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옥 의원(38)은 오늘도 자료의 장막에 둘러쌓여 있다. 두평 남짓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의 의원 사무실은 온통 행정과 관련한 공문과 자료집으로 빼곡히 차 있어 사람 한 명 더 앉을 공간도 없다. 손님이 올 때마다 자리를 옮겨 일일이 차를 대접하는 것은 물론, 관련자료를 복사해주는 것 역시 그의 일이지만, 심 의원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올초 한 시민단체가 그에게 ‘서울시 최우수 의원’이라는 영예를 안긴 것은 온전히 이런 일상 속에서 꽃핀 결과였다. 초대형도시 서울시의 유일한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그에게 모아진 세간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는 그 관심에 ‘제대로’ 부응했다. 특히 이명박 시장의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서울시가 노동자와 서민과는 무관한 행정을 펼칠 때마다 그 대척점에 심 의원이 서 있었다.
 
서울시 속기사들의 책상 높이를 낮추게끔 한 미담을 언급할 때마다 “아예 높이 조절을 자유롭게 하는 책상으로 바꿔야 했는데, 한뼘 높이밖에 못 줄여서 아쉽다”고 쑥스러워하지만, 그 ‘한뼘’만큼의 차이야말로 민주노동당과 심 의원의 ‘진가’다.
 
그런 심 의원이 <레이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행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심 의원은 이명박 시장의 행정 스타일을 ‘경영마인드로 치장된’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하며 대중교통개편, 청계천 복원, 일자리 창출 사업 등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했다.
 
심 의원은 “서울시뿐 아니라 대부분 지자체들이 경영 효율성만을 추구, 단기적 성과를 위해 비정규직과 용역직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공공영역에서의 효율성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심 의원의 이같은 비판은 최근 서울시가 ‘시정성과’를 부쩍 내세우고 있는 데다, 이명박 시장이 어느 때보다 더 적극적인 ‘대권행보’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제기된 것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주식회사 서울시 사장 이명박
 
심 의원과의 인터뷰는 최근 언론에서 부쩍 보도된 서울시의 ‘시정 성과’에 대한 지적으로부터 시작됐다.
 
- 연말연시를 맞아 최근 서울시의 자화자찬식 행정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성공적 안착, 내년 청계천 복원 성공 예상 등이 그렇다. 실제로 대중교통개편의 경우 초기혼란을 넘어 이제 이 시장의 ‘업적’으로 평가되는 듯한 분위기다. 
“이명박 시장이 자랑할 만한 사업은 많다. 청계천 복원부터 시작해서 시청앞 광장 공원조성, 대중교통 개편, 장애인 콜택시 사업 등 상당히 창발적인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이 시장의 강조하는 것이 바로 행정의 ‘경영마인드’와 ‘속도’다. 예컨대 7월부터 시행된 대중교통개편의 경우 이 시장은 1월부터 7월 1일이라고 못박고 사업을 펼쳤다. 속도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납기일은 생명이다’는 공장의 표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행정은 경영이 아니다. 행정은 내용은 물론 방식에서도 얼마나 합리적인가, 공정한가가 지표가 돼야 하는데, 이 시장의 방식은 시민합의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마치 기업들이 과정보다 손에 잡히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시장을 ‘주식회사 서울시의 사장 이명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실제로 이명박 시장 인터넷 팬카페 바탕화면에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삼성전자 수준으로 만들자’는 문구가 깔려 있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행정 전반에 걸쳐 경영마인드를 도입하는 경향이 생겼다. 과거 행정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에 밀려 지금은 효율성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을 얼마나 많이. 빨리 했느냐가 아니다. 사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시청앞 광장이나 대중교통의 경우 결국 서울시의 광장독점과 요금인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시민들이 실제로 어떤 무엇을 원하는 지 고민하지 않은 결과다. 결론적으론 시장님 보시기에 좋은 사업이고, 옳은 사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독재와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 경영마인드를 주창하는 이 시장이 결국 과거 관료형 시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시장은 특별시장의 위상을 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조직 장악 능력이 탁월하다. 한가지 사례가 있다. 대중교통 개편 때 시민들의 반발이 격화되면서 시장소환 움직임까지 있지 않았나. 이때 이 시장은 말단 실무자들에게까지 특별하사금을 내렸다. 시민들 여론에 굴하지 말고 밀어붙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서울시에선 한나라당이 여당이어서 시의회가 힘을 몰아주고 있다. 정치적·행정적으로 거칠 게 없는 것이다. 유일하게 제동을 걸 수 있는 게 언론이지만, 대부분 서울시에서 낸 보도자료를 그대로 쓴다. 이 시장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 예컨대 청계천 복원 관련해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많았음에도 그냥 밀어붙이지 않나. 결국 나중에 문제가 증폭된다. 이 시장에겐 이런 사업이 업적으로만 남고, 뒷처리는 시민들이 감당하는 셈이다.”
 
