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여성노동자의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전순옥 박사의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박수정 작가의 <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 그리고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한여노협)에서 8명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70년대 숨겨졌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복원하는 이 과정은 민주노조의 산고를 겪었던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로 한국노동사를 재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2002년 한여노협은 <한국여성노동자운동사 1, 2>를 출간했다. 당시 여성노동사를 쓰면서 만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묻혀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박민나 작가가 그 일을 맡았다.

여성에서, 여성노동자로 태어나기

지난 24일 오전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박민나 작가는 무척이나 굵은 선을 가진 여성이었다. 윤곽이 뚜렷한 그의 얼굴선도 그랬지만 그의 손마디 또한 그랬다.

“83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구로의 (주)로움코리아라는 전자회사에 들어갔어요. 3교대에 노동자들의 복지를 최우선하는 곳이었죠. 들어가자마자 탈춤반을 만들어 회사 동료들과 함께 했어요. 한번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어서 주위 반응도 무척 좋았죠.”

그러나 그의 ‘공장생활’은 1년8개월에 그치고 만다. 구로동맹파업으로 인해 구로지역 학출(학생출신)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수배 당할 때 그 역시 해고된 것. 해고자복직투쟁에 나섰지만 당시 노동운동의 치열한 사상투쟁을 피해 그는 마산으로 내려왔다.

박민나 작가가 여성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했다.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창립멤버로 활동했던 그는 당시 일꾼노동문제연구소와 관계하면서 TC 노동자들, 수미다노조 친구들, 함께 했던 실무자들과 그 남편과 부인들, 남성노동자 회원들, 지역의 활동가들, 자유수출지역의 여성노동자들을 통해 ‘일하는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여중, 여고, 여대를 다니면서 학창시절을 여성들과 함께 보낸 그, 공장 역시 여성노동자들로 가득한 전자회사를 다녔지만 한 번도 여성에 대해, 여성노동자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여노회 활동을 통해서 한발씩 여성노동자들에게 다가선다.

“여노회가 제게 그 일을 주지 않았더라면 전 아마도 여성노동자가 아닌 여성에 대한 글쓰기에 매진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94년부터 한여노협에 만드는 계간지 <일하는 여성>에서 편집진으로 참여, 마산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여성주의, 여성노동자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가 본격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97년부터. <일하는 여성>에 ‘박민나의 삶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여성들과 대화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 일에 열정적이었으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실성으로 어떤 힘든 세월도 거뜬히 이겨내며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삶이 없었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가 2004년 11월, 8명의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에 실린 8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무척이나 사랑스럽습니다. 노동자이기 전에 여성이었던 그들이 다시 여성노동자로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이 땅 여성노동자들의 것이기도 하니까요.”

박민나 작가는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봇물처럼 터져 나왔던 70년대 민주노조의 초석을 닦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조만간 우리는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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