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눈에 비친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아동문학가 강정규 씨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전쟁을 바라본 소설집 '토끼의 눈'(푸른책들)을 펴냈다.
   
세 편의 이야기를 엮은 이번 소설집에서 총소리나 귀를 찢는 비명소리는 들을 수 없다. 화약 냄새도 맡을 수 없고 선혈이 낭자한 아비규환의 현장은 소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보다는 예쁜 주사약병을 모으고, 같은 학교 여선생님과 남선생님의 밀애를 훔쳐보고, '미제 삐삐선'으로 만든 올무를 놓아 토끼를 잡는 일에 더 열을 올린다.
   
소설 속의 '나'에게 전쟁은 마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가끔 어디론가 끌려갔던 어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거나 수족이 잘린 채 절뚝거리며 돌아와도,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놓은 불에 타 죽은 마을 사람들의 시체가 들것에 실려 돌아와도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토끼를 잡기 위해 올무를 놓은 '나'는 철사를 끊고 도망친 '잿빛 토끼'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다가 이듬해 겨울, 토끼 몰이를 하다가 다시 토끼 한 마리를 잡는다.
   
녹슨 철사를 허리에 조여 매고, 뒷다리 오금에 철사 줄이 살 속 깊이 파고 들어가 있는, 지난 해 겨울에 놓친 잿빛 토끼를 잡은 것.
   
"가슴이 아리다. 오금이 저리다. 한 마리 토끼가 세 번 죽는 사이 나는 가만히 집을 빠져 나왔다. 여기저기 흩어 놓은 미제 철사, 일곱 개의 토끼 덫을 걷어치웠다. 이제 내게 남은 건 피 묻은 철사와 작은 흰 뼈 하나."('토끼의 눈' 중)
   
'어디서 누구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싸우다 죽어서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오는지' 아이들은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아이들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전쟁의 섬뜩한 기운이 감돈다.
   
살 속 깊히 철사 조각을 품은 채 살려고 바둥거리다 죽음을 맞는 토끼에게서 징병을 피하려고 굶다가 진간장 두 사발을 먹고 죽은 당숙, 부리던 머슴에게 끌려가 까맣게 그을은 시체로 돌아온 방앗간집 정례 아버지의 모습이 비친다. '잿빛 토끼'처럼 그들도 모두 살고 싶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112쪽. 7천500원.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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