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있었다. 같은 기업,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다. 투쟁의 자리마다 함께 했다. 함께 어깨 걸었고, 함께 소리 질렀다. 함께 눈을 맞았고, 함께 주먹을 뻗었다. 한 사람은 정규직, 다른 한 사람은 비정규직. 같은 노동자면서도 다른 노동자. 그래도 그들은 ‘동지’란 이름으로 함께 싸웠다.
 
시간이 흘렀다. ‘정규직 그’는 원청노조 위원장이 됐고, ‘비정규직 그’는 변함없이 하청노동자였다. ‘정규직 그’가 이끄는 노조를 현장에선 ‘어용’이라 불렀고, ‘비정규직 그’가 소속된 노조는 회사가 인정하지 않았다. 둘 사이엔 어느덧 깊은 강이 흘렀다.
 
‘정규직 그’가 잘 나가던 어느 날, ‘비정규직 그’는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한 마디 말만 남겼다. 새까맣게 탄 ‘비정규직 그’를 두고 ‘정규직 그’가 말했다. “분신했다고 다 열사가 되는가?” 순간 ‘정규직 그’는 두 가지 이름을 버렸다. ‘민주노조’란 이름과, ‘동지’란 이름. 수많은 목숨이 피 흘리며 지켜 온 이름, 그 먹먹한 이름을.
 

 
희망 없이 버텨야만 하는 곳, ‘절망의 공장’
 
‘정규직 그' 탁학수, ‘비정규직 그' 박일수. 두 사람이 조우했다 멀어져 간 곳은 ‘절망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이다. 올해로 8회째인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엿볼 수 있다.
 
영화제에선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지난 2월 14일 분신, 생명을 끊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 사건 투쟁이 상영 중이다. ‘절망의 공장-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이란 제목을 달았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한껏 고양시킨 박일수 열사 사건의 영화제 상영은 시기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절망의 공장’은 박일수 열사 분신 후 장례식을 마치기까지 54일간의 기록이다. 9월 15일 민주노총 금속연맹의 현대중공업노조 제명이란 충격적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 준다.
 
현재 민주노총 울산본부 미디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감독 배문석씨는 박일수 열사 분신 직후부터 사건 수습 전 과정을 카메라로 담아 성격이 각기 다른 몇 개의 편집본을 별도로 만들었다. 각종 인권·노동 관련 영화제 출품만 이번이 네 번째로, 상영 목적에 맞는 그림을 따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번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편집본은 원래 금속연맹이 현중노조 제명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 대의원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영상이다. 자연히 편집의 초점은 사건 수습 과정에서 현중 직영노조가 하청노조에 보인 부적절한 행태에 맞춰져 있다. 배문석 감독의 말이다.
        
“제명표결 직전에 상영한 영상이 대의원들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독려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현중노조를 제명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겐 원죄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제명 결정 후엔 현중노조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 영상이 제명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촬영 당시에는 현중노조로부터 협박도 많이 받았다. ‘찍지 말라’는 말 외에도, ‘죽여 버리겠다’는 말도 들었다. 멱살을 잡히는가 하면, 술취한 현중 경비들이 카메라를 탈취하려고 해서 경찰이 출동했던 적도 있다.” 
 
영화는 박일수 열사 분신 직후부터 투쟁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좇아간다. 카메라는 고통스런 장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숏과 숏, 신과 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에서 앵글이 멋을 부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3명의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현중경비들에 의해 바지와 신발이 벗겨지고, 손이 뒤로 묶이고, 청 테이프로 입이 봉해진 채 끌려 내려오는 장면, 현중 정문 안으로 투쟁대오가 처음 진입한 날 경비들이 살수차로 쏘아대는 물과 뭉텅이로 뿌려대는 최루가루를 뒤집어쓰고 추위 속에서 노동자들이 얼어 가는 장면, 오토바이 헬멧 쓴 경비가 항의하는 노동자의 얼굴에 소화기를 들이대고 뿜어대는 장면, “아기가 있어요”란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농성천막을 뭉개 버리는 장면, 경찰이 수수방관하며 교통정리나 하고 있는 장면….
 
여기에, 탈진해 가는 하청노동자들이 “현중자본 박살내자”란 구호를 쥐어짜듯 끌어올릴 때, ‘회사사수대'로 동원돼 이를 지켜보던 정규직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흘리고, 그 중 한 명이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좆까”를 외치는 장면에까지 이르면, 가슴 속에서 우뚝우뚝 솟는 그 무엇과, 눈가에서 슬금슬금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관객은 뻣뻣해지는 뒷목을 쓸어대며 떨어지는 시선을 주체하지 못한다.      
 
