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간에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논란을 보고 있으면 노동자 파견법 제정이 처음 얘기되기 시작하던 90년대 중반의 일이 떠오릅니다.
 
그 무렵 열렸던 노동자 파견법 관련 공청회에서 일본의 노동자 파견법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일본 법학자는 “일본은 노동자 파견법을 졸속으로 도입한 뒤 큰 후회를 하고 있다. 한국은 그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당시 졸속으로 도입했다던 노동자 파견법을 무려 15년 동안이나 논의해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동자 파견법 도입이 이야기되기 시작한 지 단 3년 만에 “선진국에도 다 있는 좋은 제도”라면서 서둘러 법을 제정했습니다.
 
당시 저는 한 법률가 단체(‘대한변호사협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가 국회에 제출할 노동자 파견법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는 일에 참여하면서 외국 노동자 파견법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진국들 대부분의 노동자 파견법 제정 취지가 기업의 무분별한 노동자 파견 행위를 규제하거나 파견 노동자들에게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도록 하는 등 파견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고, 유일하게 일본의 노동자 파견법만이 노동자 파견을 확대하고 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불평등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우리나라의 기업과 정부는 일본의 법 체제를 모방해 도입하면서 “선진국에도 다 있는 좋은 제도”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와 유사한 주장이 최근에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고용 증대를 위해 파견 관련 규제를 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파견업종 확대가 마치 당연한 순리인양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세계화 바람이 급격하게 불던 90년대에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를 확대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2천년대에 들어선 뒤에는 그것이 국가 경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질병·출산·휴가 등 결원이 생겼을 때에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미국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들이 대부분 대형화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과 사회복지 혜택이 거의 동등하고, 독일에서는 건설업종을 제외한 전 업종에 노동자 파견이 가능하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지라도 특별한 불이익 없다는 점 역시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경영자들은 비정규 문제 해결의 책임을 대기업 강성 노조에 돌리고 있고, 정부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가 지나치게 강성이어서 부당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경영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는 언론의 보도를 통해 한국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투쟁적이고 과격한 줄 알았는데 와서 직접 겪어보니 사실은 그렇지 않고 상당히 합리적이었다”고 거듭 이야기하는 사실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태의 공통점은 기업의 단기적 이익이나 경영자의 사욕, 또는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인 사람들에게만 유익할 뿐, 국가 경체 전체의 이익에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의 경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연초에 한국 정부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연례정책협의를 가진 뒤 발표한 ‘한국경제 주요 현안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과도하게 비정규직화하고 있는 위험을 경고한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가장 보수적 경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 국제금융자본이 어째서 한국 정부에게 그런 요구를 한 것일까요?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국제금융자본이 한국 정부에게 외화를 빌려주는 전제 조건으로 재벌개혁을 요구한 것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한국 땅에 들어오면 진보세력이 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와 같은 일은 한마디로 그동안 한국의 경제 운용이나 자본의 행태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본증식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금융자본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가 걱정돼 그 같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요구를 할 리는 없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라고 요구한 것은 우리나라 노동자의 비정규직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사회불안이 급증하고 그것이 경제 발전에 저해요소가 되어, 자칫 자신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30개 회원국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2년에 이뤄진 신규 고용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이중구조의 한국 노동시장은 2003년 한국 경제를 저해했고, 향후 발전도 제약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시대 흐름 못 따라잡는 경영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산하 4천개 사업장에 배포한 ‘2004년도 단체협약 체결 지침’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줄이기 위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경총은 이 지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거나,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에게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라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경총의 이같은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2001년에 3천여개 사업장에 배포한 ‘2001년 단체협약 체결 지침’에도 거의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기간 및 채용에 관한 문제는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특수업무종사자나 파견노동자의 단체교섭 요구에는 응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 등입니다.
 
이러한 지침의 내용은 한마디로 경총의 기업가 정신이 몇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경영인들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금보다 더욱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 경총의 지침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원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도 해롭습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데에 기여할 뿐입니다. 기업의 이익이 곧 나라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비정규 노동자 늘리는 정부의 배짱
 
방송에 출연할 일이 있어 한 방송사에 갔을 때, 촬영장에서 조명기구를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혹시 정규직이세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계약직만 돼도 좋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용역회사에서 방송국에 파견된 노동자였던 것입니다. 계약직이라도 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파견 노동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그 짧은 대답으로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마련한 노동자 파견법 등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내용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동안 26개 업종에서만 파견 노동자 사용이 가능하도록 규정했던 것을 거의 전 업종으로 확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불법파견, 편법파견 등의 형태로 파견 노동자들이 거의 전 업종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말하는 제조업체 ‘사내하청’은 거의 대부분 불법파견입니다. 그러니까 정부로서는 파견 가능 업종을 확대해도 이미 만연하고 있는 불법파견을 양성화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실제로는 파견 노동자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앞으로 기업에서는 새로 뽑는 직원들을 거의 대부분 파견 노동자로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파견 노동자로 전환될 것입니다. 인건비를 절감하고 노동법상의 각종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기업들이 마다할 리가 없습니다.
 
