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금강화섬노조는 2차 상경투쟁을 결의해야 했다. 지난 5월 1차 상경투쟁과는 과정부터 달리했다. '17일동안 진행됐던' 당시 투쟁이 공장 가동 중단 이후 준비가 미흡한 가운데 급박하게 진행됐다면, 2차 투쟁은 조합원들을 상대로 사전교육을 꼼꼼히 실시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노조가 이처럼 2차 상경투쟁 카드를 선택했던 이유는 ‘마냥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차 상경투쟁시 금강화섬을 인수하기로 한 한국합섬쪽이 3승계(단협, 고용, 노조)에 합의했으나 ‘다섯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백문기 노조 위원장은 “인수가 확실시 되지 않는 상황에서 10월 한 달 동안 노조 내부에서는 2차 상경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1차 상경투쟁 때와 달리 한국합섬은 180도 변했다. 한국합섬 한 관계자는 상경투쟁 이틀째인 지난 10일 “원유값 상승, 원자재 상승, 중국업계의 상승 등 화섬경기의 전반적인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내년 3월께나 돼야 공장 인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조는 그러나 이 같은 회사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공급과잉과 고원료가로 인한 채산성 악화, 금리부담이라는 삼중고가 화섬업계를 강타한 상황에서 대다수의 화섬기업들이 워크아웃(고합, 새한, 동국무역), 법정관리(한일합섬), 청산(대하합섬) 등의 과정을 거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결국 “한국합섬의 인수가 현실화되더라도 이후에 조합원 대량해고나 비정규직 전환이 잇따르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한다. 이런 연유로 노조는 “공장재가동”과 함께 ‘고용승계 및 비정규직 철폐’의 구호도 반드시 빠뜨리지 않고 있다.

지난 6월30일 경영난 악화를 이유로 경북 구미 소재 금강화섬이 일방적인 공장폐업을 시행함에 따라 실직상태에 빠진 금강화섬 조합원들에게 현 상황은 ‘산 넘어 산’이다.

빠듯한 투쟁 일정 '불만' 없지만 시나브로 덮치는 '불안'

17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민주노총 북부지구협의회 사무실. 이 곳은 상경투쟁에 합류한 조합원들이 한달 간 머물게 될 숙소다. 2차 상경투쟁에는 전체 조합원 210명 가운데 140여명이 참석했다. 상경투쟁은 이날로 10일째.

조합원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빠듯한 일정 때문이다. 이날 오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집회를 비롯해 ‘공장재가동과 제조공동화 저지’를 위한 집회만 4번째. 투쟁사업장 연대방문도 이들의 피로를 더하게 한다. 코오롱건설, 한원C.C, 정오교통, 풀무원, 정립회관 등 민주노총 소속 장기투쟁사업장 연대투쟁만 무려 10곳 이상을 소화했다. 강행군의 연속이다. 게다가 열린우리당과 국회, 정부청사 앞에서는 조별로 1인 시위를 끊임없이 개최하고 있다. 일과가 끝나더라도 매일같이 진행되는 조별토론 및 교육은 조합원들에게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불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목소리는 ‘굉장히’ 희망적이다.

“직접 가서 눈으로 보니 우리보다 더 열악한 다른 장기투쟁사업장이 많더라. 눈물이 날 뻔 했다.” “비정규직 철폐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동지애가 생겨난다.” “우리의 의지와 조직력만 강하다면 투쟁은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조합원 이영식씨는 “2차 상경투쟁을 전개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상경투쟁이 갈수록 재미가 있어진다”고 말했다.

