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화장이라도 해서 가족들에게 유골이라도 돌려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우리 같은 노숙인이 죽으면 대학병원 해부용으로 보내진답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고향 목포에서 돈 벌려고 상경해 일용직을 전전하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지 5년째에 접어들었다는 김아무개씨는 "노숙인은 인권도 없느냐?"며 길거리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동료들이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노숙인이 죽으면 대학병원 해부용으로 보내집니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하던 동료 한 명이 지하도 계단에서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죽었는데, 그 친구의 시신이 모 대학 부속병원에 해부용으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연고자 찾기가 쉽지 않다 하더라도, 가족 동의조차 구하지 않고 시신을 해부용으로 쓴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개죽음도 그런 개죽음이 따로 없죠."

옆에서 김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아무개씨가 말을 거든다. "굶어 죽는 사람,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 등 벌써 내가 아는 사람만 열댓 명이 죽어 나갔습니다. 서울역 지하도에 사람이 죽어 누워 있어도 지나가는 시민들은 잘 몰라요. 그들 눈에는 우리가 그저 '거지'로나 보일테니…. 하물며 노숙인 단속한다며 철도공무원들이 휘두른 폭행에 사망한 사람도 있습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한 21일, 서울역 광장. 이날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가 동짓날을 맞아 길거리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노숙인들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열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행사를 주최한 노실사의 자체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년 400여명의 노숙인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문헌준 노실사 실장은 "병원 문턱 한번 가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노숙인이 지난 4년 동안 1,600명에 이른다"며 "노숙인들의 신원 파악이 힘들다는 것을 고려할 때, 파악된 숫자보다 더 많은 노숙인들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노숙인 정책 시급하다"

추모행사가 한창인 서울역 광장에 2동의 천막이 쳐지고, 한 쪽에서 '동지팥죽 나눠먹기' 행사가, 다른 한 쪽에선 주민등록 말소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숙인들을 위해 주민등록 복원과 국민기초생활보장에 따른 기초생활수급권에 대한 상담이 진행됐다.

팥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천막 밖으로 나오다가 기자와 눈이 마주친 박아무개씨. 52년생 거제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씨는 "고향 떠나와 공장 다닐 때만해도 살만 했는데, 이제는 가족들과도 연락이 다 끊기고 매일매일 술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고 말문을 연다.

"노숙생활한 지 5년이 넘었어요. 새벽마다 인력시장에도 나가보지만, 못 배우고 기술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일자리를 줄 수가 없다네요."

이어지는 박씨의 하소연. "복지시설이니, 쉼터니 하는 곳에 왜 안 가봤겠어요? 몇 번이고 들어갔다가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 그냥 나왔습니다. 나는 아직 아픈데도 없고, 뭐든 일할 수 있는 멀쩡한 사람인데 정신이상자나 알콜중독자들과 한 곳에서 생활하자니 너무 힘들었어요."

박씨는 복지시설이 제 기능을 다 하려면 몸이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을 따로 보호해야 하며, 특히 건강한 사람들에게 기술교육 등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노숙인 최아무개씨도 "대부분 노숙인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정부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다"며 "정부는 신원 파악이 되는 노숙인들만이라도 한 달 쪽방 거주비 '20만원'만이라도 지급해주길 바란다"고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문 실장도 "자는 문제만 해결돼도, 길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의 실효성 있는 노숙인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고 정부의 ‘성의있는’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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