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난 무릎을 ‘탁’하고 쳤다. 그렇다, 오토바이다! 반드시 오토바이를 사서 남미는 못 되도 아시아 대륙을 누벼 보리라. 물론 난 자전거도 능숙하게 타지 못한다. 그러나 반드시 오토바이로 ‘내 인생을 바꿀 만한’ 여행을 해 보겠다. 비록 세상을 바꾼 남자 체 게바라 정도의 변화는 아니어도, 적어도 오토바이 타는 법은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모토사이클 다이어리>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가 ‘세기의 우상’ 체 게바라의 여행기를 담았다고 해서 영웅의 전기를 볼 준비를 하고 극장에 들어섰다면 일단, 눈에 힘부터 빼길 바란다. 이 영화는 그냥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한 치기어린 젊은이들의 여행담이다. 이 여행을 마친 체가 어떤 인물이 됐느냐에 대한 부연설명 따위는 캐스팅 자막이 올라가기 직전에 한 두 줄이 전부다. 그러니 영웅에 대한 경건한 마음 따윈 가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아름답고 너무나 감동적이다. 

체 게바라는 없다, 그를 바꾼 사람들이 주인공이니까

영화는 주인공 게바라(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이렇게 회고하며 시작된다.

"우리의 시각이 너무 좁고 편향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경솔하게 판단했던 것은 아닐런지…. 이 남미 여행은 생각 이상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과거의 나와 같은 난 없다"

23살의 의대생이자 럭비선수인 에느네스토 게바라(일명 푸세). 호기심 많고 열정적이던 그는 자칭 방랑과학자인 사교적이며 엉뚱한 친구 알베르노 그라나도(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와 함께 4개월간 전 남미 대륙을 횡단할 결심을 한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낡고 오래된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안데스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

그러나 객기로 시작한 이들의 여행은 만만치 않다. 하나밖에 없는 텐트가 날아가고 위태롭던 오토바이마저 망가지면서 이들의 여행은 고난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당초 계획된 경로에서 벗어나 오토바이 대신 걸어서 나환자촌, 탄광촌을 지나면서 그 여행은 훨씬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점점 퇴색되는 잉카 유적을 거쳐 정치적 이념 때문에 일자리에서 쫓겨난 광부 부부를 만나기까지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던 현실과는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에 점점 분노한다. 23살의 청년이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의 목마름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것은 그 길과 함께한 노동자, 나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체 게바라가 어떻게 변화해 가느냐에 중심을 두지 않고 그를 변화시킨 사람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이끈다. 즉,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체 게바라라는 영웅을 의식적으로 철저히 배격하면서 그의 여행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현실감 있게 보여 주고 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를 영화화한 첫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첫 번째인지는 몰라도 체 게바라의 사망 30주기이던 지난 97년부터 세계는 '체 열풍'에 휩싸였다. 전 세계가 그를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추앙했고 각종 전기와 사진집, 추모 음반, 그의 이미지를 가공한 일러스트레이션, 대형포스터, 옷 등을 제작했다. 그야말로 세기의 영웅이 '팬시상품'이 된 것이다. 미국과 자본주의에 대항해 60년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다간 체 게바라가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일이다.


그러나 살레스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모토사이클 다이어리>는 그런 하릴없는 포장술을 부리지는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열정과 진리에 대해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화다.

정해진 길로 여행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이 언젠가 우리도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기회를 맞이하는 '체'가 될 수 있다는, 그런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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