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노동부는 삼성전자의 청소용역업체인 애니스가 위장도급업체로서 불법파견을 행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전에 노동부는 삼성전자의 인사과 직원들이 애니스에 설립된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하는 행위를 한 정황이 뚜렷한데도 삼성전자의 직원들은 애니스의 사용자가 아니어서 “행위여부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부당노동행위 주체가 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불기소(각하)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작성했다. 올 국정감사에서 그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노동부가 삼성전자의 사용자성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 이번 조사가 이뤄졌다. 결론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삼성전자는 애니스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애니스에 노조가 설립된 지 열흘 만에 6년간 멀쩡하게 이어져 오던 청소용역 계약이 해지됐고 그것을 이유로 노조가 자동해산됐으며, 끝까지 노조원 신분을 유지한 자들만 새로운 용역업체에 고용이 승계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방불명된 애니스의 사장만 기소중지 되고, 삼성전자는 어떤 책임도 추궁당하지 않은 채 사건은 사실상 종결돼 버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두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부는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자가 명백히 부당노동행위로 보이는 행위를 해도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행위의 실체를 밝히지도 않고 그냥 각하해 버리고 만다. 국감에서도 확인됐지만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탄압행위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이 같이 처리했다.

이를 보면, 노동부가 과연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행위가 실제로 행해진 것으로 인정된다면 그 행위를 행한 자가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유린한 것이 명백한데도 “행위여부와 관계없이 각하”하는 것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자가 나중에 법리적인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 근절의 전담부서로서 특별사법경찰권까지 부여받고 있다면, 노동자가 부당노동행위를 당했다고 호소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그 '행위의 실체'는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비겁하게 노동부만의 ‘관습적 법리’ 뒤에 숨어버린다.

그런데 노동부가 숨은 그 법리가 완벽한 은폐물이 되는가?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부당노동행위에서 사용자 개념이 확장된다는 것은 노동법학계에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위장도급을 이용한 불법파견 관계 조사를 통해서도 사용자성을 포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노동부나 검찰이 노동자에 대해 사용하는 것처럼, 업무방해죄나 공범으로 ‘엮는’ 방법을 사용하면 직접 사용자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사용자를 법 앞에 세울 수 있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용자라도 ‘위계나 위력 또는 허위사실 유포로’ 노조 업무를 방해했을 경우에는 노조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되는 것이고, 그 사용자가 직접적 사용자와 공모하거나 교사 혹은 방조하여 노조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를 한 경우에는 직접적인 사용자의 공범으로서 처벌되는 것이다.

장담컨대, 구속된 노동자 셋 중 둘은 그런 식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는 잘도 적용되는 이 같은 법리가 사용자들 앞에서는 딱 멈춰 서 버린다. 노조는 방해받을 업무도 없는 곳이 되고, 공범 이론은 갑자기 엄격해진다. 이는 형평성에서 너무나 위배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노동부는 "업무방해죄는 자신의 관할 업무가 아니"라고 둘러댈 것이 명백한데, 그것은 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를 검찰에 통보, 관할 경찰서가 최종 처리를 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건 의지의 문제인 것이지 법리나 관할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행정의 실태가 이러함에도 노동부는 노동자들을 처벌하고 노동운동을 폄하하며 반 노동자적 법안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장관은 국회에서, 노동부는 노조부가 아니어서 노동자 입장에서 행정을 하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전(前) 장관의 소신을 비웃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실세들이 공무원들에 대한 노동3권을 주장한 것을 근거로 공무원노조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은 ‘단세포적 발상’이라고 우긴다. 학자의 양심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성적으로도 혼돈 상태에 빠진 '다세포적 분열'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노동부의 행정실태와 장관의 최근 행태에 노 대통령의 발언을 얹어보면, 노동부는 지금 기업의 노무관리부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곧 국가이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국시인 나라에서 국가 기관 중 노무관리부도 하나쯤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회과학도’로서의 정체성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장관이 그걸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노동부가 노조부일 것을 기대할 정도로 어리석은 노동자는 없다. 다만, 노동부가 노무관리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