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예상했던대로 단기금리를 2%로 0.25%포인트 올렸다. 올 들어 네 번째다. 연준의 발표 직후 열린 11월11일(한국시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콜금리를 3.5%로 0.25%포인트 내렸다. 예상을 깨는 조처였다. 금리 인하의 긍정적인 효과가 거의 없었음에도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한국경제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신호를 보내 환율 하락 속도를 늦춰보자는 계산이었다.

한은의 깜짝 행동은 ‘반짝 효과’를 봤다. 이틀 동안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후 계속 내리막이었다.

환율 하락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간 협조도 없었다. 달러당 1,100원선이 무너지던 지난 11월15일은 외환당국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구두개입을 단행해야 할 시점이었다. 하지만 재경부의 태도는 침묵을 지킨 채 ‘한은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벌여온 환율 방어 노력에 대해 간간히 문제제기를 했던 한은에 대한 감정 섞인 앙갚음이었다. 외환당국들은 그렇게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다.

미 연준과 한국은행의 차이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11월17일 “역사상 환율에 대한 비시장적인 개입은 효과가 없었다”며 달러 약세를 그대로 놔두겠다고 발언했고, 이틀 뒤에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에 비춰볼 때 … 국제투자자들은 결국 달러 자산 비율을 조정하거나 높은 위험도를 상쇄하기 위해 달러 보유에 대한 더 큰 대가를 바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린스펀의 발언은 주목된다. 연준의 올 들어 네 차례나 단행한 금리 인상 행진이 겨냥하고 있는 목적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제 발로 서서 굴러갈 만큼” 미국 경제가 잘 나가서가 아니다.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규모를 염려해 달러 자산을 매각하려는 투자자들의 욕구를 줄이는 ‘보상’ 차원에서다. 외환보유고의 대부분을 미국 국채를 꾸준히 매입하는 데 운용하고 있는 중국·일본·한국 등 동아시아 각국 중앙은행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 보상을 통해 달러 표시 자산을 팔고 유료화 자산 등으로 갈아타라는 이들 중앙은행에 대한 압력은 상당히 줄어든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10월 말 외환보유액 1,738억9천만달러 가운데 80%를 웃도는 1,473억달러를 미국 국채에 운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 경제가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려면 하루 10억달러가 넘는 자본 유입이 있어야 한다.

달러를 둘러싼 냉전 컨센서스

이런 미국의 환율 정책에 대해 유럽연합이나 일본 등은 “급격한 환율 변화에는 반대한다”는 정도의 원칙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완만한 달러 약세는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발전주의국가 연구의 선구자인 찰머스 존슨이 지적한 ‘미국과 동아시아의 냉전적인 경제구조“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80년대 미국의 재정·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미국과 일본간의 자본이동 메커니즘이 1985년 ’엔고-달러저‘의 플라자 합의, 96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엔저 현상, 98년 6월 중순까지의 엔저 현상 등이 모두 이런 맥락이다.

물론, 미국에도 달러 약세의 대가가 따를 수 있다. 연준의 잇단 금리 인상으로 미국 주택대출시장의 붕괴할 가능성이 그것이다. 2002년과 2003년 주택 구입자들이 저금리를 틈타 주택저당채권(모기지론)을 재발행해 조달한 금액은 각각 2조5천억달러, 3조5천억달러에 이른다. 이전 최대치인 98년의 7,500억달러보다 3~5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런 모기지론의 급증은 2001년 이후 미국 경제성장률의 92%를 설명할 만큼 소비지출을 부추겼다.

문제는, 모기지론 재발행이 붐을 이루는 과정에서 고정금리 모기지론의 상당 부분이 변동금리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당시 저금리 상황에서, 처음 5년 동안 변동금리 모기지론의 금리가 고정금리보다 낮은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변동금리 모기지론의 비율은 미국 주택 구입자의 35%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연준이 미국 주택 가격 상승의 대부분은 주택 개량에 따른 질의 개선을 반영한다며 거품의 존재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선택은?

달러 약세는 적어도 중기적으로 불가피하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과제는 “그래, 우린 봉이야 봉!”이라는 자조가 아니라 속도 조절이고 이 과정에서 기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외환보유액의 일부는 내수 부양을 위한 기초를 쌓는 데 투입해야 한다. 일부 국회의원의 지적처럼, 빈곤층이나 청년층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에 투입할 수도 있고, 남북개발은행 설립에 투입할 수 있다. 유럽연합이 유로화 강세와 함께 적극적인 재정·통화 정책을 편다면 우리로서는 유리환 환경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