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6일자 <한겨레신문> 해외논단에 중국 베이징 대학교 언론학부 자오궈뱌오 교수의 칼럼이 실렸다. 
 
‘부시를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그는 부시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지지를 천명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논지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는 “현재 인류 가운데는 한줌에 지나지 않는 야만의 무리가 분명히” 있고, 이들이 “아직 진보적 문명에 이르지 못한 발전도상국”의 통치자로 존재하면 “그 나라 인민이 고통받을 뿐 아니라 인류공동의 진보적 문명까지 위협”받으며, 따라서 미국이 적극 개입하여 “인류 문명을 퇴화시킬 수 있는 야만의 세력”을 퇴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야만과 문명의 구분 기준도 분명하다. 그것은 “선진적인 민주제도와 인권의식 등 미국의 긍정적 가치”이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중국도 비판한다. 중국에서 인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이 일방적으로 ‘영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민의를 강간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일갈한다.

유학파 지식인의 비약과 왜곡

<한겨레신문>이 과연 진보적 언론인지 나는 회의적이지만, 적어도 부시의 당선에 환호작약하는 수구 언론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칼럼은 매우 예외적으로 읽혔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내가 느낀 착잡함은 그때문은 아니다. 
 
나는 자오궈뱌오 교수의 이런 생각이 개혁개방 이래 많은 중국 지식인들, 특히 미국 유학의 경험을 가진 지식인들의 생각을 대표하는 것임을 느낀다. 어찌 중국 뿐이랴.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란, 이라크에도 이런 지식인들은 존재한다. 자기 사회 내부의 문제를 ‘인류보편적=미국적’ 가치로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에는 엄청난 논리의 비약, 왜곡, 혹은 착각이 숨어 있다.

자오궈뱌오 교수는 이 짧은 칼럼에서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왜곡한다.
 
첫째, 미국 대선은 그가 말하는 야만스런 통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후보와 부정하는 후보간의 경쟁이 아니라, 이에 대처하는 방법론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가진 두 후보간의 경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멀리 중국의 베이징에서 부시에게 1000위안(15만원)의 거금을 기부하려 했을 만큼 열렬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그가 말하는 정치적 민주주의나 ‘미국적 가치’를 부시 후보가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었을까. 주지하듯이 부시는 지난 대선에서는 플로리다에서의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다는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대외정책은 민주주의는커녕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독선적이며 일방주의적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케리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그의 논지에 부합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원한다면 ‘인민’을 위해 싸우라

나는 그와 논쟁할 생각이 없다. 내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그를 포함한 대다수 ‘개혁개방 시대’ 중국 지식인들의 비겁함과 이중성이다.
 
그들은 중국이 민주주의의 나라가 되기를 절실히 바라는 듯하다. 그러나 베이징 대학 교수라는, 중국 최고의 지식인이 기껏 생각한 것이 ‘부시에 선거자금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라니. 그들은 중국 인민의 권리를 말하나, 나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인간적 기본권과 노동권을 부정당하고 고초를 겪고 있는 그 인민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그들과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그런 예를 듣지도 못했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이 있었다 하나, ‘자유의 여신상’을 앞세우고 시위를 벌였던 천안문의 중국 대학생, 지식인들은 중국의 인민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점령지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강제 이식하려는 당치않은 시도를 하고 있는 부시의 모습을, 그 앞잡이가 되어 꼭두각시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이라크의 친미 지식인들을 보라. 설마 자오궈뱌오 교수는 중국의 민주주의도 부시의 미국이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의 글의 논리대로라면 그렇다.

나는 그가, 중국의 지식인들이, 그리고 나아가 아랍권의 지식인들도, 진정으로 자기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기를 바라고, 그 싸움이 진정으로 인민의 권리의 관점에서 진행되기를 기원한다.
 
스스로 자기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한, 부시가 아니라 그가 말하는 ‘하느님’도 그것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다소 쑥스럽기는 하나, 나는 그가 미국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더 많이 배우기 바란다.
 
아쉽게 부시에게 전달 못한 1000위안은, 중국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홍콩의 아시아감시센타(AMRC)에게 보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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