‘불만’이 없다고 해서 ‘불안’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오는 ‘불안’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은 실업급여를 통해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12월부터 실업급여가 끝나는 조합원들이 상당수”라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위기감은 팽배한 상태다. 조합원들은 지난 4월12일 회사로부터 종업원 33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노조의 반발로 다행히 같은 달 16일 정리해고 통보는 철회됐으나 공장의 정상가동은 불가능하다며 ‘경매할 수밖에 없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이후 인수의사를 밝힌 한국합섬은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장가격이 최대한 떨어지는’ 때가 그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노조는 고용승계를 믿지 않는 눈치다. ‘공장가격이 떨어지기 위해서’라는 회사의 주장을 노조는 “‘강성인’ 노조가 와해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존재했던 노사갈등 속에서 한국합섬은 현 금강화섬노조를 ‘전투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노조 한 관계자는 전했다. 차헌호 노조 사무국장은 “지난해 10월6일 출범한 현 집행부는 회사의 방침과 사사건건 어긋났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지난 96년 한국합섬노조가 약 38일간 총파업 투쟁을 전개한 것과 관련해 한국합섬은 '강성노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도 어렵다…정부가 나서라"

‘설상가상으로’ 현 화섬업계 상황은 한국합섬이 금강화섬을 인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침체된 업계 분위기 탓이다. 70, 8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화섬산업이 위기상황을 맞은 것이다. 문제는 화섬경기 악화로 화섬업계들이 중장기적인 생존전략 수립을 아예 포기한다는 대목이다.

백문기 노조 위원장은 “현재 남아있는 섬유업 사업장은 코오롱, 휴비스 등을 비롯해 몇 군데 정도이며, 이들도 섬유업을 접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이어 “내수경기가 죽더라도 최소한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는 사업장 한 곳 정도는 우리나라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국합섬은 ‘원칙적으로’ 금강화섬 인수에는 동의하고 있다. 한국합섬 관계자는 “금강화섬을 인수하는 것은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합섬 관계자는 “현재 자금부족을 비롯해 제품 판로가 불투명한 상황이며 특히 섬유는 한계사업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자금을 꺼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화섬협회(회장 이원호)도 마찬가지. 협회 한 관계자는 “화섬산업이 침체에 빠지면서 기업이 하나씩 문을 닫고 화섬협회의 권위도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 때문에 지난 1차 상경투쟁과 마찬가지로 문제해결에 정부가 앞장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업계 노동자들이 실업과 생계위협 속에 살고 있으나 정부는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논리로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2만2,100명이던 화섬업계 노동자는 2003년 1만7,700명으로 줄어 4,400명이 일자리를 잃은 상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끝까지 남아있는 조합원들과 달리,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노조를 떠나 제 갈 길을 찾고 있다. 이는 노조의 새로운 고민이다. 벌써 50여명. 8~9년 동안 함께 근무했던 조합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조차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떠나는 조합원들을 비난하기엔 노조의 현 상황도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제조업 공동화는 막아야"
- 1차 상경투쟁과 다른 점은.

“1차 상경투쟁은 단순히 생존권적 차원에서 준비가 소홀했다. 다행히 3승계라는 성과를 얻어내고 복귀했지만 현실주의자처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특히 비정규직, 국가보안법 문제 등으로 화섬업계의 문제점들이 묻히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현실을 알려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 때문에 10월 한 달 동안 조직대오를 정비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 공장 중단 이후 조합원들의 생계는.

“조합원들의 생계가 갈수록 힘들어져 8월부터 실업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12월 이후부터 실업급여가 끝나는 조합원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현재 일부 조합원들은 굴뚝 청소, 하수구 청소, 인분 퍼나르기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 때문에 노조 집행부의 고민이 많다. 장기투쟁을 위해 집행부가 직접 포장마차나 대리운전에 나서야 하는건지…”


- 공장 재가동이 가능하나.

“화섬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공적자금을 투여하여 화의를 탈피한지 2년도 안돼 공장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처사다. 조합원들의 생존권 문제도 있지만, 공장의 시설이 잘 돼있는데 이것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 2차 상경투쟁을 통해 노조가 얻고자 하는 것은.
“상경 투쟁을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2차 상경투쟁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나 제조업 공동화를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조합원들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 속에서 동지애를 찾아내길 바란다. 또 장기투쟁사업장의 고민과 갈등을 직접 체험하고 많은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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