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세밑 격심한 회오리가 예상되던 노사 노정관계가 조용히 마무리돼 가는 듯 하다. 철도노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안을 놓고 협상을 벌인 결과 합의를 도출해 내자 노조가 파업을 접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타워 고공농성을 풀었다.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되던 비정규직 법안도 여당이 상정을 보류함으로써 일단은 숨을 돌린 듯하다.
 
한해를 통털어 보면 노사관계 변화 발전의 가능성도 나타내 보였다.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금융노조가 산업별 교섭을 성사·발전시키고 정부도 직권중재를 자제하려 노력하는 등 전례없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엘지칼텍스, 서울지하철, 공무원노조의 생채기는 너무 깊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엄한 징계의 칼날 위에 서 있고 조직은 큰 타격을 입었다.

자본, 언론, 정부의 질책은 엄중하기 그지없다. 외국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에 이어 <매일경제> 같은 보수언론들은 벌써 마녀재판을 시작했다. 보수언론은 철도 노사타협으로 마무리한 올 노사관계를 ‘최악’이라고 주저없이 단정한다.

노동의 자제를 어렵게 하는 것들

노동운동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잔뜩 날이 서 있다. 노동을 굴복시켜야만 한다는 자본의 요구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보도가 갖추어야 할 나름대로의 근거와 논리가 설 땅은 좁다. 맹목적으로 몰아붙이면 되는 것이고 이 경우 정부와 노동의 갈등은 좋은 기회로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대통령이 “노동계와 선을 긋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던진 말을 최대한 이용하여 노동쪽을 매도하였다. 여기에는 어떻게든 노정관계를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노동문제를 풀기 위한 합리적 선택마저도 외면하거나 간과해버린다. 대표적인 예가 일자리창출과 관련한 대안이다.
 
일부에서 교대근무제 혁신을 통해 일자리도 늘리고 생산성도 올리는 일이 관심을 끌고 있지만 보수언론은 아예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오로지 노동자가 자제해야 하고 대기업 강성노조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 나라경제는 거덜날 수 밖에 없다고 몰아간다. 그들에게는 비정규직의 확산과 정규직 일자리의 위협도 그리고 노동의 양극화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의 해체만이 해법이다.

마구잡이로 몰아붙이다 보니 논리적 비약도 드러낸다. 정규직 노조의 욕심을 비난하면서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보호 요구도 비난하는 모순이 그 예이다. 노조가 올 임단투에서 최대의 공통된 주요 요구로 비정규직 보호를 내세운 것을 두고도 저들은 잘못이라고 나무랐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동의 질이 아니라 비용만으로 노사관계를 재단하는 자본의 관점은 철저히 은폐한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발전에 애를 태우는 내부 논쟁을 최대한 키워 노동운동이 안팎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로 둔갑시켜 버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노동의 일방적인 양보와 자제를 강요할 뿐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주위에는 삶의 조건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이 널려 있다. 물가만 해도 그렇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각종 세금인상에다 생활물가 상승으로 노동자 서민가계는 암울하기만 하다. 식료품값은 1년 사이 6.6%나 올랐고 고등학교 수업료, 담배값, 전기요금, 시내버스 택시요금에다 쓰레기 봉투값까지 들먹이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경기침체로 인해 모자란 세금수입을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메우려는 통에 올해 근로소득세 징수액은 무려 15.1%나 급증할 것이라 한다.
 
가구당 빚이 9월말 현재 3천만원 가까이로 늘어나고 빈곤층이 전체인구의 10%인 5백만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노동자가 생활상의 요구를 억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내년 임단투 요구를 자극할 것임에 틀림없다. 20대80의 사회가 극명하게 현실화된데다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사회복지 실태 앞에서 노동자들이 자제할 수 있는 여지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의 우려를 자극하는 일은 이 밖에도 많다. 정부는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정규직노동법의 제 개정을 추진하려 한데 이어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노동의 유연화를 더욱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노동관계법상의 몇몇 악법조항이 수많은 노동자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음에도 법치의 논리는 여전히 위력을 과시한다. 행정관료의 오만함도 노동자의 울분을 부추긴다.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의 절박한 단식농성을 ‘다이어트’로 비유한 행자부장관의 행태를 단순한 실언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천영세, 이영순, 현애자 의원에 대한 경찰의 횡포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거니와 제3당인 민주노동당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국회의 횡포는 노동자계급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로 가는 길

정부와 자본쪽은 노동운동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요구한다. 노동운동도 굳이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상황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급격한 자본의 해외진출, 일자리 창출의 긴박성과 실천의 어려움, 노동의 양극화와 사회적 빈곤의 확대 등등 노동쪽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승복할 것을 전제로 하는 한 그 실현은 불가능하다. 곧 노동의 자제와 희생만이 우리 사회를 살리는 길이라는 시각을 고집하는 한 대화와 타협은 어려울 것이고 정부, 자본쪽이 노동을 배제나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참여의 주체임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가능성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어울려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장래가 보장되는 사회, 어쩔수 없는 불행에 대비해줄 수 있는 사회, 차별과 빈곤이 없는 사회로의 전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대화와 타협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현정부가 출범때 공언했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모습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