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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름다운 것'을 보았나요2004년 한 해를 보내며
아름다운 것을 보았냐구요?
네,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것의 극치를 보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모파상의 착오)의 <비계덩이> 중에서, 프러시아 군대의 병사가 자기들의 점령지역 안에서 혼자 사는 노파의 빨래를 빨아준다는 그 아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아름다움을 음미했습니다.
내 존경하는 친구여.
자네는 어떤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신 일이 있으면 저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 저의 메마른 심령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 주십시오. … 심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에서 휴식을 간구하는 미약한 저에게 동심의 감화로 눈물을 일으켜주십시오.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1969년 11월경)

2004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김주익, 배달호, 이해남, 이용석 등 노동자들의 죽음의 항거로 점철되었던 2003년을 보내며 새해에는 부디 생명과 희망의 이야기를 만들고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올해에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씨가 자신의 생명을 던져야 했고, 정오교통 소속 택시노동자 조경식씨는 분신 이후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들이 생명을 던져 고발했던 우리 사회의 문제들 가운데 금속산업 노사의 손배가압류 금지 협약으로 부분적으로만 해결되었을뿐, 노동자의 완전한 굴복을 강요하는 지긋지긋한 공세와 노동권을 무시하는 높고 거대한 제도의 아성은 굳건하기만 하다.

여수의 LG칼텍스정유에서는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탈퇴 결정을 내린 뒤, 민주노동당까지 탈당해야 했던 한 조합원이 관리자가 보는 앞에서 노조 조끼를 가위로 자르며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럼... 종교는 가져도 되나요?”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부시는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김선일씨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파병연장 동의안 처리를 이미 합의하였다. 국가보안법 폐지 약속은 누더기가 된 채 무기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들을 비웃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간구한 것은 아름다운 ‘평화’였다. 어린 여공들의 비참한 현실에 분노해 투쟁의 길에 단호히 나섰지만, 그가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은 ‘점령지의 병사가 늙은 할머니의 빨래를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무시무시한 총을 든 군인이 ‘혼자 사는’ 가장 힘없는 그 사회의 약자에게 자신의 ‘노동’을 조건 없이 내어주는 것이었다.

‘심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에서 휴식을 간구하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진실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구호로 무장한 노동조합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평화와 공존임을 모를 리 없다. 물론 진심을 가진 사용자라면 그들 역시 노조를 완전 초토화시키는 결말을 굳이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 앞에 가로 놓인 수많은 과제들은 어느 한 쪽의 단답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고, 구조조정과 산업공동화 문제가 그렇고, 저출산과 노령화, 국민연금의 미래 문제가 그렇다. 머리만이 아니라 몸을 맞대고 서로 함께 살고자 한다면 결국 노사정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들이다.

하지만 내년 노사관계도 어두운 전망이 우위에 있다. 비정규직, 공무원노조, 중소기업 주5일제,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등등 하나같이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다. 더구나 유가와 환율불안 등 경제변수 악화로 무난하던 수출대기업의 노사관계마저 경색될 조짐이다. 초긴축 경영이라는 표현에서부터 명예퇴직,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도 하다.

언론 문제를 다루는 노동계 한 인사는 가라앉는 광고시장과 신문업계의 불안한 조짐을 보면서 “노동적대적 보도가 더욱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만의 노동운동’, ‘또 파업’, ‘고임금 이기주의’ 운운하며 대포광고와 기획취재팀으로 무장한 일부 언론들이 노동운동과 노사관계에 달려들어 적대와 부정의 문화를 확대재생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지적이었다.

우리 모두 한 해 동안 자신들이 한 일을 되돌아보며, 내년에는 부디 ‘작은 감동’이라도 줄 수 있는 일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 성찰해야 할 시간이다. 매일노동뉴스도 그 점을 깊이 생각하며 한 해를 정리하고자 한다.

박영삼 편집국장  yspark@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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