“당시는 정몽준 의원이 걸린 총선이라는 특수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중자본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올인했던 시기였고, 민주노조 진영에서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한판 대결의 장을 펼쳤던 때였다. 현중 쪽에서는 선거 때마다 암약했던 사조직들까지 다 노출시킬 정도였다. 이 조직들이 자신들의 명의로 플래카드를 만들고 유인물도 뿌리면서 ‘박일수는 정신병자다’ ‘술 취해서 죽은 사람을 열사라니 웃긴다’ 등 온갖 악선전을 해댔다. 현중은 2만 명 정도 되는 전 사원들을 회사사수대회 같은 걸로 소집해서 과장급들을 사수대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하청노동자들의 가장 큰 설움은 같은 ‘노동자’란 이름 아래, 같은 현장에서 일해 온 동료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였다. 박일수 열사 분신대책위의 활동을 “선거에서 정몽준 의원에 위해를 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며 현중노조 조합원이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노조 대의원들은 대책위 농성장으로 대거 몰려와 천막을 부수고, 플래카드를 뜯고,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글귀가 쓰인 만장을 압수한다. 그리고 각목. 이들 중 한 명이 손에 각목을 들고 이리저리 휘저을 땐, 하청노동자들이 느꼈을 암담함이 스크린을 뚫고 객석까지 전달된다.    
    
분노보단 절망이란 말이 정확하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탄압하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절망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현중은 그래서 ‘절망의 공장’이다.
 
“현중에 ‘절망의 공장’이란 이름이 붙은 지 오래됐다. 98년도 이후부터 현장 활동가들은 자기의 공장을 ‘절망’이라 불렀다. 이는 95년 이후부터 회사가 집요하게 현장을 깨오는 과정에서 연유한다. 회사는 대의원 포섭뿐 아니라, 대의원선거 자체에도 철저히 개입했다. 활동가에 대한 폭행도 예사였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노조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고자질하는 회사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다. 조합원들이 희망을 꿈꾸기보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치지 않고 버티는 ‘절망의 공장’이 되고 만 것이다.”
 
하여, 카메라는 곳곳에서 운다. 가족들과 같이 울고, 해금가락과 같이 운다. 시신을 빈소로 옮기는 장면에서 울고, 관이 화장터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상복 입은 노동자들도 울고, 뼛가루를 땅에 묻는 장면에선 노래가사도 운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감독은 대책위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대책위 위원장 직무대행(장인권 민주노총 울산본부 수석부위원장)이 “민주노총 총연맹 멱살이라도 잡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시키겠다. 분명히 약속한다”며 거듭 다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와 전격합의, 합의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에, 하청노동자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도 빼지 않고 고스란히 담았다. 촬영 당시 ‘제3자’였던 감독이 이후 대책위의 주축인 민주노총 울산본부로 자리를 옮겨 ‘당사자’가 됐지만, 이 민감한 장면을 굳이 넣은 것은 정규직 지도부로 구성된 대책위의 한계를 숨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울산본부에서 일하지 않을 당시에 찍고, 울산본부 간부가 된 후 편집을 했지만,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가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합의를 이끈 후 하청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던 본부 수석부위원장도 편집본을 보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우리 운동의 감출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울분을 토했던 하청노조 동지의 분노 역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일 수 있다. 양측 사이의 더 심한 갈등도 있었지만, 투쟁동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포함시키지 않은 부분도 많다.”
 
박일수-탁학수의 엇갈린 운명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엔딩 부분에 나오는 한 컷의 사진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 속 두 사람의 얼굴 때문이다. 작년 초 사망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와 관련한 투쟁현장에서 열사의 영정을 든 노동자 뒤로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과 박일수 열사가 앉아 있다. 영화는 먼저 클로즈업시킨 탁학수 위원장 얼굴 위로, 탁 위원장이 박일수 열사 사망 직후 열린 대책위에서 한 말을 오버랩시킨다.     
 
“개인적이고 조직적 역할이 없던 사람(박일수 열사)이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열사가 되나?”
 
조성웅 하청노조위원장이 “박일수가 노조활동을 조직적으로 못했다고 해서 열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라고 했지만, “분신이 곧 열사인정은 아니”란 취지의 뜻을 굽히지 않던 탁 위원장은 다음날 대책위에서 현중노조의 이름을 뺐다.
 
그렇다면 탁학수-박일수 두 사람이 배달호 열사 투쟁현장에서 앞뒤로 나란히 앉은 건 우연이었을까?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증언하는 배문석 감독의 말은 충격적이다.
 
“마지막 장면의 사진은 투쟁이 끝난 후 입수한 것이다. 작년 초 배달호 열사 투쟁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박일수 열사가 정규직 노동자 중에 가장 친했던 사람이 탁학수였다. 현중에서 같은 작업분과에서 일했다. 두 사람은 많은 것들을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했던 사이였다. 심지어 분신을 마음 먹었을 때 탁학수한테 가서 ‘내가 죽어야겠다, 죽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맘을 털어놨을 정도였다.”
 
박일수 열사를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던 탁 위원장이 박일수 열사의 친구였다는 배 감독의 말은 당혹스럽다. 배 감독의 이어지는 말은 한 때 동지였던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한 순간에 극명히 엇갈리는지 보여 준다.   
 