“청계천변 도로, 사람 한 명 걷지도 못해”
 

 

 ⓒ 매일노동뉴스 박여선 기자

- 이명박 시장이 추진하는 사업들이 뒷날 커다란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다는 건가?
“물론이다. 청계천 복원이 단적인 예다. 지금 천변에 만드는 보행도로의 폭이 50센티미터다. 혼자 걷기도 빠듯한데, 여기다 나무까지 심는다고 한다. 사람 한 명 걷기 힘든 웃기는 도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제와서 이 도로가 보행용이 아닌, 관리용 도로라고 둘러대고 있다. 애초 사업계획을 보면 분명히 보행도로로 제시돼 있는데, 말을 바꾸고 있다. 결국 나중에 도로 다 뜯어내서 넓힐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특히 청계천의 유지용수를 중랑하수처리장의 지하철 용수에서 뽑아 인위적으로 물을 흘리겠다고 하는데, 결국 이건 죽은 개천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시일이 걸리더라도 원천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결국 속도나 성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번 할 때 시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합리적 절차를 통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교통 체계개편 문제도 주민공청회 등을 통해서 처음부터 완벽을 기했으면 나중에 노선 재조정하고, 버스 재투입하는 일 없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회적 비용만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 이 시장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점이나 줄 것 같나.
“생각해본 적 없다.(웃음) 시민합의 면에선 마이너스지만, 의제개발 능력엔 그래도 좋은 점수를 주고싶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업적 중심으로 간다는 것이다. 서울시 행정을 시장의 정치적 업적을 쌓는 기회로 삼아선 안된다. 요즘 대통령 하시겠다고 하는 모양이던데 세간에선 ‘서울시의 이 난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 최근 이명박 시장은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는 등 차기 대권주자로의 행보를 벌이고 있다. ‘정치인 이명박’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정치인 이명박은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의제 발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중평이다. 어찌 보면 장사꾼으로서의 감각이 탁월한 것이다. 하지만 의제는 새롭지만, 방식은 낡았다. 포장기술은 뛰어난데 사실 뜯어보면 새로운 것이 없다. 앞서 말했듯 특히 시민합의 측면에선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시의 각종 위원회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자신에 비판적 사람들을 상당히 배제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3개월 뒤 해고하는 청년 일자리 대책”
 
심재옥 의원의 서울시와 이명박 시장 비판은 직설적이었다. 심 의원은 인터뷰 도중 때때로 “이렇게까지 말하면 안되는데···”라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토로했다. 특히 서울시의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와 관련해선 더욱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서울시가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내놓은 게 ‘행정서포터즈’라는 제도다. 말 그대로 행정보조요원들을 3개월 단위로 3천명씩 고용하는 것이다. 3개월 지나면 자동해고되고 마는 최악의 미봉책이다. 여기에 연간 1백 49억이 쓰인다. 앞으로는 7천6백 명까지 고용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게 무슨 일자리 해결방안이 된단 말인가. 채용하는 동안에만 일시적으로 실업률이 떨어지는 걸 두고 서울시는 청년실업률이 낮아졌다고 자랑하고 있다. 고용문제마저 전시행정으로 가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이 돈이면 직업훈련을 강화하거나, 정규직 고용 창출에 앞서는 기업에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게 낫다.”
 