흔히 ‘용역회사’라고 부르는 노동자 파견업체들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연줄이 닿는 기업이 있으면 그 기업에 인력을 파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 파견 노동자를 보내주고 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에서 매달 일정한 액수를 챙길 수 있으니 너도나도 그 일에 뛰어들 것이 분명합니다. 책상 하나만 놓고 앉아서 남의 노력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버는 방법이 뻔히 보이는데 사람들이 그 일을 마다할 리가 없습니다. 정부의 법안이 통과되면 우리는 앞으로 길거리에서 ‘○○인력’ ‘□□개발’ ‘△△용역’ 따위의 간판을 수도 없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의 기본 원칙은 어디까지나 ‘직접 고용’ 그리고 ‘정규직’입니다. “중간착취 배재” “차별적 처우 금지”에 관한 조항들이 바로 그 원칙들을 담고 있습니다. 노동자 파견법이 제정될 당시에도 근로기준법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노동자파견법은 처음 출발할 때부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라는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파견 기간이 2년이다 또는 3년이다, 파견 기간이 끝나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법에 규정된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정부로서는 비정규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이 정치적으로 결코 불리한 일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화살을 기업이나 정부에 돌리기보다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사 규명과 친일 잔재 청산이 필요하다”는 글을 썼더니 그 글에 대해 “노동문제연구소장이라는 놈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킬 생각은 않고 한가하게 역사나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비난이 지금 사람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아무리 많아져도 기업과 정부로서는 더 이상 비난 받을 일이 없습니다. 비정규 노동자가 많아질수록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더욱 고립될 뿐이니, 정부로서는 정치적으로 손해를 볼 일이 전혀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비정규 노동자를 양산할 것이 분명한 법안 내용에 반대하는 노동자들과 사회 불평등구조가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파견 노동자를 전 업종에 확대하려고 하는 정부와 기업 중에서 어느 쪽의 주장이 과연 우리 사회 전체의 장기적 발전에 유익할까요? 눈앞의 이익 때문에 나라의 백년대계를 거스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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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행복한가
 
최근 우리 사회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은 정부의 ‘대기업 노동자 기득권’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나라 사람 치고 “대기업 노동자들이 지나친 고임금을 받고 있으며, 고임금이 한국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동자들이 자기 이익만 주장하기 때문에 경영자들이 기업을 중국 등 다른 나라로 옮기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 안타깝고 딱한 일입니다.
 
지탄의 대상이 됐던 바로 그 대기업 노동자가 결혼 10년 만에 아파트를 한 칸 마련했다고 저를 집들이에 초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차를 한 잔 마시는 시간에 그 대기업 노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년 전 신혼에는 출근할 때 안해가 따라나와 “여보, 일찍 들어와” 그렇게 인사했는데, 요즘은 일찍 집에 들어왔다가는 안해의 눈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좀 일찍 퇴근해 들어왔더니 그의 안해가 “집안에 뭐 꿀 항아리라도 감춰놓은 거 있어? 왜 잔업도 하지 않고 벌써 들어와? 해도 떨어지기 전에…”라고 반농담으로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노동자의 임금은 10년 동안 산술적으로 따지면 몇 배가 인상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0년 전에는 “일찍 들어오라”고 인사하던 안해에게 요즘은 어쩌다 일찍 집에 들어오면 눈총을 받는데, 그가 더 인간답게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의 안해 역시 남편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그렇게 말한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남편이 정상적으로 퇴근하면서 받는 임금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임금이 인상돼도 우리 사회 노동자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는 이 기묘한 현상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몇 년 전 대우경제연구소가 ‘한국경제연구’라는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을 때, 한 중앙일간지는 사회면이나 경제면이 아닌 1면 톱기사의 제목을 “소득 늘었으나 빈부격차 더 심해져”라고 뽑은 적이 있습니다. 비밀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노동자들이 열심히 노동조합 활동을 해서 임금을 인상시켜도 갈수록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비슷한 내용을 한 재벌 부설 경제연구원에서도 발표했습니다. 우리 사회 각종 양극화현상이 경기회복이나 경제성장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 소득격차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올해처럼 수출이 잘 된 해도 없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수출액과 경상수지흑자가 매달 경신됐을 정도로 수출이 늘었는데,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직장인은 거의 없습니다. 대기업 관리직이나 임원이라고 해도 이 기형적 구조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사회 불평등구조가 심화되는 이 현상을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유익하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물론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빠른 속도로 인상돼 그 차별이 철폐돼야 합니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서 비정규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경제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대기업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비정규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차별을 철폐해야만 합니다.
 
노동자 임금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성장잠재력 변동요인 분석’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 분석에 따르면, 소비의 성장기여율이 88년부터 97년까지 64%였다가 98년부터 2002년까지는 66%로 높아졌습니다. 소비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진다는 뜻입니다.
 
