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고 해도 노무현 정권은 다를 줄 알았다. 미국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고, 보수언론 눈치보지 않고 재벌과 타협하지 않고 바로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정치인 노무현은 민주노조운동이 혹독한 탄압에 시달릴 때 손을 잡아준 몇 안 되는 진솔한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있음을 자랑스러워했고, 정치적 타산도 못하고 소신을 펼치는 그였기에 ‘바보 노무현’은 노동자들이 쉽게 내칠 수 없는 친근감과 신뢰의 표상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정권 5년을 치르며 “비판적 지지는 없다”고 거듭 다짐했던 민주노총-민주노동당 노동자들도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을 선택했건 권영길을 선택했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노무현의 당선에 안도했었다.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 현상에 맞서 각종 사회적 차별을 타개할 것을 천명했을 때, 특히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그 진의를 의심한 노동자가 있었을까?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달랐다. 자주국방이란 이름 아래 미국 무기를 사들이고 미국에 떠밀려 사대·극우 야당과 야합하여 이라크 파병을 관철시키고, 재벌과 보수언론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민주노조운동을 주적으로 규정하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이는 대통령, 그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뒤이은 경제위기 속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극도로 악화됐고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현재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놀라운 것은 하위소득계층 60%가 소득감축을 경험했던 경제위기 와중에도 최상위소득계층 20%는 도리어 10%가 넘는 큰 폭의 소득증대 혜택을 누렸다는 사실이다.
 
불평등 심화는 경제위기 자체보다 경제위기를 비집고 들어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해 주는 대목이다. 이는 대처의 영국과 까르도주의 브라질 등 선진자본주의와 제3세계 가릴 것 없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한 나라들에서는 예외 없이 관찰되는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지속되는 한 불평등 현상은 시정될 수 없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로 하위소득계층 60%의 삶은 더욱 고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의 증대를 막기는커녕 인수위 시절 공언했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도 포기하고 파견근로를 전 직종으로 확대하고 파견기간도 3년으로 확장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개악법안을 국회 환노위에 제출했다. 정부 법안이 통과된다면 비정규직 중심의 신규채용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확산돼 이미 전체 피고용자의 6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비중은 더욱 증대될 것이 자명하다.
 
결국 하위소득계층 60%의 중상위에 분포하는 정규 노동자들의 소득수준 하락으로 최상위소득계층 20%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나는 항공선은 북새통을 이루겠지만, 소비위축으로 동네 슈퍼와 재래시장은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만큼 더욱 황량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의 핵심이며 정규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비책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정규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김대중-노무현 정권 경제정책의 실패를 덮으려는 악의적 이데올로기 조작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민주노총을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이라 비난하며 비정규 노동자들의 구세주 시늉을 하던 정부가 비정규 노동자들도 반대하는 비정규직 개악법안을 막무가내로 추진하는 것은 한 편의 저질 코미디다.

지금, 노무현 정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규직중심(?) 민주노총이 정부-자본과 적당히 담합하여 비정규직 개악법안 몇 구절 자구수정하여 통과시키는 것인가?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동자 분열,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것,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방식인가? 지역주의에 서식하는 갈라먹기-갈라치기는 정치권의 생존방식이다. 하지만 정규직-비정규직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정권의 분할지배 전략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그들만의 노동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존재의의는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에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래 끊임없이 각종 억압과 제약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의를 확인하고 지켜왔다. 민주노조운동은 초국적 투기자본과 재벌과 보수언론과 어용노조가 함께하는 ‘당신들의 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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