심 의원은 지난해 재경위에 있을 때 이 제도를 문제 삼으며 행정서포터즈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동료의원 한 명이 “아니 어떻게 노동계 출신 의원님이 고용안정 정책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느냐”며 시비를 걸어왔다. 심 의원이 “행정서포터즈 제도가 고용문제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하자 돌아온 대답이 “그래도 학원비라도 벌 수 있겠죠”였다. 심 의원은 “정말이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특히 지자체 스스로가 비정규직을 앞장서 양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다. 민간위탁, 용역사업 등 고용불안을 야기시키는 사업을 벌이는 지자체에 대해서 오히려 경영효율성을 높였다고 칭찬한다. 이에 대해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짜겠다면, 먼저 지자체의 용역문제부터 해결하라고 하고 싶다.”
 
- 정부기관 등 공공부문에도 ‘효율성 지상주의’가 극도로 만연하게 된 까닭을 뭐라고 보나. 
“IMF 이후 마치 작은정부가 최선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공공영역에서의 효율성 제고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이는 김대중 정부가 저지른 구조조정의 여파라고 볼 수 있다. 행정의 가치를 변화시킨 것이다. 예컨대 시립병원이나 지하철은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러데 언젠가부터 이런 상식이 깨졌다. 적자가 나면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부담을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공공성 복원이야말로 지금 중요한 화두가 돼야 한다.”    
 
대공원 청소용역 고용 부결됐을 때 절망해
 
- 시의원으로서 남다른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안타까움도 많이 느꼈을 텐데.
“언젠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시의원을 사퇴하는 한 의원이 나를 겨냥해서 ‘잘난 척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더라. 튀지 말고, 의회 내에서 화합하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튀는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나를 항변하고 싶었다. 지난해 가장 가슴 아프게 느꼈던 게 서울대공원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고용문제가 의회에서 부결된 것이다. 그럴 때 내가 혼자서 대체 뭘 할 수 있느냐는 절망감과 분노가 컸다. 하지만 그때 ‘분노는 나의 힘’이라는 말을 매일 되뇌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이 발언과 대안들이 언젠가는 사회적 상식이 될 것이고, 또 내가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민주노동당 사람들의 힘에 의해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놓치 않으려 애썼다. 특히나 나는 당의 첫 번째 의원으로서 더더욱 하나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 그런 경험들은 현재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다. 활동공간은 다르지만 ‘선배 의원’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운동경력으로 보면 한참 후배인 내가 감히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웃음) 우리당 국회의원들 보면 참 불쌍하더라. 주변의 요구는 많고,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많고. 내가 그랬듯 국회의원들도 힘들고 좌절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도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제는 사안 하나의 완성이 아니라 사회적인 큰 힘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나도 2년 동안 헤맸다. 모든 일을 다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부터 좀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남의 눈치를 너무 보지 말고, 자신의 전략대로 차근차근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민주노동당 ‘파견 시의원’일 뿐

 

 

 

 

102명의 서울시의원 중 유일한 민주노동당 의원으로서, 그는 자신의 ‘경험’이 곧 진보정당의 ‘인프라’로 축적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곧 진보진영이 의회정치의 ‘재생산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그래서도 기자는 인터뷰 말미에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거칠게 말하자면 ‘재선에 대한 욕심’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초반엔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나 하는 생각뿐이었다.(웃음) 당 차원에선 내 활동이 아주 중요하지만 사실 개인적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바보 취급 받거나, 모멸감 느낄 때도 많았다. 대체 뭐가 행복했겠나. 출마할 때부터 당선될 거라는 예상을 못해서인지 몰라도, 나는 당에서 시의회로 파견된 노동자라는 생각을 쭉 해왔다. 그 파견 기간 동안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임무를 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내가 의원의 역할을 하게된 건, 남들이 하라고 해서 한 거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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