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본다. 노동조합은 ‘조합원 이해 대변이라는 갑옷’과 ‘사회정의 추구라는 칼’과 ‘계급투쟁의 학교’라는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 노조는 실리적 노조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수단과 정책에 의해 그렇게 양육되어 왔다. 그래도 더 이상 정부와 자본만을 탓하고 있을 시점은 아니다.

시장의 문제는 유연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의 문제이며,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연대적 수단이나 사회정의의 수단이란 노동운동이 유연화를 어떻게 제어하고 방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비롯한 노동운동 비판론자들은 자신들은 기껏해야 노골적 유연화 주장만을 비껴선 실질적 유연화 추구로 압박하면서 노동운동의 사회정의적 역할 부재만을 탓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건 한국의 노동운동은 사회적 임금, 사회연대를 추구하고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의 의미를 재생시켜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 있다. 그러나 먼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

노동운동 비판에 대하여

요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왕자병 운운하면서 노동운동이 또다른 가진 소수를 경제적으로 대변하는’(박승옥)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든지, 대통령이 체면 불구하고 앞서서 ‘(자신이 동조했던) 생존권적 노동투쟁은 정당했지만, 지금은 집단이기주의’라면서 정규직 대기업 중심 노동운동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적극 반대하는 비정규입법은 왜 그렇게 강력하게 추진하려 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한국 노동운동이 당면한 과제에 비해 고립적이고 제한적인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부정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한국 노동운동에 가하는 비판이 노동운동 일반의 정당성을 침식하는 논리로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한때 노동운동을 지원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생존권적 투쟁의 노동운동은 정당하고 생존권을 면한 사람의 노동운동은 부도덕한 짓인가?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와 자본은 생존권을 넘어서 사회적 발언력을 강화하려는 제도적 수단과 통로를 마련할 의향이 과연 있는가?

대타협론의 허구성

노골적인 노동운동 비판론 못지 않게 노동운동을 현혹하는 또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는 노사정 대타협론이다. 그러나 대타협론자들이 간과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대타협론이 일방적인 노사협조주의, 협력적 노사관계 주장과 구별되려면 분명한 정치적 교환의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한마디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노사 대타협구도와 비견될 만하고 한국 노사관계의 구조변화를 꾀할 만한 카드를 과연 제시하면서 대타협을 언급하는지 의문이다. 최근 일부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외국자본규제와 국민경제의 자생권을 위해 노사평화를 추구하는 대타협론이 제기될 움직임이 있다. 과연 일방적 노사협력주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노동권 활용을 제한하면서 얻을 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대타협론자들의 대다수는 현 정부와의 포괄적 또는 제한적 개혁연대에 골몰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 사회노동정책으로 제시할 카드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말은 그럴 듯하게 유연안정성 논리를 갖다대지만 비정규직 확산과 형식상의 보호조처를 덧붙인 비정규법안을 제출해 놓고 있다. 복지제도의 기반확대를 위한 어떤 정책도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돈 안들이고 생색내는 시장친화적 복지제도만 거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나마 분배중심의 서민지향적 정책이라고는 실패한 사교육비 대책, 주택가격 인상 억제 정책과 그 결정판이지만 난관에 봉착한 수도 이전 정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셋째, 밀린 숙제와 닥친 숙제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왜곡된 현대사로 남아 있는 민주개혁의 과제들과 신자유주의 유연화로 날로 흉포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응하는 반시장의 과제들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민주개혁의 과제를 반시장에 앞선 선차적 과제로 보든가, 전자의 과제로만 한정하는 자유주의 경향성마저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노무현정부와의 연대 가능성에 우선 순위를 부여할 때 이 경향은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를 배제하는 태도로까지 이어진다.

반시장을 기치로

노동운동이 왜곡된 비판에 맞서는 길은 노동운동의의 잣대로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투쟁, 아이디어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선 노동운동의 독자적 기획의 정당성을 주장해야 한다. 바로 반시장 논리의 사회적 정당성과 타당성이다. 사회공공성과 사회연대적 조합주의,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의 재생과 같은, 시장과 계급의 간격을 메워주는 사회를 향한 길찾기가 현 상태에서 노동운동이 생각해볼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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