심줄 꼬기가 시작됐다. 오색의 단심줄은 붉은 해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꼬였다가 다시 풀어졌다. 숨을 쉬면 콧속이 얼어버리는 영하 14도의 혹한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남북통일과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금속노조 STX엔진지회 안병기 조합원은 “가족의 건강과 모든 국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2005년 남북통일을 기원했다”고 말했다.

서훈배 전국학습지노조 위원장은 “2005년이 획기적인 통일의 계기가 되기를, 우리 노조 조합원이 늘어나고 조직이 강화되기를, 학습지교사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쟁취되기를 빌었다”고 말했다.

통일제를 지내면서 북녘어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지도 위에 그려진 휴전선이라는 선을 지워버리고 싶다”고 말했던 채장식 민주노총 대구본부 통일위원장의 자녀 채지영(13)양은 “중학교 입학해서 배치고사를 잘 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말했다.

역시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정민주(13) 양도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며 “개인적으로는 좀더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2004년에는 새해를 맞자마 박일수 열사를 떠나보냈던 기억이 난다”며 “비정규직을 비롯해 노동자들이 힘들더라도 힘차게 싸워서 어려움을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올해도 새해를 맞은 첫날 또 한 명의 노동자를 보내게(고 박상윤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의 발인) 됐다”며 “제발 죽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미 전날 부산역과 목포역에서 열차를 출발한 참가자들은 ‘희망의 통일축제’ 행사를 용산역 광장에서 열기도 했다. 행사 도중 2004년이 가고 2005년이 시작되자 불꽃놀이와 대동놀이가 열렸으며 행사장 양쪽에 달린 ‘박’에 ‘콩주머니’를 던져 박이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국가보안법 철폐’와 ‘비정규직 철폐’라고 쓰여진 플래카드가 펼쳐지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고 박일수씨 사망, 공무원노조 파업, 비정규직법안 철폐 투쟁,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 고통과 투쟁으로 이어진 2004년을 보내고 비정규직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선포하는 2005년을 한반도 남쪽 최남단과 최북단을 오가며 맞이한 것이다.

이처럼 이틀간 이어진 철도기행 행사는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전국농협노조 군산지부 조합원 서금선씨와 민경아씨는 “용산역 광장행사부터 시작해 철도기행, 해돚이 등 모두 재미있다”며 “해마다 지부에서 해돋이 행사를 했지만 민주노총 차원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행사를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전북에서 올라왔다는 통일연대 회원 김진효(40·의사) 씨는 “딱딱한 집회 등의 형식을 떠나 가족들과 기차를 타고 남쪽의 최북단까지 올라온다는게 무척 의미있다”며 “이런 행사가 활발해 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3년 철도노조는 경의선과 동해남부선 연결 공사를 앞두고 조합원들은 물론 이북5도민, 소년소녀가장까지 참가하는 통일행사를 기획했지만 7월 공사 시작을 앞두고 터진 6.28 파업과 일부 관료만 참가하는 정부의 행사 축소로 인해 계획은 무산된 바 있다. 그러다가 노조는 민주노총에 2003년 무산됐던 행사를 기획안으로 냈고 통일운동단체와 연대한 추진단까지 꾸려지면서 적극적으로 추진된 것.


이번 행사 진행을 위해 경부선과 호남선을 운영하는 기관사만해도 20여명 넘게 동원됐고 열차 운임료는 20%가량 할인됐다. 당초 영동선 운행도 추진됐지만 기관사 동원이 여의치 않아 취소되기도 했다.


김용욱 철도노조 통일위원장은 “철도공사가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수익 등의 측면에서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공사 출범 이후 첫 사업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쪽의 철도는 1일부터 국유철도 시대를 마감하고 공사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100% 정부가 출연하는 정부투자기관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민간투자 증가와 본격적인 구조조정, 공공성 약화가 예상되고 있다. 김용욱 통일위원장은 또 “철도라는 것이 남쪽의 자산만이 아니라 민족의 철도인데도 남쪽만 임의로 공사화해서 애석하다”고 말했다.


철도산업은 대표적인 ‘분단산업’으로 불린다.


만약 현재의 휴전선이 없다면 남쪽의 부산이나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는 북쪽을 관통해 중국까지 갈 수 있다. 2003년 경의선과 동해남부선이 연결됐지만 개통은 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침략을 돕는 도구가 됐고 지금은 남북이 겨누는 총부리 앞에서 가로막혀 있다”고 말했다. 통일이 돼야 온전한 철도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 위원장은 “철도는 한반도의 혈맥으로 철도와 통일은 뗄수 없는 관계”라며 “노동자들 중에서도 철도노동자들이 통일운동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도노조는 이후 기관사 공모 등을 통해 노조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면서 철도통일기행 행사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