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12월1일자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가 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안) 통과돼서는 안 될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와 관련, 노동부에서 퇴직연금 도입과 4인 이하 사업장 적용확대 등 법안 취지와 그 내용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현행 퇴직금제도가 도입된 지 40여년이 흘렀는데 혜택을 받는 근로자는 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노동시장과 사회여건의 급변으로 사용자에게는 부담이고, 적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도가 돼 버렸다. 안정된 직장에서 높은 임금인상률을 누리고 있는 근로자는 현행 퇴직금제가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근로자들이 상시적인 체불위험에 놓여 있고, 평균수명 80세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퇴직 후 생계대책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국가적으로도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선진국형 3층 노후보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왜 퇴직연금을 도입하려는가?

퇴직연금은 바로 이러한 고령화의 위험에 대비하고 취약한 근로자들에게 각자의 선호와 여건에 맞는 연금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자는 것이다. 이제는 노사 모두를 위해서 3년 반에 걸친 논의를 마무리할 때이다.

노동계 등에서는 증시부양대책으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퇴직연금은 그 구조상 정부가 인위적으로 적립금을 동원해 증시에 투입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공공기금과 달리 퇴직연금 적립금은 노사가 퇴직연금의 형태에 따라 각각 운용을 결정·지시하므로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

또한, 확정기여형의 경우 근로자가 주식투자를 원할 때 경우에도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제한하고 수익증권 등을 통한 간접적인 적립금의 운용방법만 허용할 계획이며, 이러한 간접적인 주식투자도 퇴직연금 재원이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최소 한도로 제한할 방침이다. 또한 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상품 중에 원리금보장 상품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함으로써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적립금의 안정적인 증식 및 관리가 가능한 구조로 돼 있다.

기금 설계·운용에 근로자의 참여, 참여 당사자들의 상호견제장치 마련

오랜 역사를 통해 기업연금제도가 형성, 발전돼 온 영국 및 미국 등은 신탁제도가 발달된 나라로서 기업연금제도(퇴직연금제도)도 신탁구조에 근간하여 운영되고 있다. 신탁구조는 제도의 운영과 관련되는 당사자 상호간의 기능과 역할의 적절한 분리를 통한 효율적인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이 본질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도입을 추진중인 퇴직연금의 형태는 현행 금융인프라를 활용하는 계약형이므로 기금형을 전제로 하고 있는 영미와 같이 신탁제도에 기초해 설계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신탁제도에 근간해 새로운 개념인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결과가 되므로 효율적이고 원활한 제도 도입 및 정착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신탁구조의 정신을 살리면서도 제도도입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해당사자인 근로자가 제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법안을 설계했다. 비교적 최근에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한 일본도 현행 법안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다.

먼저, 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개별 사업장의 퇴직연금제도의 설계서에 해당하는 '퇴직연금규약'의 작성·변경시 근로자대표(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그 노조, 없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해 퇴직연금제도의 설계 및 운영에서 근로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법안 제11조 및 제12조).

그리고, 퇴직연금제도를 실제로 영위하는 퇴직연금사업자의 기능과 역할이 분리돼 있다. 연금자산의 보관은 당해 사업장 및 금융기관의 파산 등의 위험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도록 별도의 자산관리기관에 위탁하도록 했고(제15조), 자산의 운용과 관련된 업무는 자산운용기관에서 담당하도록 했으며(제14조), 각 당사자들간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제18조, 제19조).

근로조건 열악한 근로자 보호 위해서도 반드시 퇴직연금 도입돼야

현행 퇴직금제도는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돼 전체 임금근로자의 절반도 안 되고, 적용대상인 경우에도 기업이 도산하면 일자리도 잃고 퇴직금도 떼이는 사례가 많아 퇴직금 체불발생액이 2001년 3,000억원, 2003년 1,7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2008년에서 2010년 사이에 적용토록 했으며, 퇴직연금 지급 재원을 사외에 적립토록 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안정된 직장에서 매년 임금인상폭이 큰 사업장에 소속된 근로자들에게는 굳이 퇴직연금제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영세사업장에 일하는 근로자들, 매년 퇴직금을 중간정산해야 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는 근로자 등 열악한 위치에 있는 근로자들에게는 퇴직연금제도가 꼭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안)은 조속히 처리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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