“그랬던 두 사람이었는데, 1년 뒤 한 사람은 활동가에서 어용노조 위원장으로 돌아섰고, 한 사람은 분신자살했다. 당시 현장활동가 신분으로 배달호 열사 투쟁에 같이 참석했던 탁학수는 작년 말 선거를 앞두고 현장활동을 다 끊고 회사쪽으로 돌아섰다. 이 순간부터 탁학수는 비정규노조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고, 표현도 늘 ‘하도급노조’란 말을 썼다. 현중과는 상관없는, 현중이 책임지지 않는 노조라는 뜻이다. 아주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탁학수 위원장은 박일수 열사에 대해 “친했다기보다 좀 잘 안다”는 표현을 썼다.
 
탁학수 위원장과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 박일수 열사와 절친했던 사이라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런 걸 나한테 확인할 필요가 있나. 친했다기보다 좀 잘 안다.”
 
- 박일수 열사는 한 때 위원장님을 많이 신뢰했다고 들었다.
“작년 6, 7월경에 헤어졌다. 같이 일을 해 오다가 그 즈음에 헤어졌다.”
 
- 헤어졌다는 말은 운동의 길을 달리했다는 뜻인가?
“그런 뜻이다. 한 조직에서 같이 활동했을 때 잘 알았다는 것이고, 작년 6월쯤 해서 박일수씨가 조직을 떠나면서부터 서로 외면하고 지냈다.”
 
- 박일수 열사가 분신 전에 위원장님을 찾아가서 “죽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의 사이였다고 하던데.
“그런 일이 있었다. 직전이라기보다도, 떠났을 당시도 그런 이야기가 가끔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되고, 살아서 해야 한다’고 말을 해 줬다. 그때도 (박일수씨의 말도) 운동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사건이 있어야 한다’라는 차원이었지, ‘자기가 해야겠다’라는 건 꼭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는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하는 이야기 아닌가.”    
 
- 박일수 열사를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 의견은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그런 질문에도 답해야 하나.”
 
- 답변을 부탁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박일수와 친한 것과는 별도로, 일반적으로 열사라고 규정하는 대목에서 과연 분신했다는 이유, 유서 하나 남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사로 규정해야 하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 한 때 절친했던 사이고, 고민도 나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길을 달리하면서 아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박일수씨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박일수가 분신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경로가 안 있었겠나. 우리 현대중공업도 협력업체와 관련해서 비정규노동조합도 있고, (그건) 박일수가 같이 합류해서 만들려고 했던 노동조합이다. 회사와 협력업체와 관계 문제가 있다고 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게(분신했다는 게) 쉽게 이해되겠나. 우리가 활동 속에서 분신이나 타살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열사로 볼 수 있는 건데, 그런 점에서 박일수씨는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누가 뒤에서 지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운동적 관점에서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분신했다고 다 열사라고 인정할 것 같으면, 이 땅에 열사 아닌 사람은 누가 있나. 예를 들어 노숙자가 열차에 치어 죽으면 열사가 되나. (박일수가 열사면) 그 사람도 열사지. 안 그런가. 산업현장에서 쫓겨나서, 명퇴 당해 가지고 오죽 했으면 열차에 치어죽겠는가. 그런 사람은 유서 안 썼다는 이유만으로 열사 안 되고, 유서 쓰고 불살랐다고 유서를 인정해서 열사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안 맞다는 거다. 친한 거하고는 다른 거지.“
 
- “나의 운동적 관점 아니다”라 했는데, 그렇다면 대책위 투쟁과정에서 직영노조가 하청노조 운동 거점을 부수기도 했는데, 이른 불미스런 일은 운동의 관점에 맞나.
“겉으로 볼 때 내가 시켰다고 보는 건데, 내가 시킨 적도 없고, 나간 적도 없다. 다만 지역 대책위 하고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 중공업 하고 상황에 맞게끔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느냐는 논의를 하려고 정중하게 우리의 요구를 요구했지 실력행사 했던 것은 한 번도 없다. 문제가 된 건 대의원들이 주도가 돼서 그런 행위들이 몇 번 있었다. 할 때마다 내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하지 말라 한다고 되는 일인가. 노동조합 현실이 그런데.”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의 얼굴이 다시 작아져 스크린 한쪽으로 되돌아가면, 이번엔 박일수 열사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얼굴은 곧 그가 죽었던 그때처럼 불타오른다.
 
박일수 열사가 사망으로 촉발된 하청노조 투쟁은 이후 소지공들의 현중사내하청노조 집단 가입을 낳으며 ‘희망’을 기대하게 했지만, 머지 않아 와해됐고, 현중과 대책위간의 합의사항도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 말처럼 ‘사람 대접’ 받기 위해선 열사를 휘감은 불길이 아직은 꺼질 수 없을 것 같다.
 
열사가 뜨거울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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