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아이들이 죽어나갔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결코 ‘자살’이 아니었다. ‘한방’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의 죽음은 결국 ‘사회적 타살’이었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그 시절의 음울한 ‘유행어’는 치기도, 감상도 아닌 절박함이었다.
 
1994년이 되자 학력고사가 사라지고 ‘대입수학능력시험’이란 물건이 탄생했다. 새로운 출제 방식, 깊이 있는 문제를 표방하는 이 제도가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구원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지만, 그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어, 외국어, 수리의 영역으로 나뉜 과목은 사실상 ‘국·영·수’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렇게 수능이 시행된 지 10년이 흘렀다. 그러나 ‘죽음의 행렬’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외려 무덤덤하다. ‘또 죽었구나…’ 나지막히 읊조릴 뿐, 아무도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고교등급제’ 파문은 오히려 아이들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잠궜을 뿐이다.
 
이제 어떤 학생들은 나름의 ‘생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들은 압박과 공포 속에 풀리지도 않는 시험지를 붙들고 있느니, 최첨단의 기기를 이용해 이 벽을 뚫기로 작정했다. 최근 벌어진 ‘수능시험 부정행위 사태’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왜곡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배후와 대물림 여부’를 따져묻는 것은 넌센스다. 배후는 이 나라의 왜곡된 교육환경이요, 대물림은 ‘사회적 계급’의 대물림일 뿐이다.  
 
시험부정과 고교등급제로 얼룩진 2004년의 끝자락에 연극 ‘나의 푸른 일기장’(극단 우리동네)은 우리를 찾아온다. 수능 시행 1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연극은 결국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연극은 공교롭게도 모의고사에서 ‘성적조작’을 하다 들켜 어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는 주인공 ‘나영재’의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연극의 전체 줄거리는 간단하다.
 
외동아들 영재는 11월 수능시험이 다가온 어느날 시험과 어머니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못이겨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저승사자’(극중에선 요정으로 통한다)들은 영재의 일기장을 훔쳐보느라 그를 데려갈 타이밍을 놓친다. 다시 깨어난 영재는 요정들의 도움으로 시험을 잘 치르고 말 한마디 않던 어머니와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뒤늦게 이미 자신이 약을 먹고 죽었음을 깨닫는다. 영재는 그가 ‘마녀’라 불렀던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재회하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
 
‘나의 푸른 일기장’은, 제목과 달리 내내 어둡고 불편한 연극이다. 대학입시를 치른 지 오래된 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초반부에 이 연극은 이상스러우리만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시험지를 찢으며 절규하는 소년들. 악랄하고 야비한 선생님.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 날만 되면 밀려오는 복통에 늘 시험을 망치고마는 소심한 공부벌레들. 그리고 자식에게 모든 걸 내건 부모님의 기대….
 
그런데 관객들은 차츰 연극에 몰입할수록 이런 현실이 결코 ‘옛이야기’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들은 어느새 끔찍했던 ‘10대의 기억’을 망각한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진다. 가령 다음과 같은 극중 선생님의 이야기를 우리도 누군가에게 한번쯤 조언하듯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세상이 무너지길 원해? 혁명을 원해? 그렇다면 머릿 속에 지식을 집어넣고 시험에 통과해라. 너희들이 시험에 무사히 통과한 후에는 뭘 하든 상관 안 해. 이건 통과의례야.”
그래서 나의 푸른 일기장은 반복되는 ‘망각의 재생산’을 경고하는 연극이다. 그 시절을 몸서리치듯 힘겹게 통과한 이들이 또다시 죽음의 시스템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내모는 현실을 되짚는 이야기다.
 
자살을 결심한 영재가 거리를 바라보며 “저기 저 아줌마 아저씨들은 얼마나 많은 시험을 봤을까. 다들 합격했으니까 저렇게들 웃고 다니겠지”라고 흐느끼는 장면은 그대로 우리 모두의 뒤안이기도 하다. 시험 시간을 ‘시험지 검투사’와의 대결로 표현한 대목에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연극이 내내 심각한 것만은 아니다. ‘TV과외’ 시간을 종교인들의 부흥회를 빗대 표현한 대목이나, 수능 정답을 맞추는 장면을 정답들끼리의 ‘달리기 경쟁’으로 형상화한 부분은 연극이라는 장르만이 던져주는 재미다. 선생님, TV과외 강사, 시험시간에 등장하는 검투사 등 1인 다역을 소화해낸 이규회씨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병풍처럼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방충망 칠판’과, 마지막 장에서 등장하는 섬뜩한 ‘교복의 장막’ 등 세심한 무대장치도 눈에 띈다.       
 
이번 연극을 연출한 유창수씨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침부터 새벽까지 온통 칠판과 교과서 속에서만 길을 찾는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연극을 만들었다”며 “서태지의 말처럼 보이는 길 외에도 다른 길이 있음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 이번 연극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극중에서 시험을 앞둔 영재가 그러잖아요. ‘하느님 여기에 제 인생이 걸려 있어요’라고. 최근 시험부정 사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정말로 이 시험에 자기 인생이 뒤바뀌는 거잖아요. 저라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했을 겁니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십수년 전 이땅의 학생들은 ‘닫힌 교문을 열며’ 새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이땅의 교문은 한쪽 세상만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그들 마음의 문은 오히려 더욱 굳게 잠겼다. 18세 소년 영재의 일기장은 푸르기는커녕 여느 수험생들의 얼굴처럼 누렇게 바랬다.
 
그렇게 똑같은 모습의 ‘나영재’들은 오늘도 죽음을 예비하거나, 부정한 시험방법을 짜내는 데에 골몰한다. ‘죽거나 혹은 영악하거나’이다. 그들이 강요당한 ‘삶의 선택’ 앞에서 ‘시험장 휴대폰 송수신 차단’ 따위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말이지 시끄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당신에게 10대 시절의 일기장이 남아 있다면, 한번쯤 다시 들춰보기를 권한다.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또다른 ‘나영재’를 만난 뒤에도 우리는 과연 시험부정행위자들의 죄과를 냉정히 따져물을 수 있을까.   

 
12월 2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연극 기간 동안 부모와 함께 온 학생 1인은 무료로 입장된다. 매주 일요일엔 꽃다지, 천지인, 박창근 등이 출연하는 라이브콘서트도 펼쳐진다.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 나의 푸른 일기장 홈페이지(
http://uridongne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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