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르헤스'로 평가받는 포스트모던 소설의 선구자 도널드 바셀미(1931-1989)의 장편소설 `백설공주'(책세상)가 국내에 처음 번역돼 나왔다.
   
바샐미가 1967년 발표한 이 소설은 고전동화 `백설공주'를 패러디했다. 고전동화속의 남성중심주의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고쳐 쓴 작품으로 소비자본주의와 대중문화의 홍수에 떼밀려 가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현대판 백설공주는 1960년대 미국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한 아파트에서 일곱 명의 키가 작은 난쟁이와 동거하고 있다. 그녀는 동화와 마찬가지로  흑단같은 머리칼에 눈처럼 흰 피부를 지녔지만 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지식인이다.
   
백설공주는 아름답고 지적이지만 힘든 집안일에 불평하고 난쟁이들과의  성생활에도 싫증을 내며 지루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면서 그녀는 권태로운 일상과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반면 빌딩을 청소하고 유아용 식품을 만들어 팔면서 가끔 사창가를  찾는  일곱 난쟁이는 야망과 로맨스를 잃어버린 현대 남성들의 초상이다. 백설공주가 자신의  `왕자님'이라고 믿었던 폴은 그럴 만한 의지와 배짱을 갖지 못한 미국 사회의 취약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또 공주를 강렬히 열망하던 호고는 백인 주류사회로 진입을  꿈꾸는 유색인종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 역시 죽은 빌의 빈자리를 채울 또 한 명의 난쟁이에 불과하다.
   
이처럼 `백설공주'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도덕의식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도덕과 낭만적 사랑의 결여 속에서 백설공주는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을 표상한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단편적인 일화들을 시작도 끝도 없이 파편적으로  연결하는 콜라주 기법을 도입하는 등 전통적 글쓰기를 해체했다. 나아가  소설속  백설공주의 불만을 통해 1970년대 페미니즘의 등장을 예고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본주의의 병폐, 정부의 무능,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 등을 비판하고 풍자했다. 김상률 옮김. 248쪽. 5천900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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