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1일 종전을 선언했지만 이라크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영 연합군에 의한 야만스런 공격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으며, 이라크인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 8일 밤 연세대 백양관 강당.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민중재판) 4차 심리의 증인으로 나선 이라크인 하이셈(Haythem K Ali)씨가 담담한 어조로 이라크 현지 상황을 진술하자 방청석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상상조차 힘든 이라크의 끔찍한 나날들”

지난 7일부터 진행된 민중재판은 3,413명의 일반시민이 민중재판 설립을 위해 기소인으로 참여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날, 첫 재판에서 3천여명의 기소인을 대표에 법정에 참여한 기소대리인들은 “전쟁을 통해 세계평화를 저해하고 무고한 이라크 민중을 학살한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 총리, 그리고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배심원들을 향해 호소했다.

둘째 날 재판. 이날 재판은 전 날과 마찬가지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 등 피고인 전원이 불참한 채 진행됐다. 이날 심리 주제는 ‘전쟁과 점령으로 야기된 이라크인의 고통’. 한국 국민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한국을 찾은 하이셈씨, 이라크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평화운동가 이동화씨 등의 생생한 이라크 현지 증언이 이어졌다.

현직 의사이자, 전쟁 이후 의료지원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는 하이셈씨는 “이라크에서는 여러분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며 증언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병원들은 폭격으로 무너져 기본적인 의료행위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요. 알콜 소독약 등 기초적인 의약품조차 전쟁물자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군이 반입을 금지해 버려 기본 치료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라크인들은 부지기수이고요.”

하이셈씨는 또 “상하수도 시설이 파괴돼 하수도와 상수도가 뒤섞여 흘러 이라크 전역에 악취가 진동하며,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설사병 등이 만연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후 먹을거리가 부족해 영양실조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 비위생적인 환경과 치료기관 부재까지 더해져 이라크인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이툰부대 이라크인에 도움 안 돼”

하이셈씨의 증언에 변호인단이 “한국의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현지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군의 파병은 정당하다”고 맞서자, 하이셈씨는 “자이툰 부대가 파견해 있는 북부 쿠르드 지역은 사실상 이라크라고 보기 어렵다. 쿠르드 지역은 이라크 현지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며, 이라크 내에서도 가장 안전한 지역이다.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라크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평화활동가 이동화씨도 “이라크인들은 한국군에 대해 당연히 반대하며 적대심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쟁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해 ‘월드컵의 나라’, ‘삼성·엘지 등 고급 전자제품의 나라’, ‘이라크에 고속도로를 깔아준 나라’라며 선호했던 데 반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분노하고 한국군 파병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인들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은 미국의 절친한 친구’라는 인식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은 “전쟁은 이라크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는 기소인단과 “전쟁에서 일정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변호인단의 팽팽한 법정공방이 밤 11시까지 계속됐다.

한편 9일 세 번째 재판에는 지난해 이라크에서 총에 맞아 숨진 오무전기 노동자의 가족이 증인으로 나와 ‘이라크 파병과 국민의 생명권 위협’을 다룬 심리가 열린다. 민중재판의 결심과 선고재판은 오는 11일 오후 3시 연세대 해방관으로 법정을 옮겨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 민중들은 이라크전과 그 주도세력 부시, 블레어, 노무현에 어떤 심판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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