부가가치 유발계수란 지표도 있습니다. 부가가치란 일정기간 동안의 생산·유통 등의 활동 즉, 산업활동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가치를 말합니다. 부가가치가 높을수록 적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으로도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00년을 기준으로, ‘소비’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79입니다. ‘투자’의 유발계수는 0.65이고, ‘수출’의 유발계수는 0.63입니다.
 
이 수치들의 의미는,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수출이나 투자보다 소비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 하는 것이 기업이 얼마나 많이 수출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금융경제연구원장도 이 복잡한 통계들의 의미를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소비가 회복되지 않으면 균형 잡힌 경제성장이 이뤄질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출이 급신장되고 있지만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소비가 같이 늘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국민들이 쓸 돈이 없으면 우리 경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부유층의 소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건전한 소비는 국민 전체에서 골고루 나와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수백조원의 카드빚을 내줘 소비를 창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처방일 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소득 양극화가 성장 잠재력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집니다. 경제발전 초기단계에서는 소득 양극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소득층은 추가 소득을 소비하지 않고 저축으로 돌리는 경향(한계저축성향)이 강해, 고소득층에 자본이 집중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성장동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발전 성숙단계에서는 인적 자본의 축적과 기술혁신이 성장동력이 되기 때문에 소득 양극화가 인적 자본 투자를 저해하고 기술혁신의 여건을 악화시키는 등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쉬운 산수를 해 보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국민 대부분이 직장인이거나 그 가족으로 구성돼있습니다. 따라서 소수의 부자가 빨리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직장인들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건전한 소비를 창출하는 가장 올바른 지름길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자들의 봉급이 인상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절대적으로 유익합니다.
 
물론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깁니다.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경영에는 당연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도한 임금인상이 원인이 되어 도산한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부실 경영의 원인은 대부분 다른 곳에 있습니다. 노동자의 적정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나라 기업 경영자들이 시급히 해내야 할 일입니다. 다른 부가가치 생산능력이 전혀 없이 노동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현 단계 우리 경제에 유익한 기업들이 아닙니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가 이념과 사회 체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시도해왔던 경제 발전 모델이 인류에게 남긴 공통의 교훈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지면 그 어떤 놀라운 경제 성장의 성과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제학도 휴머니즘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경제 정책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가 인류 사회에 확립된 것은 단순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돼야 한다”는 고전적 휴머니즘의 차원이 아니라,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평등의식과 정의감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에 가둬 키워져 일체의 학습과 교육의 기회를 차단당한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매일 일정하게 주다가, 몇 마리에게만 더 많은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 나머지 무리 중에서 자신의 먹이를 땅에 패대기치거나 사육사에게 내던지며 불평등에 저항하는 원숭이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변수를 달리하며 거듭 되풀이된 그 실험에서 얻어진 결론은 “평등의식은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진화돼온 본능적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수만년 동안 자연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해온 영장류에게 그러한 본능이 형성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그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 가장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 공동체가 자연과 맞서 싸우면서 생존하는 데에 가장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인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등을 지향하는 도덕률이 사회에 확립된 것은 인류가 오랜 역사 진화 과정 속에서 그 원칙들이 인류 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의 원칙
 
회사의 궂은 일을 10여년째 도맡아 해오면서 한 달에 50만원쯤 월급을 받던 비정규직 아줌마 노동자들이 월급을 5만원만 올려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가 모두 해고 당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아줌마 노동자들은 회사 정문 앞 아스팔트 도로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그 비정규직 아줌마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직원은 그 회사 정규직 노동조합의 간부였습니다. 그 정규직 직원은 가끔 농성천막으로 전화를 해서 “잠시 들어오시지요. 이야기나 좀 나누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그 사람은 노동조합 간부였기 때문에 비정규직 아줌마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전화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조차 상처가 됩니다. 한 아줌마 노동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은 노동조합인데, 자기는 한번도 안 나와요. 매번 우리한테 사무실로 들어오라고만 하지, 이 농성천막에 직접 찾아오지는 않아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이렇게 심각합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권력과 자본에 대한 적대감보다 자신들과 직접 현장에서 부대끼고 있는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완성태에 가까운 인격을 갖췄다는 법도 없으니 실제로 현장에서는 비정규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보이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을 반드시 자신들의 문제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규직도 머지않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영자 단체가 주장하듯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직과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무척 해롭습니다. 그것은 기업의 수출이 줄어드는 것보다 우리 경제에 더욱 해로운 영향을 미칩니다. 경영자 단체가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것이 애국적인 결단인양 주장하지만, 그것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자본과 맞서는 대립 구도에서 자신들이 권리를 스스로 축소하거나 양보하는 것은 반사회적이고 비역사적인 행위입니다. 사회 전체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역사 발전을 후퇴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정규직 노동자들뿐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비정규 노동자들을 끌어안을 방법이 없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권리를 일정부분 양보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나친 고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 철폐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을 자신들의 문제로 끌어안아야 한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 자본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행위는 우리 경제에 유익하지 않다.
 
셋째, 그러나 그 방법 외에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한시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일정부분 양보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에 나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 방법이 왜 꼭 불법파업이어야 하느냐? 하는 지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또 태산이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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