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 300여명이 울산 공장에 모였다. 그동안 현대차가 자신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해 왔던 것이 드러났으니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산, 전주 공장에서 올라온 하청노동자들은 울산 공장 문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몇몇은 실랑이를 벌이다 경비들에게 맞아 얼굴에 멍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집회는 공장 '밖'에서 진행됐다.

불법파견 판정 이후 직접라인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된 캐리어나 금호타이어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불법파견투쟁'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좀 상황이 복잡하다.

우선 규모 자체가 1만명 이상으로 거대해서 정규직 전환 후 현대차의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다. 2000년 현대차노조는 직접생산라인에 16.9%의 사내하청 투입을 ‘허용’하기도 했다. 개별 비용이나 노사관계를 떠나서도 완성차 업계뿐 아니라 제조업에서 현대차가, 노조운동에서 현대차노조가 갖는 위상, 그리고 현재 정부가 파견업종 전면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는 이미 사회적인 쟁점으로 떠올라 있다.

3개 공장 하청노동자들의 집회를 마치고, 현대차비정규직노조(위원장 안기호)는 현대차 불법파견 대응책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비정규직노동자, 현대차 정규직 현장조직 관계자, 울산지역 활동가 등이 참석해 논의를 함께 했다.
 



이제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이날 토론회에서 서쌍용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은 “불법파견 투쟁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공동대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아직 사업계획이 뚜렷하게 마련되지 않아 위력적인 대중투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 비정규직 대중사업을 담당했던 ‘원하청 공투위’개념을 넓혀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현대차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특별위원회(불파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국장은 “이 불파특위는 현대차 전 사내하청업체마다 선출된 ‘업체 노동자대표’들과 정규직 대의원, 소위원 등 적정인원으로 사업부 체계를 구성하고, 현장 조직들도 참여하도록 해 비정규직노조의 조직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까지 교육하고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국장은 “지난 5월 불법파견 진정을 한 뒤 비정규직노조는 선전전, 집회, 항의방문, 교섭요청 등 최선을 다했지만 현대차는 여전히 비정규직노조와의 교섭이나 대화는 회피하고 있다”며 “금속산업연맹과 정규직·비정규직노조가 공동으로 교섭을 요구하고 투쟁해서 현대차를 교섭자리로 끌어내 간접고용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유기 현대차노조 전 사무국장은 “불파특위의 제안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어떤 기구가 됐건 정규직, 비정규직 ‘투쟁의 구심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국장은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따로 나선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그것이 곧 회사가 쳐 놓은 덫”이며 “불법파견 투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체인 정규직노조 지도부, 대의원, 소위원, 활동가들부터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철저한 ‘소명의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현대차를 ‘압박’할 수 있는 전략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국장은 “현대차노조의 일정을 보면 12월 사업부대표 선거, 1월 정기대의원대회, 2월 본격적인 임단협 준비 등이 예정돼 있다”며 “불법파견 투쟁도 이런 일정과 궤를 같이 하면서 공동 교섭요구 방식, 선거에서 공통공약으로 제기하는 방식, 2005년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문제 요구방식 등을 어떻게 할 지 등에 대해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백기홍 현장권력쟁취투쟁위원회 의장은 “5공장에서는 공정 직영화를 이유로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했지만 정규직 활동가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규직노조, 현장 활동가들의 자기 반성을 통해 불법파견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에 나서는 것이 현대차노조의 미래를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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