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박준성, 김현준.

활동했던 조직과 방법은 다르지만 ‘노동운동’이란 공통분모를 지닌 ‘활동가’들이다. 재능교육교사노조 위원장, 진보적 역사학자이자 노동교육 강사, 전교조 부위원장. 그들의 가장 최근 이력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그들의 영역에서 온 힘을 다해 노동자, 민중을 위해 활동해 왔고, 그 과정에서 병을 얻어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한 해를 보내면서, 그들을 떠올렸던 것은 왜일까. 그들이 우리 뇌리에서 기억되기를 바랐고, 그들이 하루빨리 쾌유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미약한 글이나마, 이를 통해 힘겨운 투쟁이지만 그들의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면 지켜보는 이의 미안함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희망을 통해 미안함을 덜어보려는 일종의 이기심 말이다.


정종태 “건강한 모습으로 동지들을 만나고 싶어요”

“꼭 다시 일어나겠다.”

정종태 전 재능교육교사노조 위원장(40)이 지난 9월, 본지 인터뷰를 통해 “아직 할 일이 많다”며 “나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들이 많고 아직도 할 일이 많기에 좋아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면서 그가 했던 약속이다.

4개월이 흘렀다. 정 전 위원장은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 퇴원해 잠시 마석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기도 했다는 그는 현재 서울 신림동의 동생 집에서 머물고 있다. 투병 중인 그의 곁에는 늘 재능노조와 조합원, 그의 비정규직 투쟁의 동지들이 있었다. 재능노조 상근간부들이 돌아가며 그를 간병했고, 그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일일주점을 여는 등 그의 동지들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걱정이 많다. 그의 건강상태가 쉽게 호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병을 다녀왔던 이남신 전 이랜드노조 위원장은 “그새 모습이 많이 달라졌더라”며 걱정했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몸무게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이 커요. 꼭 완치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돕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완치되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말끝을 잇지 못하는 이 전 위원장은 ‘완치’란 말을 꼭꼭 눌러쓰듯 몇 번이고 강조했다.

홍준표 전 한통계약직노조 위원장도 정 전 위원장을 바라보는 심정이 아프기만 하다. 과거 517일간 투쟁을 함께 했던 김영민 전 노조 경남본부장을 지난달 간암으로 저세상으로 보낸 뒤 그는 “함께 투쟁하면서 봤던 정 위원장은 남다른 열정으로 투쟁했던 동지”라며 “병을 이겨내고 다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길 바란다”고 간절한 소망을 전했다.

정종태 전 위원장은 목소리는 밝은 편이었다. 그의 동지들의 걱정을 알기에, 그의 노력은 한층 더 빛이 나는 듯했다. 그는 “지금 갖가지 방법으로 병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뚜렷하게 효과는 없지만요. 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감 있게 투병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내년엔 희망을 갖고 건강을 회복해서 동지들을 만나고 싶어요.”

실제 그는 지난 8월말 위암말기 판정 이후에도 한 번도 환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목소리에도 그 표정이 묻어있는 듯 했다.

“꼭 다시 일어날 겁니다. 할 일이 많으니까요.” 그의 다짐이, 그의 약속, 그리고 그의 희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박준성 “내년엔 새로운 활동을 할 겁니다”


슬라이드와 환등기를 배낭에 짊어 매고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전국을 누비며 노동자교육을 해왔던 박준성씨(49). ‘배낭과 노동자를 선택한’ 진보적 역사학자란 그의 이름은 늘 노동자의 머리에 깊이 각인돼 왔다.

그 역시 지난 1년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지난해 11월 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그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다행히 간암은 거의 치료가 됐다. 그러나 다시 암이 임파선까지 전이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맞았던 그. 하지만 그는 지난 1년여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한시도 져버린 적이 없었다.

“계속 좋아지고 있어요. 간은 이상이 없고요. 임파선에 전이된 암은 이제 조금 남았다고 하네요. 내년 1월 다시 검사 받아야 하는데요, 그땐 완전히 암이 없어졌다는 이야길 들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5월, 본지 인터뷰 이후 반년여만에 다시 들은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밝았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 간암치료 당시, 끊어질 듯한 배를 움켜잡고 쓴물을 토해내던 항암치료를 간신히 이겨낸 것도 잠시, 이번엔 모두 24차례의 임파선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박준성씨는 아직은 옛날처럼 노동자교육을 다니기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천천히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얼마 전부터 그동안 중단했던 원고를 쓰기 시작했어요. <노동과 세계>에 ‘사진 속 노동역사’라는 꼭지를 맡게 됐고요, 또 월간 <작은책>에는 다른 역사학자들과 나눠서 ‘노동운동사’에 대한 원고를 쓰기로 했어요.”

또 쉬면서 그는 그동안 썼던 원고나 슬라이드 자료, 홈페이지도 정리하겠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노동자를 만나 교육을 하게 되면,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자료를 활용하고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내년의 단어를 택하라면 ‘희망’을 택하고 싶어요. 희망을 매개로 새로운 활동과 전망을 준비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해요.” 


김현준 “어디에 있든 교육현장을 위해 있을 거예요”

지난 11월, 전교조 홈페이지는 공식적으로 이런 배너가 달렸다. ‘김현준 선생 돕기 성금 모금’. 김현준(49). 오늘의 전교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김현준 전 전교조 부위원장은 지금 간암투병 중이다. 2000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아 병세가 호전됐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학교로 복귀했던 그가 2003년 10월, 암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고 1년여 넘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 마세요. 다행히 수술은 잘 됐고 지난 5월까지 항암치료도 잘 마쳤습니다. 6월부터 전남 곡성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지리산 실상사 인근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어요.”
나중에서야 그의 투병생활을 전해 듣고는 부랴부랴 연락했을 때 김현준 전 부위원장은 밝은 목소리로 오히려 ‘걱정말라’고 안심을 시키며 근황을 소개했다.

“솔직히 2000년 발병 초기 저도 안타까웠습니다. 99년 전교조가 합법화가 되고 1년 뒤 병이 났으니까요. 합법화된 전교조에서 할 일이 많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지금 전교조 활동가들이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지금 요양을 하면서 그동안 살았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실상사 인근의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있고요.”

최근에는 실상사 주지를 지낸 도법스님이 주도하는 ‘생명평화탁발순회’를 다녀오기도 했단다. 남해지역을 돌며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웃과 사회와 나누자는 것이다.

“주변분들의 걱정이 많지만 병세는 좋은 편이에요. 원래 암이 전이되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현재까지는 성공적으로 잘 치료받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의 내년 소망은 우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활동을 돌아보면서 전교조 밖에서 우리 교육현실을 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싶단다.

“지금은 휴직 중이지만, 내년말쯤 몸이 좋아지면 시골 학교로 복직하고 싶어요. 무너지는 농촌교육에 대한 대안도 찾고 싶고요, 그것이 전교조 정책에 반영됐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국민들에게 전교조가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천상 그는 전교조 사람이다. 89년 전교조 창립부터 사무처장, 정책실장, 부위원장까지 거쳐온 그가 또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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