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 네트워크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이 네트워크 속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정보이며, 그 다음이 돈이고 물건과 서비스와 공장들이다. 정보와 돈과 물건과 서비스와 공장들을 수시로 갈아 내우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네트워크의 중추 신경은 ‘글로벌 기업’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시간과 공간은 글로벌 기업들이 열어가는 네트워크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가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속의 노동

더욱 놀라운 것은 네트워크의 이동 속도이다. 정보와, 돈, 물건, 서비스, 공장,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이제 움직이지 않는 것은 국민국가라는 정치적 공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적 생산 공장과 설비를 건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3년 정도면 충분하다. 이들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중소기업의 공장과 설비를 이전하는 데에는 1년이면 족하며, 금융기관들이 사무실을 이동하는 데에는 1개월로 모든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가장 이동 속도가 느린 것은 사람이다. 이른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적 자원의 풀로부터 떨어진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이동 속도는 늦어진다. 바로 이 속도의 차이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주도하는 기업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자와 정보, 자금과 공장은 수시로 이전 가능하지만, 노동력은 같은 속도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의 지역간 격차가 발생한다. 이러한 격차는 자본간 경쟁을 노동간 경쟁으로 전환시키는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 시장과 노동시장을 찾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존엄성과 고용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손쉽게 국경을 사이에 둔 노동자들 간의 피를 말리는 경쟁으로 탈바꿈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노동-자본 ‘불균형’의 표본

오늘날의 동북아시아 지역은 이동하기 힘든 노동력과 이동이 자유로운 자본의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고용과 삶의 위기를 보여주는 표본실이다. 버블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일본에서는 지난 10여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기업들이 일본을 떠났으며, 이제 그 바톤을 한국이 이어받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수교와 경제교류가 시작된 이후 진행된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큰 탄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동북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경제 구조의 엄청난 변화는 이 지역의 노동자들 모두에게 전례 없는 도전이 되고 있다.

동북아 지역의 급속한 경제 통합으로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고용 위기와 오늘날 중국 의 노동현장에서 자행되는 저임금과 노동착취의 현실은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동일한 현상의 서로 다른 표현형들이다. 동북아 경제의 새로운 재편성은 한국사회의 고용문제, 노사관계, 경제 체제를 조만간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로 전환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새로운 경제와 고용 환경에 대한 노동의 대응이다.

연대의 시야 넓혀야 할 때

동북아 지역에서 노동이 처한 위기를 감안할 때 ‘동북아 노동 연대’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로 볼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지역에 고정되어 그들만의 시각에 머물러 있는 노동 조직들이 최소한 동북아 지역에서 새로운 유대 관계를 확장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노동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지역의 노동자들은 끝없는 상호 경쟁의 기제로부터 헤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을 둘러 싼 동북아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 혁명적인 변화가 전개됐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이처럼 빨리 될 것으로 전망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공장들은 한 해에 수 백 개씩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경제 지리 구조 변화에 대한 노동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
 
동북아 지역의 노동자들이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는 최악의 경쟁체제에 끌려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확장된 사회적 연대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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